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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송이 Feb 04. 2024

사촌오빠, 결혼축하해 근데 난 언제해?

[소소한 일상] 삶에 '결혼'이라는 단어를 추가하기로 했다

사촌오빠가 결혼한다. 오빠랑은 어려서 외갓집 2층집에서 매번 사촌들과 '마마놀이'를 했던 오빠다. 오빠는 항상 내시를 맡았고, 나랑 사촌언니는 시녀를 맡았고 우리 친언니는 늘 대왕마마였다. 한복을 입고 만나는 명절일 때면 그렇게 까르르하면서 순진한 우리 오빠를 골려먹는 나였다.


그런 사촌오빠가 결혼을 한다. 막상 결혼식 가기 전까지도 믿기지 않았고(약간 어이없는 뉘앙스로) '결혼이라는 것은 두 사람 간의 어떤 사회적인 약속을 맺는 걸까' 하는 막연한 물음이 생겼다. (일단은 오랜만에 사촌들이 모이는 자리였기에 일단은 예쁘고 깔끔하게 꾸미고 가기로 했다!)



결혼식은 1시간 내외로 의외로 빠르게 끝났다. 두 사람이 부부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이라는 것일까. 그 부부가 되는 둘이 만나는 시간은 오랜시간일텐데말이다. '결혼'에 대해서 관심도 없거니와 체감도 못하는 나로서는 오늘 본 결혼식이 엄청난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식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 상 다리가 부서질 듯이 있는 뷔페 음식, 오랜만에 보는 사촌 어른들과 사촌동생언니오빠고모 그리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턱시도를 맨 오빠까지.


결혼식을 보면서 웨딩드레스에 나를 대입해서 멍해보았다. '난 언제하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친구들과 평소에 '다음 생에 하겠네'하는 나였는데, 왜 오늘따라 결혼 한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항상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한두걸음 떨어져서 나와는 다른 세상의 제도라고 보아왔다. 독립적인 나와는 맞지 않는 사회 관습이거니와 이제까지 해 온 상대방들에게도 그러한 감정이 들지 않았던 것도 맞았다.


결혼식 이후에 식장 매니저 분께서 찍어주셨다 ㅎㅎ


그런데 오늘만큼은 기존 사고를 허물벗듯 벗어던지고, 온전히 결혼식장 안에서 '결혼'이라는 것을 고민했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을 막 나열하자면,

- 양가 부모님과 친척들, 지인들 그리고 친척들 등등이 모여 축하를 하며 평소 먹지 못하는 음식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눈도 즐겁고 입도 즐거운 날이구나

- 내가 하면 야외에서 하고 싶다. 이왕이면 푸른 들판에서. 초록 잔디와 푸른 하늘이 같이 있어 그림처럼.

- 길고 치렁치렁한 긴 웨딩드레스보다는 짧고 간편한 웨딩드레스를 입고도 싶네

- 노래는 팝송이 나왔으면 좋겠다 (요즘 내 최애인, J.Tajor 'Like I do'로 말이다)

- 쿠로(고양이)도 산책할 수 있는 가방에 담아서 초대해야겠다

- 신혼여행을 현지에서 보내게 해외에서 결혼식을 해야겠다 (독일 퓌센 혹은 영국 휘트비는 어떨까)

등등등


상상은 자유니깐 이래저래 아무거나 상상해보았다.

그러다 '아 근데 결혼은 혼자하는게 아니구나..!' 깨달았다.

뭐 상상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 않냐만은;;


오랜만에 뵙는 친지분들이 예쁘다고 칭찬해주셨던 사진들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가까워지고 평생을 같이 하자는 생각을 품기란, 나같은 사람은 어려울 것이라고 단정지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결혼 언제해?', '결혼할거야?' 라고 물으면 부정하기 급급했다. 이번 생에는 내가 지운 단어가 '결혼'이니깐.


공식적인 식 이후에, 사촌오빠를 축하하면서 오빠한테 물었다.

"오빠 걸어나갈 때, 안 떨렸어?"

"나도 결혼은 처음이고 식장을 걸어나가는 연습조차 하지 않아 엄청 긴장됐어"


다들 결혼은 처음이구나, 결혼이라는 단어를 나는 너무나도 섣불리 지웠구나 싶었다. 우선은 결혼이라는 다시 살리기로 했다. 누구랑 할지 모르지만, 오늘 오빠 가는 거 보니깐, 살려두는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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