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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생물 선생님 May 21. 2024

손 편지에 진심인 정생물

종석이에게 받은 손 편지

나는 내 가족,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받은 손 편지부터 교사가 되고 난 뒤에 아이들에게 받은 손 편지를 아직 다 보관하고 있다. 심지어 교생 때 받은 손 편지도 있고, 편지라 하기엔 아주 작은 쪽지까지 다 간직하고 있다. 제자들에게 받은 손 편지 중에는 제자 종석이에게 그때부터 지금까지 받은 편지가 5개로 제일 많다. 종석이는 신규 발령받은 학교의 1학년 8반 학생이었고, 이과반으로 진학해서 3학년 3반에 가기까지 내가 3년간 가르친 아이로 장난기 가득한 모습도 보여줬지만 애늙은이 같기도 해서 어떤 상황에서는 나보다 더 선배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졸업 후 스승의 날에 만난 내 첫 제자들, 종석이는 누구일까요?


처음으로 받은 편지는 종석이가 2학년 크리스마스 때 써준 건데 2학년까지 공부를 마치고, 세상이 넓다는 것을 느꼈고 언젠가 무척 힘든 표정으로 열정이라는 것이 줄어 보이던 모습으로 수업을 하러 온 나를 보면서 자기랑 비슷하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괜찮아 보이는 나를 보면서 자기도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전체적인 나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괜찮은 분이라고 생각했고,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는 말도 있었다.


두 번째로 받은 편지는 종석이가 고3 스승의 날에 써준 편지로 성적이 마음먹은 대로 잘 나오지 않아서 힘들고, 교사 3년 차인 나에게서 가르침의 정교함이 생겼다는 칭찬도 있었다ㅋㅋㅋㅋㅋ 고3 중간고사를 친 직후에 쓴 편지였기 때문에 지금은 좋든 싫든 달려야 할 시기로 더 열심히 할 것이고, 앞으로도 사제 간의 두터운 정이 남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세 번째로 받은 편지는 종석이가 졸업을 한 후 스승의 날에 연제고 1기 아이들과 만남을 가지고 난 뒤에 학교로 보내준 것이었는데 대학교 1학년 새내기의 고민이 담겨 있다. 성적을 잘 받거나 연애를 잘하거나 친구를 잘 시귀거나 정말 잘 놀거나 이거 중에 하나만 잘해도 대학 생활은 성공이라고 들었다며 나에게는 몇 가지를 성공했는지 물어봤는데 지금 대답하자면 나는 2개 정도 성공한 느낌이다. 4.18로 최우등 졸업이라는 금색 스티커가 내 대학 졸업장에는 있으니까 확실히 1개는 성공한 것 맞겠지? ㅋㅋㅋ 연제고 어느 친구들 하나 나를 싫어하는 애들을 못 봤다며 졸업 후에도 만날 수 있는 나와 친구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자랑이라기보다는 최우등 졸업 팩트 체크 ㅋㅋㅋㅋㅋ


네 번째로 받은 편지는 군대에서 보낸 것으로 전라도에 있는 육군화생방학교에서 15주의 교육을 마치고 2년간 근무할 강원도 인제로 가기 전에 쓴 것이다. 군대에 와서 인생에 대해 생각한 점도 적혀 있고,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을 지나 군인이 된 그때까지 나와 연락이 되어 좋고, 내가 매번 좋은 말씀을 해줘서 마음의 위안이 되었으며 세월이 흘러 먼 훗날이 되어도 지금과 같은 멘토가 돼주면 좋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후 대기업에 취직한 종석이와 만나서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직장의 조직 문화가 좋지 않아서 너무 힘들고,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때 나는 꼰대 같이 종석이한테 이야기한 게 아직도 미안한데 다른 무엇을 하고 싶은지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현재 있는 곳이 힘들다고 회피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어디로 이직하고 싶은 건지 확실히 결정되기 전까지는 힘들어도 다니는 게 좋지 않겠냐는 느낌의 쓸데없는 말을 조언이랍시고 했던 것 같다. 종석이라면 어떤 일을 해도 잘할 것이고, 종석이 성격에 적응하기 힘든 회사라면 그 회사가 진짜 엉망인 것인데 그런 이상한 회사 당장 그만두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직장 찾아보라고 응원은 못할 망정 이상한 소리만 해서 그 후에 너무 미안했는데 이런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없어서 아쉽기도 했다.  


경기도에 있는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한 후 잘 지내는 것을 보고, 역시 종석이는 어딜 가도 잘할 아이라고 생각했다. 멀리 가고 난 뒤에는 만나기 힘들었는데 올해 4월 다른 아이 한 명과 함께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내 첫사랑 연제고 1기를 만나면 나는 그때 분명 신규 교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나도 싫었던 선생님 욕을 애들이랑 같이 하면서 마치 나도 연제고 1기 동기처럼 이야기하게 된다. 1기 아이들은 담임도 안 했는데 거의 다 기억이 난다. 3년 가르친 이과 아이들은 당연하고, 2학년까지 수업했던 문과 아이들까지. 내가 현재 근무하는 학교 근처에서 만나서 고기를 먹고, 너무 아쉬워서 우리 동네로 넘어와서 온천천으로 2차를 갔는데 밤에 보는 벚꽃도 너무 예쁘고, 맥주도 꿀맛이었다. 수술을 앞두고 술을 먹으면 안 될 것 같았지만 훈훈한 이 아이들과는 꼭 한 잔 하고 싶었다.


 종석이는 이번에도 훈훈하게 선물과 손 편지를 써서 나에게 주었고, 12시가 넘어서 집에 온 나는 편지를 읽다가 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ㅠㅠ 종석이에게 허락을 받고 올해 4월에 받은 편지는 원본으로 공개해 본다.



연제고 1기는 진짜 내 첫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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