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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음 Jan 06. 2023

소공동에서 88만원 아르바이트

2010년 늦겨울

오늘은 명동 롯데백화점에서 일하는 지인을 잠깐 만나 커피를 마셨다. 새해 인사도 하고 안부도 물을 겸 그의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잠깐 만났다. 30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대화를 하고 헤어졌다. 혼자 점심을 먹기 위해 명동 골목을 뒤진 후 소공동 골목으로 갔다. 명동에서 남대문과 서울시청, 을지로와 광화문까지 이어지는 이 동네를 걸을 때 정말 서울을 걷는 느낌이다.


소공동 골목에는 정말 많은 밥집이 있는데, 딱히 맘에 끌리는 곳을 찾기가 어렵다. 그런 적이 많았다. 문득 13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소공동 골목의 식당들


27살 가을에 처음 서울로 올라와 하게 된 일은 어떤 음반 레이블의 마케팅팀이었다. 마케팅 일을 소소하게 하면서 실제로는 소속 아티스트의 매니지먼트 일이 주였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뮤지션을 위해 운전을 하는 일이었고, 흥미롭고 좋은 경험이었다. 반년 정도 일을 하고 나왔는데, 사장에게 뒤통수를 맞은 이유도 있다. 관용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 뒤통수를 맞았다.


그리고 나에겐 다른 꿈이 있었고, 사실 그것은 막막했다. 취업을 생각한 건 아니었고 음악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구체적 계획은 없었다. 굶을 순 없으니 아르바이트를 구하다가 소공동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평일 9시부터 6시까지 풀타임 근무로 월 88만원의 급여를 받는 아르바이트였다. 당시의 최저임금이다. 이른바 88만원 세대의 그 88만원이다. 일종의 무역 물류회사였다. 국제무역을 위한 선박이 필요한 기업에게 해운회사를 연결해주는, 일종의 무역 '여행사' 같은 그런 곳이었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시청과 남대문 사이의 거리를 매일 걷게 되었다.


그 서비스를 요구하는 회사들과 해운, 무역회사들이 서울 시청 인근에 모여있다. 다양한 종이서류들을 매일같이 주고 받아야 하는데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인데다 가끔은 접수를 하고 기다리기도 해야 하니 퀵서비스에 맡기면 비효율적이다. 때문에 아르바이트 생을 상주시키고 주변에서 서류 심부름을 다니게 한다. 그게 나의 일이었다. 사무실 구석에 나의 자리가 있었고, 서류 업무가 있지 않은 시간에는 아무런 간섭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거나 책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산책 나가듯 서류 업무를 하고 다시 사무실로 오는 그런 일이었다. 사무실에는 두 명의 여성 직원분이 일을 하고 있었고, 사무실은 늘 조용하고 나에게 별다른 간섭이 없었다. 취업을 준비하거나, 자신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늘 오고 가는 자리라서인지 나의 삶에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맘에 드는 아르바이트였다.


일을 하면서 서울 시청 주변의 지리와 골목, 가게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오늘은 추억을 곱씹으며 그 주변을 걸었다. 분명 시간이 흘렀고 변한 것들이 많으면서도 사이 사이 변하지 낡은 것들이 여전하다. 그게 시청 주변의 매력이다. 내가 다닌 회사는 태평빌딩이었고, 그 앞에 발걸음이 멈췄다. 그 건물 3층이었나, 구내매점이 조그맣게 있었다. 어떤 할머니가 계신 정말 작은 매점에 창밖을 보며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자리가 2개 정도 있었다. 김밥이나 라면, 볶음밥 같은 식사가 가능했는데, 그 중 숙주나물을 듬뿍 넣은 짜파게티가 맘에 들어 종종 먹었다. 서울이라는 큰 도시의 한 가운데, 높은 빌딩에 이렇게 남루한 매점이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보통의 식사보다 반절 가격에 끼니를 때울 수 있었고, 거기서 끼니를 때울 때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태평빌딩 앞


그 매점이 아직 그대로 있을까? 그 할머니는 아직 계실까? 잠시 생각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서인가, 외부인의 출입금지라는 글씨가 옛날식으로 써있었고, 13년 전의 할머니가 지금도 그곳에 계실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점도 없어졌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2010년 1월부터 3월까지, 시청 앞을 매일 다니며 외롭지만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리고 그 사무실에서 쓴 이력서를 통해 어떤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때부터 직장인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3년이 흘렀다. 그때 매일같이 다녔던 시청 앞의 풍경이 이후에도 그 주변을 지나는 나의 인식에 진한 밑그림처럼 깔려있었던 것 같다.


시청 지하상가의 식당에서 생선가스를 점심으로 먹었다. 그 짜파게티가 그리워졌고, 대신 저녁에 집에 와서 콩나물을 잔뜩 넣고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다.


이제는 밥 한끼가 9천원이다.
콩나물이 들어간 짜파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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