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차 1-8 첫 담임 이야기
신규 발령 학교의 교장선생님은 좀 안 좋기로 유명한 분이었는데 암튼 신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오신 선생님 등등 못 믿는 선생님들에게 담임을 줄 수 없다는 원칙을 가지고 계셨다. 그래서 그해 1학년 담임 8명 중에는 원로교사들이 포함되었다. 지금은 담임을 다 안 하려는 분위기로 신규 교사가 담임에서 빠지는 일이 없겠지만 그때 그 교장선생님의 마인드로 인해 나는 첫 해에 담임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이상하게도 그 교장선생님은 여학생 반 담임은 여교사, 남학생 반 담임은 남교사가 해야 된다는 또 다른 원칙도 가지고 계셔서 나는 2년 차에 여학생반이었던 1-8 담임을 하게 되었다. 내가 고1 때 1-8 학생이었으므로 뭔가 그냥 8반 담임이라는 사실이 좋았다.
요즘은 좀 분위기가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입학식, 개학식날 강당에서 담임 소개가 이루어졌는데 나는 1학년 담임이었으므로 입학식날 강당에서 아이들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얼마 전에 이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를 다시 읽어보고 알았는데 강당에서 1-8 담임으로 내가 소개되었을 때 2학년 선배들의 환호성이 가장 커서 우리 반 선생님은 좋은 분이구나 했다고 ㅋㅋㅋㅋㅋ 하지만 그 생각은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었다.
신규 때는 열정만 가득했지 노하우도 없었고, 아이들이 어떤 담임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날 싫어할 수 없겠지 이런 느낌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아이들은 급식표나 성적표 자기들이 받고 싶어 하는 가정통신문이나 종이는 다른 어떤 반보다 빨리 받길 원한다. 다른 반은 다 받았는데 우리 반만 늦게 주는 걸 보통 싫어한다. 그래서 지금은 어느 누구보다 우리 반에 빨리 제공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때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또 여학생들은 기본적으로 교실 게시판 관리나 청소 시간에 청소를 열심히 하는 편이다. 게시판 꾸미는 것을 아이들에게 맡겼어도 잘했을 텐데 나는 첫 담임이니 우리 반 게시판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고나 할까? ㅋㅋㅋㅋㅋ 부산대 앞에 있는 큰 문방구에 가서 여러 가지 물품을 사서 내 스타일대로 꾸몄다. 그리고 제대로 된 교사의 역할을 다 하면 그만이었을 텐데 그건 잘 안 챙기면서 이벤트는 또 해주려고 했었다. 야자 시간에 붕어빵 사주기, 이미지 테스트, 생물샘인데 우리 반 아이들 혈액형 별로 모아서 사진 찍기 등등.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서 보면 진짜 아이들이랑 이것저것 해서 인스타에 올리는 젊은 선생님이 있는데 내 신규 시절 싸이월드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인스타 있었으면 나는 쓸데없는 이벤트를 하면서 더 엉망이었을 것이라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ㅋㅋㅋㅋㅋ
아이들 생각과는 상관없이 나는 이 아이들을 따라 2학년 담임을 하고 싶었지만 다음 해 나는 비담임에 연구학교 주무 업무를 맡게 된다(3년 차 교사가 되는 나에게 연구학교 주무를 맡기고 싶었던 것이라기보다는 아무도 그 업무를 안 하려고 해서 그런 것 같다). 청렴 연구학교라니 ㅠㅠ 너무 하기 싫은 업무였던 기억... 암튼 4년 차에 다시 여자 이과반 고3 담임을 하게 되면서 1학년 때 우리 반 아이들 중에 이과반으로 진학한 아이는 다시 담임으로 만나게 되었다. 4년 차 때도 뭐 진학 지도 이런 건 1도 모르면서 배산에서 보물찾기, 벚꽃 필 때 단체 사진 찍기, 축구 경기 스코어 맞힌 아이에게 상품 주기 등등 이벤트에 집중했던 기억 ㅋㅋㅋㅋㅋ
항상 모든 것이 서툴렀던 첫 학교에서의 정생물은 4년 내내 좌충우돌했던 기억이 있어 이때 만난 아이들에게 항상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연락하는 1기, 2기 아이들에게는 맛있는 밥을 사주면서 훈훈한 정생물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려고 한다 ㅋㅋㅋㅋㅋ 물론 아이들은 그때의 내가 진짜 20대 사회 초년생이었기 때문에 자기들이 좀 더 말 잘 듣고 했어야 하는데 하면서 미안해한다. 서로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말하는 훈훈한 사제 지간 ㅋㅋㅋ 하지만 이 아이들은 몰라도 나는 안다. 그다음 학교에서 내가 가르쳤던 방식이나 출제했던 시험문제, 담임으로서의 학급 경영 등과 비교해 보면 첫 학교에서의 4년은 진짜 우당탕탕 정생물이었다. 그 당시 출제 했던 시험 문제를 지금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부끄럽고 마음에 안 드는 문제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교사를 사랑으로 감싸준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다시 한번 말하고 싶고, 지금 까지 연락하는 제자들에게는 내가 평생 AS 하는 느낌으로 만날 때마다 비싸고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면서 이제 같은 성인으로 동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