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문제 출제 스트레스
우리 학교는 2학기 개학을 빨리 해서 다른 학교보다 중간고사 기간이 빠르다. 그래서 추석 연휴 전에 중간고사 원안 제출을 해야 하는데 요즘에는 수행 평가 100%로 성적 산출을 하는 경우도 많고, 진로 선택 과목 같은 경우에는 기말고사 한 번만 치는 경우도 많지만 올해 2학기 내가 전담으로 맡고 있는 생명과학 I 과목은 일반 선택 과목이라 성적이 9등급으로 산출되기 때문에 중간고사 출제에 조금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아이들도 시험 공부해야 하는 시즌이 오면 원래 재미없어서 안 보던 유튜브도 뭔가 재밌게 느껴지고, 굴러가는 나뭇잎만 봐도 재밌고, 당장 시험공부는 안 하면서 시험 끝나고 뭐 하면서 신나게 놀지 생각하고ㅋㅋㅋ 선생님도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시험 문제 출제 시즌이 오면 시험 문제 출제 빼고 다 재밌고, 다 하고 싶다. 그래서 일단 노트북을 켜서 중간고사 관련 협의록, 원안, 서논술형 학생 답안지, 채점기준표 등등 기초 작업을 완료하고, 시작이 반이다 생각하면서 브런치로 넘어왔다.
오늘은 원래 다른 주제로 쓸까 했지만 이제 중간고사기간이 다가오니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내가 첫 번째, 두 번째 학교에 근무할 때만 해도 출제만 끝나고 나면 아이들이 시험기간까지는 아주 즐거웠다. 그 시절은 평가로 인한 민원이 지금처럼 많지 않던 시기였지만 요즘의 고등학교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출제가 끝나도 뭔가 후련한 느낌이 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시험기간 중에도 시험이 끝나도, 시험 문제와 시험 감독 중에 있었던 문제로 민원이 들어오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성적처리가 완료될 때까지 긴장 상태가 지속된다.
나는 아직 운이 좋게도 시험 문제 출제 오류가 있었던 적도 없고, 시험 감독 중에 있었던 일로 민원이 들어온다거나 소송에 휘말린 경험은 없다. 하지만 여러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시험 문제 오류가 없는데도 별별 이상한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면서 중복 답안을 인정하라거나 서논술형 채점에서 부분 점수를 더 달라거나 재시험을 치게 해 달라 하는 등등의 민원이 쏟아져서 힘들어하는 동료 교사를 지켜봤다. 그리고 시험 감독을 매뉴얼대로 똑바로 했지만 뭔가 자기 자녀가 시험 못 친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고 싶으셨는지 감독에 문제가 있었다며 학부모님이 선생님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힘들어하는 친한 선생님도 지켜봤다. 그런 어이없는 일을 당하는 동료를 지켜보면서 시험 출제 기간이 다가올 때부터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단 시험문제에 오류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출제를 하고, 동 교과 선생님께 검토를 부탁드린 후 몇 번을 검토해도 오류가 눈에 안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일단 출제할 때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지금은 원안 제출 마감일까지 그래도 시간이 좀 남아 있어서 나의 집중력이 완전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핑계를 대면서 일단 글부터 적어본다. 점심 식사로 포도당 충전 후에 시험 문제 출제를 해야지 하는 목표를 가지고ㅋㅋㅋ
시험 문제 출제 중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난이도 조절하다가 잠시 피식하고 웃을 때가 있는데 내가 출제한 문제가 뭔가 내 마음에 쏙 들 때이다. 출제를 할 때면 쉽게 출제해서 커버 사진의 왼쪽 아이처럼 즐겁게 해 줄까 아니면 어렵게 출제해서 오른쪽 아이처럼 느끼게 해 줄까 생각하게 되는데 약간 사악한 느낌이긴 하지만 '내가 만든 이 문제는 아이들이 어려워하겠지? 미안하긴 하지만 9등급 나오는 과목이라 변별력이 중요해서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하면서 뭔가 아름답게 잘 만들어진 문제를 보면서 잠시 흐뭇하기도 하다.
아무튼 초, 중, 고, 대 16년을 학생 신분으로 시험 문제를 풀어왔고, 임용고시까지 하면 내 인생의 수많은 시간을 시험을 준비하고 치르는데 보냈다. 그리고 교사가 되고 난 후에는 시험 문제 출제를 하느라 수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 글을 쓰면서 거의 평생을 시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생각하니 약간 우울해지기도 하는데 사실 지금 출제하기 싫어서 그런 거 같다ㅋㅋㅋ 당장 출제를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