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우승하는 반이 되자
신규 때부터 나는 축구 잘하는 남학생이 좋았다. 남학생들은 체육 시간뿐만 아니라 시간만 나면 축구나 농구를 하는데 나는 생물 잘하는 아이들도 물론 좋았지만 특히 축구 잘하는 남학생이 좋았다. 그 이유는 남자아이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너무 행복해 보이고, 건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축구하는 남학생 중에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아이가 있을까? 하지만 생물 시간에는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다. 나는 생물샘이니까 생물 시간에 열심히 하고, 생물도 잘하고, 축구도 잘하는 아이가 베스트였지만 아시다시피 축구를 잘하는 애들 중에 생물까지 잘하는 아이가 존재하기는 어렵다.ㅋㅋㅋ
신규 때 축구 잘하는 아이랑 친하게 지냈는데 그런 남학생은 후배 여학생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때 내 나이가 25세였으니 여학생들이 날 선생님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여대생 정도로 생각했을까? 자기들이 좋아하는데 나랑 친하게 지내는 특정 오빠는 생물샘 꺼라며 ㅋㅋㅋ 좋아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하는 여학생도 있었다.
두 번째 학교로 남자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고, 그 학교는 운동장에 잔디가 깔려 있었으며 창문에는 항상 축구화가 걸려 있는 축구에 진심인 아이들이 많은 학교였다. 이 학교에서 나는 담임을 2년간 했는데 항상 축구 우승을 목표로 응원했지만 내 꿈을 이뤄준 아이들은 없었다. 왜냐면 꼭 그런 건 아닌데 이과 아이들보다 문과 아이들이 좀 축구를 더 잘한다 ㅋㅋㅋㅋㅋ 나는 생물 교과 특성상 이과반 담임을 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 반은 토너먼트 어디 중간쯤에서 항상 탈락했던 기억.
그 학교는 K리그라고 해서 체육대회 말고, 봄에 자기들만의 축구 토너먼트 경기를 하는데 그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이들이 다 창문에 붙어서 축구 구경하는 걸 관리자들이 꼴 보기 싫어했다. 하지만 나는 당당히 내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스탠드에 나가서 구경하곤 했는데 어차피 교실 창문에 매달려서 보는 걸 내려가서 당당하게 보자는 배짱이 있지는 않았고, 순전히 내가 스스로 직관을 하고 싶어서 애들을 데리고 나갔다. 뭐 교감이 와서 뭐라고 하면 혼나면 되지 이런 마인드로 ㅋㅋㅋㅋㅋ
그래서 어느 해는 K리그 전경기 직관의 업적을 달성하게 되었다. ㅋㅋㅋ 그리고 우리 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이들이 마실 물과 이온 음료를 사서 응원하곤 했는데 참 내 마음과 다르게 축구 우승은커녕 결승전에도 우리 반은 못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그 학교 스탠드에는 연보라색의 등나무꽃이 엄청 예쁘게 피는데 그 아래에 앉아 축구를 하면서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 그런 시간은 나에게도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세 번째 학교로 갔을 때 나는 첫 해에 2학년 이과반 담임을 했고, 아이들에게 축구 우승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이과반이 되겠어? 이런 느낌으로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 해 체육대회 축구 결승에 올라간 우리 반은 체육대회 당일에 비가 와서 수중전을 치르게 되는데 공부도 잘하고 축구도 잘하는 거의 손흥민급의 외모와 인성을 지닌 우리 반 반장 재정이의 중거리 슛으로 우리 반이 축구 우승을 하게 된다. 재정이는 3학년 때도 열심히 축구를 하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적이 있는데 진짜 너무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건강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이 일로 의대 재수해서 간 거 아니냐고 지금은 농담을 하지만 그 당시 진짜 재정이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하고 얼마나 마음이 쓰였는지 모른다. 내가 만난 남학생 중에 생명과학 등급도 축구 실력도 인성도 외모도 모두가 탑인 아이는 재정이가 유일할 것이다. 재정이는 내 교직 생애 만난 최고의 남학생이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학교는 여고에서 근무하므로 축구 경기는 없지만 또 다른 체육대회의 맛이 있다. 하지만 나는 축구 잘하는 훈훈한 남학생을 좋아하는 교사로 내 교직 생애 축구 우승 한 번은 안 될 것 같으니 다음에는 축구에 진심인 아이들이 있는 학교로 이동해 볼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