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의 최동원?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라

롯빠인생

by 정로생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의 전설 故 토미 라소다 감독은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 시즌이 끝나는 날"이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매년 9월이 가장 슬프다. 롯데는 거의 매년 정규리그만 하는 팀이기 때문이다. 칼퇴도 이런 칼퇴가 없다. 딱 3월부터 9월까지 하고 바로 칼같이 시즌에서 퇴근해 버리는 얄미운 공무원 같은 야구. 10개 중 5개 팀은 10월에도 야구를 하든 말든, 절대 추가 노동은 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야구.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야구. 흔들리는 골반을 멈출 수는 없지만 가을 야구 앞에서만은 멈추는 야구. 그게 바로 롯데의 야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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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인 지금 8년 연속으로 가을야구에 못 나갔으니 이제는 영영 가을 야구를 할 수 없는 팀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올해 94.5% 확률로 가을야구에 나갈 위기에 처하자(?) 본능적으로 ‘아 맞다. 우리 팀은 가을야구 나가는 팀이 아니지’라고 '유레카'를 외치면서 후다닥 12연패 하고 탈락해 버렸다. 생각해 보니 올해는 롯데가 잘 나갈 때 응원하던 나도 ‘9월인데 왜 이러지?’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맨날 칼퇴하던 직원이 야근할 것 같은 기세로 일을 하면 주변 모두가 당황할 수밖에. 아니나 다를까 결론은 롯데의 칼퇴였다. 온 세상의 칼퇴는 다 잘못됐다. 내 칼퇴만 빼고.


롯데자이언츠 공식 온라인 샵에는 신기하게도 겨울 점퍼가 있다. 9월이면 칼퇴하는 야구팀에 도대체 왜 겨울 점퍼가 필요한가. 그러나 후기가 27개가 있다. 20만 원이 훌쩍 넘는 점퍼를 무의식적으로 장바구니에 넣으면서 '와 저거 입고 추울 때 야구장 가면 딱 좋겠다'라는 마음이 드는 걸 보니 나도 정상은 아니다. 아마, 롯데가 가을야구 진출의 쾌거를 이루어 내면 장바구니에 있는 점퍼를 구매할 것 같다. 물론, 한동안 구매하지는 않을 것 같아 지갑을 지켜서 다행이기도 한데, 그러면 롯데가 또 탈락할 거라는 말이니 또 슬프기도 하다. 엘지트윈스 팬 형의 말처럼 하여간 언젠간 되겠지.


올해 전 세계 야구 중에 가장 늦게 퇴근한 곳은 11월 2일 끝난 미국 메이저리그다. 9월에 끝난 롯데에 비하면 거의 초특급 야근에 과로사할 야구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최종 라운드인 월드시리즈는 LA다저스의 일본인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의 원맨쇼로 끝났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월드시리즈 7차전 중 3번을 등판해 3승을 따내며 팀의 2년 연속 우승을 이끌어 MVP로 선정됐다. '같은 팀의 오타니가 시즌 내내 잘하더니 이번엔 야마모토가 잘했네. 야구에는 한류가 없나? 이 선수들 한국계 아닌가?'라고 영혼 없이 부러워하면서 기사를 보는데, 메이저리그 기사에 롯데의 故최동원 선수의 이름이 언급되는 걸 발견했다.

제목 없음.png '야마모토야 우짜노'까지 제목에 나왔다...

그러니까 야마모토가 월드시리즈에서 3승을 했다고 롯데자이언츠의 최동원 선수의 한국시리즈 4승 활약과 비교하는 기사 제목이었다. 보자마자 '아니 이건 아니지' 하는 남의 칼퇴를 보는 것 같은 깊은 빡침이 몰려왔다. 이렇게 기사를 쓰고 기자들은 칼퇴했겠지? 야마모토와 최동원은 비교가 안 된다. 야마모토는 꼴랑 월드시리즈 2,6,7차전 3번 나와서 17과 1/3이닝, 230구 던져 3승 했다. 최동원은 한국시리즈 1,3,5,6,7차전 나와서 40이닝, 610구를 던지고 4승 1패 했다. 최동원은 1,3,5,7차전은 선발로 나와서 끝날 때까지 던졌고, 6차전은 구원으로 나와서 던졌다. 던지고 하루 쉬고, 또 하루 던지고 하루 쉬고, 3일 연속으로 던졌다. 야마모토보다 380구를 더 던졌고 23이닝 정도를 더 던졌다. 그런데도 한국시리즈 MVP는 짜릿한 역전 3점 홈런의 짜릿한 이름 유두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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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렇게 기록으로 보니까 정말 눈물이 날 것 같다. 1984년에 최동원은 284이닝을 던져 27승을 거두고, 1985년에는 225이닝 20승, 1986년에는 267이닝 19승, 1987년에는 224이닝 14승을 올렸다. 최동원 선수는 매년 최소 220이닝 이상을 던지는 엄청난 혹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두 자릿수 승수를 올리는 등 초인적인 활약을 지속했다. 기계도 이렇게 던지는 기계가 있었다면 금방 고장 났을 것 같다. 말 그대로 최동원 선수는 그야말로 혹사당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산업재해나 가혹행위 같은 것으로 구단을 고소한다면 내란 재판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판사를 만나도 구단은 유죄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1988년, 최동원은 선수들의 복지를 위해 선수들의 노동조합 성격의 선수협의회를 구성하려 했다가 구단의 반대로 실패한다. 당연하게도 선수협의회에 반대하던 구단과 완전히 틀어지게 되고, 이런 갈등 때문에 겨울에 롯데와의 계약도 늦어져 시즌 중간인 6월 29일에 겨우 복귀한다. 최동원은 1988년에는 83.1이닝 만을 던져 7승 만을 거두고, 다음 해에는 당시 ‘무노조 경영 방침’의 기업, 삼성으로 트레이드된다. 그 후로 최동원에 걸맞지 않은 성적을 거두다 1990년에 은퇴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롯데에 버림받자 더 이상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요즘 야구는 투수의 어깨를 지키기 위해 이닝 제한, 투구 수 제한이 철저하다. 하지만 최동원은 그런 보호장치가 없던 시대의 투수였다. 그는 ‘기계처럼 던진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던질 수 있었던 기계’였다. 그를 혹사시킨 시대는 잔인했지만, 동시에 그를 전설로 만들었다. 그때는 야구가 산업이 아니라 신념이던 시절이었고 최동원은 그냥 일반적인 야구 선수가 아니었다. 당대 최고 스타였음에도 팀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던 사람이었고, 다른 선수들의 복지를 위해서 그 엄혹한 시절에 총대를 메고 선수협을 만드려던 선구자이자 든든한 형이었다. 야마모토와 비교하기에는, 아니 그 어떤 선수를 가져와도 그 선수가 뭔가가 모자란 것이 아니라 최동원이라는 사람이 너무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함부로 최동원이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9월은 늘 롯데의 야구가 끝나는 가장 슬픈 달이지만, 최동원 선수가 우리 곁에서 영원히 떠난 달이기도 하다. 롯데의 역사는 어쩌면 매년 패배의 기록이 아니라, 최동원의 그림자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는 끝내 승리보다 정의를 택했고, 영광보다 인간을 먼저 생각했다. 지금 롯데의 마운드에는 (이길 때만) 여전히 최동원의 숨결이 들리는 것 같다. 언젠가 롯데가 진짜 가을야구를 하게 된다면, 그건 아마 ‘최동원의 빚’을 갚는 날일 것이다. 하여간 언젠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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