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 동료 교사를 도와주고 싶어요
브런치북 하나에 총 30개의 글을 적을 수 있기 때문이 이 글이 "좌충우돌 교사 성장 일기" 마지막 글이다. 마지막 글을 어떤 이야기로 적을까 하다가 어제 나와 동갑인 친한 선생님과 이야기한 내용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내가 병아리 교사 시절 우리 과 선배님 한 분이 교사는 배워서 남 줘야 하는 직업이라고 했다. 배워서 남을 준다는 건 교사가 학생들에게 자신이 담당하는 교과목의 지식만 전달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자신이 가르치는 교과목의 성취 기준을 달성하게 하는 건 물론이고, 교사 본인이 아는 모든 노하우를 동원해 학교 생활을 적응하도록 돕고, 대입 상담도 하고, 몇 년 뒤에 성인이 될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것. 이게 내가 생각하는 그 선배가 말했던 배워서 남주는 게 아닐까? 그리고 교사는 학생 지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도 있으므로 업무를 담당하다 보면 동료 교사와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한다. 나도 선배 교사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그 선배 교사들이 나이스나 구글 클래스룸 등 자꾸 바뀌는 제도와 시스템 사용을 힘들어하실 때 도와주고 있고, 후배 교사들이 나처럼 좌충우돌하지 않게 도와주고 싶다.
교무실에서 생활하다가 다른 선생님이 업무상 놓친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나는 그 일이 빨리 해결될 수 있도록 오지랖을 떠는 편이다. 우리 부서 일이 아니라도 내가 어떻게 하다가 알게 되었으니 그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내 에너지를 쓰는 일. 하지만 그러다 보면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나는 좋은 의도로 도와주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지만 업무 담당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걸 몇몇 사람이 알게 되므로 의도치 않게 주변 사람들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담당하는 모든 학생들과 내 옆의 모든 동료 교사들이 아닌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내 에너지를 쓰려고 노력한다.
우리 학교의 이런저런 여건과 특성상 우리 학교에는 20대와 30대의 신규 선생님 또는 중학교에 첫 발령을 받고 두 번째로 고등학교에 올라오고 싶어서 오시는 분들이 많다. 교직생활의 첫 번째와 두 번째 학교에서 배우는 많은 것들이 남은 교직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을 아는 입장에서 후배 교사들을 도와주고 싶을 때가 있다. 병아리 선생님들이 자신의 경험 데이터를 축적해야 하는 시기에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학년과 부서에서 생활하다 보면 '아, 학교는 이런 곳이구나.'하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버릴 수 있으므로 신규 발령 학교와 두 번째 학교는 중요하다. 그리고 사실 두 번째 학교부터는 이제 신규가 아니기 때문에 선배 교사들의 도움을 받기 어려울 수도 있으므로 첫 번째 학교는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어린 선생님들 본인의 교과 수업은 알아서 잘할 수 있고, 선배교사들보다 훨씬 더 뛰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이나 담임교사의 역할 등은 좀 제대로 된 시스템 속에서 선배 교사의 도움을 받는 일이 필요하다.
담임을 하다 보면 나와 소통하려고 하고, 필요할 때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정말 1년을 같이 보내도 몇 마디 나눠보지도 않는... 그래도 학생들은 성인이 아니고, 소통을 하는데 미성숙할 수 있으므로 나는 우리 반 아이들 모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보려고 한다. 그런데 후배 교사들은 또 다르다. 나와 동학년을 하거나 같은 부서에 소속된 후배 교사들이 뭔가 제대로 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그들에게 이런 방법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성인이고, 그들이 나를 신뢰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내가 선배교사랍시고 먼저 도와주겠다고 손길을 내밀 수는 없는 현실. 질문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업무를 처리하고 대입 상담도 처음 하면서 대충 해버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에휴 저렇게 하면 안 될 텐데... 첫 번째 학교에서 저렇게 근무하면 앞으로 본인도 힘들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도움을 필요로 하고, 선배 교사의 노하우를 알고 싶어 하는 후배에게는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알려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후배들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어렵다.
교사들 중에는 자기 확신이 강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하거나 업무를 처리할 때는 그 결과가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일들이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행동, 나의 말 한마디가 아이들 인생을 바꾸기도 하고, 우리가 하는 업무 대부분이 학생들과 연결되기 때문에 어린 교사들 뿐만 아니라 교사 모두가 자신이 하는 모든 것들이 옳다는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의 일들이 같은 일이 매년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반영하지 않았을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어린 교사가 처음 업무를 처리하고 처음 대입 상담을 할 때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을까?' 하는 고민이 될 텐데 옆에 있는 선배 교사들에게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걸까? 대부분 후배들의 질문에는 도와주려고 하는 선배들이 많을 텐데...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그냥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해석해서 해버리고, 그걸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억울해하는 몇몇 후배들을 보고 있으면 뭔가 마음이 쓰인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기꺼이 내 시간과 지식, 노하우를 내어주는 일. 나의 성장을 위해서 그리고 제대로 남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도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다음 주 전문적 학습 공동체 시간에 듣게 될 챗GPT를 활용한 수업 강의가 기대된다. 그 강의가 2학기 남아 있는 내 수행평가 한 영역에 사용할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길 바랄 뿐이다. 배워서 남주는 삶, 나의 에너지를 전달했을 때 그것을 고맙게 받아주는 학생과 동료 교사와 함께 나아가는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