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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생물 병가 2개월 사용하다

정생물 수술 후기

by 정생물 선생님

정생물은 그 흔한 휴직 없이 10년 넘게 근무하고 쉬는 일은 없을 줄 알았지만 수술을 하게 되면서 8주 진단이 나와서 교직 생애 처음으로 2달의 병가에 들어가게 된다. 수술 후기를 써보고 싶어서 쓰는 병상 일기라고나 할까?


5월 1일

- 오전 미음 먹고 오후 입원, 수술 끝나고 물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금식이라니 살 빠지겠군 생각함. 근로자의 날이라 응급실에서 입원 수속 진행. 간호간병통합병동 4인실 아카시아 나무와 산이 보이는 뷰 맛집 창가자리 배정받아서 나름 기분 좋아짐.


5월 2일

- 새벽 5시 30분부터 수술복 입고, 압박 스타킹 신고, 머리 양갈래로 묶고 수술 준비 완료.

- 오전 두 번째 타임 수술로 보호자는 10시까지 오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수술방에 9시 20분에 내려가버렸고, 보호자는 9시 30분에 도착해서 만나지 못하고 수술실로 직행, 전신마취 후 개복 수술에 들어갔고, 11시 40분쯤 회복실로 옮겨진 나는 아프고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잠에서 깨어남. 보호자와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만나서 애틋하게 눈물 한 방울 흘리면서 들어가겠지라고 생각했던 내 시나리오는 완벽하게 어긋나게 됨 ㅋㅋㅋ

- 소변줄과 핏줄을 달고 있고, 무통 주사도 달고 오후 6시가 되어 드디어 물 마시기 시작, 저녁 8시 때 교수님 회진 오셔서 수술은 잘 되었고, 조직 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오니 외래에 13일에 와서 듣고, 퇴원은 6일 오전에 하면 되겠다고 말씀 하심. 자다 깨다 했지만 나름 잘 잤음.


5월 3일

- 오전 9시 무통 주사 체크하러 온 간호사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적게 들어갔다며 어제 아팠을 텐데 안 눌렀냐고 질문하셨고, 저는 누른다고 눌렀는데요? ㅋㅋㅋ 하면서 역시 나는 고통을 잘 참는구나 생각함. 오전 10시 드디어 소변줄을 제거하고, 소변 후 잔뇨량 확인을 2번은 해야 하고, 밥과 물 먹는 양 기록하고, 소변량도 나 스스로 기록해야 된다고 함

- 가스가 나와야 죽도 먹을 수 있다고 했는데 드디어 점심때부터 죽 먹기 시작, 저녁도 죽 먹음.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어서 여쭤보니 연하게 한 잔 정도는 된다고 하셨는데, 혈당 검사와 혈압 검사를 계속 주기적으로 하다 보니 달달한 커피는 안 될 것 같아 편의점 가서 당류 적게 들어 있는 커피 구입ㅋㅋㅋ


5월 4일

- 아침부터 드디어 밥이 나왔는데 반찬이 엉망. 맛도 없고, 참지 못하고 편의점 가서 참치 캔 구입 ㅋㅋㅋ 오전에 무통 주사를 제거하고, 치료실 가서 수술 부위 소독하고, 수액 바늘 전체를 제거하면서 자유의 몸이 됨. 날씨가 좋아서 나가고 싶었는데 토요일이라 병원에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샘들 놀러 오라 해서 잠시 병원 앞에서 만남.


5월 5일

- 내일 퇴원을 앞두고, 피검사와 소변검사로 시작하는 아침. 드디어 스스로 머리 감는데 성공. 물 없는 샴푸 사갔는데 하나 마나 한 느낌이라 짜증 나 있었는데 머리 감아서 너무 시원함. 이제 좀 살만해서 노트북 꺼내서 리바운드 영화도 보고, 보이차도 꺼내서 한 잔 마심. 하루 종일 비가 무슨 장마철처럼 주룩주룩 내렸는데 지금 많이 내리고 제발 내일 퇴원할 때는 쨍쨍하면 좋겠다고 생각함.


5월 6일

- 머리를 감고, 치료실에서 수술 부위 소독하러 오라고 부르기만을 기다림. 소독 완료하시면서 3일 뒤에 다 제거하고 샤워가능하다고 말씀하심. 대체 공휴일이라 응급실에서 퇴원 수속 진행하면서 가정산하고 약 5일 분 받아서 드디어 퇴원함.


5월 13일

- 조직 검사 결과 들으러 감. 암이 아니겠지 생각하면서도 교수님으로부터 괜찮다는 말을 듣기까지 떨리고 무서웠음. 걱정해 준 주변 사람들에게 암이 아니라는 기쁜 소식을 알렸는데 제일 웃겼던 반응 2개를 적어보면 ㅋㅋㅋ 비련의 여주인공 아무나 하는 거 아닌데 암이라고 생각했냐, 학교에서 영양사가 영양을 고려해서 해주는 급식 먹는 사람이 암 걸리는 건 말이 안 되는 게 매일 먼지 마시는 곳에서 일하고 안 챙겨 먹는 자기도 암 안 걸렸다고ㅋㅋㅋ 30대 중반이 된 남자 제자 놈들은 이제 거의 내 친구처럼 이렇게 말해줘서 너무 웃기기도 하고, 고마웠다.


이제 배가 땡기고 아프지만 유착 방지를 위해 많이 걷고, 6월 말까지 내 몸을 회복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는... 7월에 학교로 돌아가서 수술 전처럼 다시 일을 해야 하니까. 세특 써야 하는데 ㅠㅠ 일단 수행평가 점수 입력은 6월에 원격으로 해야겠다. 5박 6일간의 정생물 수술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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