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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생물 선생님 Aug 17. 2024

명분 없는 일은 하기 싫어요

관례대로 라는 말은 싫어요

학교에서 나의 업무를 진행하거나 다른 업무에 협조할 때 담임으로서 아이들을 지도할 때 나는 명분 없는 일을 하는 것이 너무 싫다. 특히 담임을 할 때 특정 교사가 명분 없이 아이들을 동원한다는 게 느껴지면 진짜 우리 반 아이들은 거기 동원되지 않도록 하고 싶지만 튀는 행동을 아주 싫어하는 공무원 사회에서 나 혼자 단독 행동을 하기란 쉽지 않다.


이제는 그래도 경력이 좀 쌓여서 "선생님, 죄송하지만 저는 제가 이해 안 되는데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서 그 일이 진행되도록 협조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의견을 말하면 서로 불편한 상황이 생기고, 그로 인해 우리 반이 피해를 보지는 않을까 또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그런 상황이 싫어서 그냥 내가 눈 한 번 감으면 된다며 참을 때도 있다.


특히 3월에 전입 교사들이 새로 오면 전임교와 현임교를 비교하면서 어떤 일을 처리할 때 뭔가 훨씬 편하고, 좋은 방법이 있다고 알려주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리 학교도 그럼 바꿔볼까 하는 마음에 담당 부서에 의견을 전달하면 "그냥 관례대로 하겠다, 우리 학교에서 하던 대로 진행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올 때가 많다. 뭔가 우리 학교가 다른 학교에서는 안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알지만 자기가 업무 담당자일 때 관리자에게 말해서 바꾸기는 싫다 또는 절차가 복잡해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본인은 익숙한 방법대로 하는 것이 좋다는 것.


나는 우리 학교 부장 교사 중 유일한 MZ로서 ㅋㅋㅋ 부장 모임에서 맑은 눈의 광인처럼 나의 의견을 전달한다.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와 다른 결재 라인, 업무 처리 방법 등 바꿔야 할 것들이 내 눈에 참 많이 보이는데 그런 의견을 회의 시간에 이야기하면 다들 회의 시간이 길어져서 싫어하기도 하고, 대부분의 교사들은 나의 의견에 동의하긴 하지만 또 100% 동의하는 건 아니라서 내가 부장 교사로서 관리자와 다른 부장 교사들과 우리 부서 선생님들 사이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 고민이 많다.


그래서 이제 내가 어떤 일을 처리하고 받아들일 때 내 나름의 기준을 세웠는데 '나는 떳떳한가?'이다. 담임으로서 내가 이렇게 아이들에게 말하는 것이 떳떳한가? 부장교사로서 업무를 처리할 때 업무 담당자인 우리 부서 선생님과 다른 부서 사이에서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나는 부장으로서 떳떳하게 일처리를 했는가? 내가 떳떳하다는 판단이 서면 나와 의견이 다른 동료 교사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내 의견을 굽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후배 교사들에게 명분 없는 일을 같이 하자, 이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관례대로 하자고 말하는 선배교사는 되고 싶지 않다. 훈훈한 선배교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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