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삶에 '결혼'이라는 단어를 추가하기로 했다
사촌오빠가 결혼한다. 오빠랑은 어려서 외갓집 2층집에서 매번 사촌들과 '마마놀이'를 했던 오빠다. 오빠는 항상 내시를 맡았고, 나랑 사촌언니는 시녀를 맡았고 우리 친언니는 늘 대왕마마였다. 한복을 입고 만나는 명절일 때면 그렇게 까르르하면서 순진한 우리 오빠를 골려먹는 나였다.
그런 사촌오빠가 결혼을 한다. 막상 결혼식 가기 전까지도 믿기지 않았고(약간 어이없는 뉘앙스로) '결혼이라는 것은 두 사람 간의 어떤 사회적인 약속을 맺는 걸까' 하는 막연한 물음이 생겼다. (일단은 오랜만에 사촌들이 모이는 자리였기에 일단은 예쁘고 깔끔하게 꾸미고 가기로 했다!)
결혼식은 1시간 내외로 의외로 빠르게 끝났다. 두 사람이 부부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이라는 것일까. 그 부부가 되는 둘이 만나는 시간은 오랜시간일텐데말이다. '결혼'에 대해서 관심도 없거니와 체감도 못하는 나로서는 오늘 본 결혼식이 엄청난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식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 상 다리가 부서질 듯이 있는 뷔페 음식, 오랜만에 보는 사촌 어른들과 사촌동생언니오빠고모 그리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턱시도를 맨 오빠까지.
결혼식을 보면서 웨딩드레스에 나를 대입해서 멍해보았다. '난 언제하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친구들과 평소에 '다음 생에 하겠네'하는 나였는데, 왜 오늘따라 결혼 한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항상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한두걸음 떨어져서 나와는 다른 세상의 제도라고 보아왔다. 독립적인 나와는 맞지 않는 사회 관습이거니와 이제까지 해 온 상대방들에게도 그러한 감정이 들지 않았던 것도 맞았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기존 사고를 허물벗듯 벗어던지고, 온전히 결혼식장 안에서 '결혼'이라는 것을 고민했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을 막 나열하자면,
- 양가 부모님과 친척들, 지인들 그리고 친척들 등등이 모여 축하를 하며 평소 먹지 못하는 음식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눈도 즐겁고 입도 즐거운 날이구나
- 내가 하면 야외에서 하고 싶다. 이왕이면 푸른 들판에서. 초록 잔디와 푸른 하늘이 같이 있어 그림처럼.
- 길고 치렁치렁한 긴 웨딩드레스보다는 짧고 간편한 웨딩드레스를 입고도 싶네
- 노래는 팝송이 나왔으면 좋겠다 (요즘 내 최애인, J.Tajor 'Like I do'로 말이다)
- 쿠로(고양이)도 산책할 수 있는 가방에 담아서 초대해야겠다
- 신혼여행을 현지에서 보내게 해외에서 결혼식을 해야겠다 (독일 퓌센 혹은 영국 휘트비는 어떨까)
등등등
상상은 자유니깐 이래저래 아무거나 상상해보았다.
그러다 '아 근데 결혼은 혼자하는게 아니구나..!' 깨달았다.
뭐 상상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 않냐만은;;
누군가를 만나고 가까워지고 평생을 같이 하자는 생각을 품기란, 나같은 사람은 어려울 것이라고 단정지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결혼 언제해?', '결혼할거야?' 라고 물으면 부정하기 급급했다. 이번 생에는 내가 지운 단어가 '결혼'이니깐.
공식적인 식 이후에, 사촌오빠를 축하하면서 오빠한테 물었다.
"오빠 걸어나갈 때, 안 떨렸어?"
"나도 결혼은 처음이고 식장을 걸어나가는 연습조차 하지 않아 엄청 긴장됐어"
다들 결혼은 처음이구나, 결혼이라는 단어를 나는 너무나도 섣불리 지웠구나 싶었다. 우선은 결혼이라는 다시 살리기로 했다. 누구랑 할지 모르지만, 오늘 오빠 가는 거 보니깐, 살려두는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