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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생물 선생님 May 23. 2024

용기는 나는 게 아니라 내는 것

정생물의 슬럼프 극복기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에 일어난 나는 개그맨 신윤승의 세바시 강연을 듣게 되었다. 새로 부활한 개그콘서트를 2~3번 본 것 같은데 그중에서 가장 신선했던 캐릭터여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목에 적은 "용기는 나는 게 아니라 내는 것이다." 개그맨 신윤승도 어디서 들은 말이라고 했고, 무명 시절 13년간 좌절하면서 어떻게 용기를 냈는지에 대한 강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myvk3ENagU4


나는 현재 5번째 학교에서 근무하는 중견교사가 되었지만 1~3번째 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거의 매년 슬럼프를 겪었던 것 같다. 대부분 환절기에 몸이 아프면서 발생하게 되었는데 신규 때 환절기에 감기가 걸린 것처럼 아팠지만 전화를 해서 병가를 쓰고 병원에 가면 된다는 개념조차 없었기 때문에 꾸역꾸역 출근을 했고, 열이 나는 것 같아서 교무실에 비치되어 있던 구급함에서 체온계를 꺼내 체온을 측정했더니 열이 거의 39도. 옆에 계신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출근을 왜 했냐고, 빨리 조퇴하고 병원에 가라고 하셨다.


비가 억수같이 오던 날이었는데 미련한 나 자신을 탓하며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진료를 다 보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저기 혹시 담배 피우세요?" 하셔서 "네?" 했더니 그만큼 기관지가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이 에피소드를 후에 다 이야기하면 남자 제자들은 이제 제발 좀 담배 끊으라고 말한다 ㅋㅋㅋㅋㅋ 그럼 나도 이제 끊어야지라고 대답하지 ㅋㅋㅋ 그러면서 링거 하나 맞고, 가라고 하셨다. 수액을 꽂고, 병원 침대에 누워 비가 내리는 창문을 보며 '아~ 아프면 학교에 연락해서 병가를 써야 하는구나.'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후 계속 수업을 해서 그런가 약을 먹어도 목 컨디션이 잘 돌아오지 않았고, 그 해 5월에는 교생 선생님이 여러 명 왔던 것 같은데 발령받은 지 2달 좀 넘은 상황에서 내가 제일 어린 교사라 아이들에게 받던 사랑을 교생들이 가져가서 그런지 ㅋㅋㅋ 몸도 마음도 아픈 슬럼프가 찾아왔다. 운전 면허증은 수능을 치고 바로 땄지만 운전은 4년 차 때 고3 담임을 하게 되면서 시작했으니 신규 때는 버스를 타고 출퇴근했었는데 배산역에 내려야 학교에 갈 수 있는데 배산역이 다가오면 '내리기 싫다. 지나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실행에 옮길 배짱은 없었기 때문에 배산역에 내려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출근을 했던 것 같다.


마음이 이런데 수업이 제대로 되었을까? 기계처럼 수업을 하니 수업도 잘 안되고, 그러니까 더 다운되고 이러면서 악순환을 그렸던 것 같다. 출근하기 싫으니 출근해서도 교실에 들어가기 싫고, 교실에 들어가기 싫으니 그 공간에서 수업이 잘 될 수가 없었으며 수업이 잘 안 되니 아이들 보기 미안하고, 그러니까 또 출근하기 싫어지는 악순환... 4년 차 때는 7층에 우리 반이 있었는데 슬럼프가 온 시기에는 7층 창문을 쳐다보면서 '여기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도 종종 했다. 우울할 때 창문을 보는 게 위험한 이유이다.


용기는 나는 게 아니라 내는 것

이 말을 내 신규 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그렇게 찾아온 슬럼프 때 용기가 나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슬럼프에서 탈출하기 위한 용기를 내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용기가 나서 슬럼프에서 탈출할 수 있을 거야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내 내면과 직면을 잘 못하는 성격으로 이런 슬럼프가 왔을 때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과 전시회 보면 좋아지겠지 싶어서 해봤지만 컨디션은 좋아지지 않았다. 내 내부에서 생긴 문제인데 외부적인 어떤 것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3년 차 이후로는 매년 슬럼프 없이 평온한 나날들을 보냈다. 여고에서 근무해서 그런 것인지 내가 바뀌어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왜냐면 그 이후로 나는 계속 여고에서만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학교로 남고를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암튼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누구나 자신만의 힘든 일들을 다 가지고 있다. 용기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개그맨 신윤승이 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용기는 나는 게 아니라 내는 것이니 오늘부터 당장 용기를 내서 작은 것이라도 시작해 보라고, 그러면 우리 삶이 조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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