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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생물 선생님 Sep 08. 2024

아무튼 글쓰기

episode 5

올해 5월, 2개월의 병가 기간 동안 건강을 챙기기 위한 여러 가지를 하면서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누구보다 잘 보내고 싶어서 선택한 글쓰기. 제자가 "선생님, 브런치 아세요? 글 적어보시는 건 어때요?" 했을 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브런치와 글쓰기에 진심이 될지 몰랐다. 브런치는 알고 있었지만 그 공간에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제자의 한 마디에 추진력 좋은 나는 바로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고, 작가로 선정된 후 100일이 조금 지난 것 같은데 참 많은 글을 썼다.   

            

처음에는 나를 아는 사람들, 그러니까 가족, 친구, 동료 교사,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제자들과 졸업한 제자들이 내 글을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하지만 요즘에는 나를 위해서 쓰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바쁜 와중에 브런치에 글까지 적는다고 나에게 부지런하다고 하시지만 나는 브런치에 접속해서 글을 쓰면 힐링이 된다. 온전하게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글을 쓸 때면 차를 마실 때처럼 편안하고,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를 위해 쓴다고 해도 브런치에 글을 발행한다는 건 물론 내가 정성 들여 쓴 글을 누군가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당연히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내가 글을 발행하고, 라이킷과 댓글이 내가 생각한 것만큼 안 올라오면 시루묵해지기도 한다. 아직도 기억나는 중학생 시절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없던 나는 미술 시간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뭐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학생이었으므로 미술 시간에도 최선을 다했다. 아 이번은 진짜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제출하면 내 작품에 A라는 선생님의 점수가, 이번에는 진짜 A 받을 것 같은데 하고 제출하면 B 또는 C를 받았던 경험. 교사가 되고 난 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수업을 들어가기 전에 '이 반 저번 시간에 수업 태도 엉망이었는데 진짜 들어가기 싫어.'라고 생각하고 들어가면 수업이 잘되고, 수업 분위기 좋은 반에 신나게 들어가면 또 실망하고 나온 경험들. 브런치에 글을 적을 때도 어떤 글은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발행했는데 많은 관심을 받기고 하고, 이거 진짜 좀 잘 쓴 것 같은데 하고 올리면 반응이 시큰둥해서 속상하기도 했다. 역시 모든 감정들이 타인의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내가 큰 기대를 했으니 실망도 하게 된 것이었다.

    

글 쓰는 시간도 행복하지만 브런치에서 만난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작가님과의 소통도 즐겁다.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글쓰기에 진심인 분들과 서로의 글을 읽고, 댓글로 이야기하다 보면 마치 진짜 작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의 글을 읽어주는 분들이 그저 고맙고, 댓글을 달아주는 분들은 더 고맙다. 나는 댓글을 달았다는 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구독하고 있는 작가님 글을 읽을 때면 댓글을 적으려고 노력한다.   

            

다음 주에 수시 접수 기간인데 나의 교직 생활 초반에만 해도 지금은 몇몇 대학에만 남고 거의 없어진 학생들의 자기소개서와 교사 추천서가 필수인 전형이 많았다. 그래서 8월부터 9월까지 아이들 자소서도 엄청 읽고, 추천서도 여러 개 작성했는데 자소서 읽을 때면 '역시 이과 아이들은 진짜 글을 못 쓰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교사 추천서를 쓰면서 '아 나도 이과였지? 나도 글을 못 쓰네. 그래도 이 글을 읽는 교수님들도 이과니까 괜찮을 거야.' 하면서 마음에 위안을 삼으며 그 아이가 진심으로 그 대학에 합격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최선을 다해서 썼다. 교사 추천서는 내 글을 읽는 대상자가 확실한 글이었는데 내가 브런치에 적는 글은 주로 어떤 사람들이 읽을까? 친한 국어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다가 아이들과 글쓰기 수행평가를 진행할 때 예상 독자를 누구로 생각하고 있는지 적는다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예상 독자? 브런치 글을 처음 적을 때만 해도 나는 너무 신난 나머지 내가 적고 싶은 글을 매일매일 쏟아냈는데 이제 2학기 개학을 하고 일주일에 2~3개 정도 다른 주제의 브런치북에 글을 연재하면서 그 브런치북의 예상 독자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무튼 글쓰기에 빠져서 브런치에 매일 접속하고, 내 글을 읽어주는 구독자가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정말 행복하다. 초반에는 나를 아는 분들이 주로 내 글을 열심히 읽고 리액션해 주는 느낌이었지만 이제는 글쓰기에 진심이라 브런치에 글을 쓰는 분들이 많이 읽어주시는 것 같아서 신난다.            

    

내가 요즘 빠져있는 9월 초에 컴백한 데이식스의 9집 미니 앨범 타이틀곡 제목이 "녹아내려요"인데 가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고생했어 오늘도 한마디에 걷잡을 수 없이 스르륵 녹아내려요. 죽어가던 마음을 기적처럼 살려 낸 그 순간 따뜻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요. 너의 그 미소가 다시 버텨 낼 수 있게 해 줘요. 걱정 마 괜찮아 옆에 내가 있잖아. 너의 그 말이 날 다시 일어서게 해."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나도 스르륵 녹아내린 경험이 있다. 뭐라고 표현하긴 어렵지만 글을 쓰고 난 이후의 내 삶은 그 전과 달라진 느낌이 있다. 이제 내 하루 24시간에는 글을 쓰는 시간과 글을 읽는 시간이 꼭 있는데 아무튼 글쓰기를 하면서 느낀 행복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잘 쓰지는 못하지만 이런 일기 같은 에세이도 꾸준히 쓰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소설도 언젠가는 꼭 한번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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