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님과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기
나는 공립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래서 신규 발령을 받은 학교에서부터 은사님들과 같이 근무한 경험이 많다. 내 고1~2 담임 선생님이었던 분은 신규 교사와 교감으로 만나 4년을 같이 근무했고, 내가 담임을 하는 학년 부장선생님들이 은사님이었던 경우도 제법 있었다. 나는 교사가 되면 학창 시절 좋아했던 선생님들과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게 로망이었던 사범대생이었는데 현실에서 해보니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학생으로 지켜보던 선생님과 동료 교사로 보는 선생님은 다르니까.
2년 전 전임교에서 나는 1학년 기획을 했는데 그때 학년 부장 선생님은 나의 고등학교 2학년 때 문학을 가르쳐주신 은사님이었다. 은사님은 그 당시 우리 학교 신규 선생님으로 인기가 많았던 선생님이었다. 여러 은사님과 근무하면서 실망한 적도 많고, 좀 불편했던 기억도 많았던 나는 학년 초에 이 은사님과 학년 부장과 기획으로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며 걱정을 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 해도 아주 좋았고, 지금까지 계속 연락할 정도로 지내고 있다는 것.
제목에 적은 것처럼 은사님은 항상 날 천재 기획으로 대하셨는데 다른 학년과 2층 큰 교무실에 계시는 선생님들께도 천재 기획으로 소개하셨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부장 밑에서 기획을 많이 했었는데 우리 은사님은 달랐다. 부장으로서 해주셔야 할 일을 잘해주셨고, 나는 천재 기획이라는 타이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근무를 했다. 2022년 수업량 유연화로 인한 자율적 교육과정을 우리 학교는 좀 빨리 시작한 편이었는데 처음 하는 것이라 교육과정 담당자 선생님께서 메신저로 아주 상세히 계획을 보내주셨지만 천재 기획인 내가 읽어봐도 정확하게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2층 교무실로 내려가 담당 선생님을 만나서 "안녕하세요? 저는 1학년 실에서 천재 기획으로 불리고 있는데 제가 이해 못 하면 우리 학년실 그 누구도 이해 못 해서 내려왔습니다.ㅋㅋㅋ"했더니 웃으시며 설명해 주셨고, 학기말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는 게 부담이긴 했지만 아이들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 학년 선생님들께는 제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다른 학년에는 천재 기획이 없을 테니 2, 3학년 실에는 선생님께서 직접 가셔서 설명을 하셔야 이해하실 듯 합니다.“ㅋㅋㅋ 하면서 올라왔다. 그 선생님은 다음 해에 교육과정부장님이 되셨고, 내가 다른 학교로 옮긴 후에도 한 번씩 연락을 하다가 이번에 수업 혁신 동아리를 함께 하게 되었는데 참 배울 게 많은 분이다.
중견교사가 되었지만 후배 교사를 대하는 건 아직 어렵고, 선배 교사랑 이야기하는 시간은 아주 즐겁다. 나를 이해해 주고 인정해 주는 선배 교사들과 만나서 중견교사로서의 어려움도 이야기하고, 인생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는 시간은 나에게 소중한 시간이다. 그리고 선배 교사들에게 나는 아직 어린이 교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어서 신나고, 내가 생각 못했던 이런저런 생각들을 듣는 것도 좋다. 이제 나이가 들수록 학교에서 선배 교사보다 후배 교사가 점점 많아지겠지... 훈훈한 선배 교사 되기! 어느덧 중견 교사가 되어버린 정생물의 또 다른 발달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