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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생물 선생님 May 27. 2024

축구 잘하는 남학생이 최고

축구 우승하는 반이 되자

신규 때부터 나는 축구 잘하는 남학생이 좋았다. 남학생들은 체육 시간뿐만 아니라 시간만 나면 축구나 농구를 하는데 나는 생물 잘하는 아이들도 물론 좋았지만 특히 축구 잘하는 남학생이 좋았다. 그 이유는 남자아이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너무 행복해 보이고, 건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축구하는 남학생 중에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아이가 있을까? 하지만 생물 시간에는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다. 나는 생물샘이니까 생물 시간에 열심히 하고, 생물도 잘하고, 축구도 잘하는 아이가 베스트였지만 아시다시피 축구를 잘하는 애들 중에 생물까지 잘하는 아이가 존재하기는 어렵다.ㅋㅋㅋ


신규 때 축구 잘하는 아이랑 친하게 지냈는데 그런 남학생은 후배 여학생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때 내 나이가 25세였으니 여학생들이 날 선생님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여대생 정도로 생각했을까? 자기들이 좋아하는데 나랑 친하게 지내는 특정 오빠는 생물샘 꺼라며 ㅋㅋㅋ 좋아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하는 여학생도 있었다.


두 번째 학교로 남자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고, 그 학교는 운동장에 잔디가 깔려 있었으며 창문에는 항상 축구화가 걸려 있는 축구에 진심인 아이들이 많은 학교였다. 이 학교에서 나는 담임을 2년간 했는데 항상 축구 우승을 목표로 응원했지만 내 꿈을 이뤄준 아이들은 없었다. 왜냐면 꼭 그런 건 아닌데 이과 아이들보다 문과 아이들이 좀 축구를 더 잘한다 ㅋㅋㅋㅋㅋ 나는 생물 교과 특성상 이과반 담임을 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 반은 토너먼트 어디 중간쯤에서 항상 탈락했던 기억.


그 학교는 K리그라고 해서 체육대회 말고, 봄에 자기들만의 축구 토너먼트 경기를 하는데 그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이들이 다 창문에 붙어서 축구 구경하는 걸 관리자들이 꼴 보기 싫어했다. 하지만 나는 당당히 내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스탠드에 나가서 구경하곤 했는데 어차피 교실 창문에 매달려서 보는 걸 내려가서 당당하게 보자는 배짱이 있지는 않았고, 순전히 내가 스스로 직관을 하고 싶어서 애들을 데리고 나갔다. 뭐 교감이 와서 뭐라고 하면 혼나면 되지 이런 마인드로 ㅋㅋㅋㅋㅋ


그래서 어느 해는 K리그 전경기 직관의 업적을 달성하게 되었다. ㅋㅋㅋ 그리고 우리 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이들이 마실 물과 이온 음료를 사서 응원하곤 했는데 참 내 마음과 다르게 축구 우승은커녕 결승전에도 우리 반은 못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그 학교 스탠드에는 연보라색의 등나무꽃이 엄청 예쁘게 피는데 그 아래에 앉아 축구를 하면서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 그런 시간은 나에게도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세 번째 학교로 갔을 때 나는 첫 해에 2학년 이과반 담임을 했고, 아이들에게 축구 우승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이과반이 되겠어? 이런 느낌으로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 해 체육대회 축구 결승에 올라간 우리 반은 체육대회 당일에 비가 와서 수중전을 치르게 되는데 공부도 잘하고 축구도 잘하는 거의 손흥민급의 외모와 인성을 지닌 우리 반 반장 재정이의 중거리 슛으로 우리 반이 축구 우승을 하게 된다. 재정이는 3학년 때도 열심히 축구를 하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적이 있는데 진짜 너무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건강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이 일로 의대 재수해서 간 거 아니냐고 지금은 농담을 하지만 그 당시 진짜 재정이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하고 얼마나 마음이 쓰였는지 모른다. 내가 만난 남학생 중에 생명과학 등급도 축구 실력도 인성도 외모도 모두가 탑인 아이는 재정이가 유일할 것이다. 재정이는 내 교직 생애 만난 최고의 남학생이라고 할 수 있다.


손흥민처럼 멋진 재정이는 과연 누구일까요? ㅋㅋㅋ


네 번째, 다섯 번째 학교는 여고에서 근무하므로 축구 경기는 없지만 또 다른 체육대회의 맛이 있다. 하지만 나는 축구 잘하는 훈훈한 남학생을 좋아하는 교사로 내 교직 생애 축구 우승 한 번은 안 될 것 같으니 다음에는 축구에 진심인 아이들이 있는 학교로 이동해 볼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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