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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생물 선생님 Aug 31. 2024

우리 반은 우리 반, 옆 반은 옆 반

아이스크림 사주기 눈치 작전

나는 담임을 하면 더울 때 우리 반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거나 시험기간에 젤리를 사주면서 응원하거나 야자 시간에 많은 아이들이 집에 가고 5명 미만의 귀요미들만 남아있는 날 핫도그 같은 간식을 사주는 이벤트를 종종 한다. 비담임을 할 때도 교과 수업 시간에 한 번씩 간식을 사주곤 하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 소비가 가성비 좋은 소비이기 때문이다. 반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면 2-3만 원을 한 번에 쓰게 되는데 고맙습니다를 외치며 웃으면서 아이스크림 먹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흐뭇하기도 하고 싱그러운 청춘들이 매일 학교에서 공부하고 문제집만 보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내 돈을 쓰면서도 옆 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 내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 뭘 사줬다는 소문은 옆 반으로 아주 빨리 퍼진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받자마자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옆 반 아이들이 자기 반 담임 선생님께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학년실에서 뭔가 내가 난처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동학년 선생님들의 학급 경영 마인드와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똑같이 할 수 없는데 뭔가 간식을 사주는 등의 이벤트를 내가 하면 나만 아이들에게 인기 관리를 한다고 생각하는 동료 교사들이 있다. 앞에서 적었듯이 나는 돈이 많아서 쓰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교원평가 점수를 잘 받으려고 하는 것도 아닌 반복되는 일상과 시험과 공부, 성적으로 스트레스받는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할 뿐인데(엄청 많은 이벤트를 하는 것도 아니다) 샘 반에 맛있는 거 사주는 바람에 우리 반 애들도 자꾸 사달라고 해서 난처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뭔가 서로 뻘쭘한 상황이 된다.


내가 좋아한 선배 교사 중 한 분이 예전에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월급에서 받는 담임 수당은 아이들에게 쓰려고 한다는 것이다. 담임 수당이 올해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적은 편이고, 그전에는 훨씬 적어서 다들 담임 수당이 적다는 불평만 하던 시절이었는데 그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있기에 자기가 받는 수당이므로 더운 날씨에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수능 D-100에는 누구나 챙겨서 아이들이 고마운 줄 모른다고 D-99에 구구콘을 사준다고ㅋㅋㅋ 구구콘 없으면 월드콘을 사주면서 세계로 뻗어 나가라고 이야기하신다는 말씀을 웃으면서 하시는데 참 훈훈했다. 그 선생님은 그 당시 나이가 많으셨으니 자기 반 아이들에게 간식을 사주시면서 옆 반을 의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옆 반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경력의 교사라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샘이 사주는 거 맛있게 먹고 옆 반 아이들에게 자랑하지 마. 자랑하면 앞으로 사주기 어려울 수도 있어.“라고 ㅋㅋㅋ


올해는 부장교사를 맡게 되면서 비담임을 하게 되어 소소한 이벤트를 할 일은 별로 없다. 나는 2학년 생명과학 I 수업을 하는 게 제일 좋은데 올해 2학기는 2학년 전담이라 신난다. 이번주는 2학년 생명과학 I 중간고사 범위의 최대 고비, 흥분의 전도 속도와 근수축 시 길이 변화 문제를 푸느라 아이들이 힘든 한 주를 보냈는데 다음 주 수요일은 학력평가가 있기도 하니 아이들에게 힘내라고 아이스크림을 사줘야겠다. 담임 수당은 없지만 9월에 추석이 있어 곧 명절 휴가비를 받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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