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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의시선 jungsee Jun 18. 2024

폭우를 부르는 결혼식 대소동

우당탕탕 결혼식 비하인드 이야기

우리는 결혼식 당일 신혼여행에 떠났다., Jamsil & Incheon Airport, 15th Jul, 2024 @on.time_jungsee




예식일 전 날, 서울은 일 강수량 72.7mm라는 폭우가 내렸다. 하루 남은 결혼, 하루 남은 신혼여행인데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걱정도 됐지만, 우리는 들뜬 마음이 더 컸다. 첫 번째 시간의 예식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새벽부터 움직여야 했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잠을 자기 위해 빠르게 짐을 싸고 침대에 누웠다.


심장마비를 조심해야 했던 우리의 결혼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 우리는 미리 싸둔 짐을 들고 자동차에 올랐다. 잠깐 TMI를 말하자면 우리 자동차의 별명은 '웨씨'이다. 리브는 여행을 가면 항상 날씨가 화창한 '날씨 요정'이고, 나는 운전만 하면 신호등에 걸리지 않고 쭉 신호를 통과하는 '신호 요정'이다. 그래서 우리의 자동차는 여행에 최적화된 '웨더&시그널 요정'을 태운 '웨씨'가 되었다.

역시 웨씨에 시동이 걸리자 폭우가 내렸던 어제와 달리 비가 그쳤고, 신호 한번 걸리지 않고 쾌적하게 메이크업 샵이 있는 청담까지 도착했다. 이렇게 완벽한 시작이라니. 정말 완벽한 날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예식일 당일 이렇게 정신이 없을 줄을...


메이크업 을 받으면서도 사진 찍는 신혼부부, Cheongdam, 15th Jul, 2024 @on.time_jungsee


메이크업을 다 받고 예식장이 있는 잠실로 이동했다. 예식장은 아직 꽃장식이 진행되고 있었고 사진작가님을 만난 우리는 여유롭게 리허설을 하면서 카메라에 익숙해져 갔다. 리허설은 금세 끝나게 됐고 리브는 신부대기실에, 나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예식장 입구에 위치했다.


신랑님! 신부 드레스 어디 있어요?


오늘 우리의 예식을 도와주시러 오신 이모님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네? 드레스... 신부가 입고 있죠?" 나는 당황해서 대답했다. "아니, 2부 때 입을 신부 드레스 어디 있냐고요"


아...!!!!!


리브의 2부 드레스가 없다. 하루 전 날, 조금이라도 더 잠을 자야 한다는 마음에 빠르게 짐을 싸는 게 문제였나? 리브의 2부 드레스를 집에 두고 왔다. 이 2부 드레스는 슈퍼파워 J 리브가 몇 주를 고민하면서 구매한 이쁜 원피스이다. 결혼식 이후에도 입기에 부담이 없지만 소재도 고급지고 이쁜 원피스! (하지만 그 이후에 한 번도 안 입은) 그 옷을 집에 두고 왔다. 이걸 리브도 알고 있나? 걱정 인형 리브의 표정이 일그러지진 않았을까 나도 불안했다.


"형! 자동차 키 주시면 제가 집까지 운전해 가서 옷 가져올게요!"


리브의 가방순이를 해준 친구들이 있다. 그중 한 친구의 남자 친구가 (앞으로 김 사장이라고 표현하겠다.) 비장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고, 나는 고민 없이 자동차 키를 넘겼다. 김 사장이라면 잘 다녀올 것이다.




정신없는 손님맞이 시간이 지나고 이제 입장해야 할 순서가 왔다. 이제 드디어 우리의 결혼식이 시작된다. 엄마들이 먼저 우리의 결혼식을 밝혀주셨고, 나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아빠와 같이 입장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이쁜 리브가 장인어른의 손을 잡고 입장했다. 걱정과 달리 리브는 너무 환하게 웃고 있었고 나도 그 얼굴을 보고 행복해졌다.


하지만 나는 금방 다시 떨려왔다.


나에겐 소중한 고등학교 동아리 친구들이 있다. '폴라리스'라는 천체 관측 동아리에 속했던 우리는 사실 '춤라리스'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춤 연습을 많이 했고 음악을 즐겼다. 잘 추진 못하고 그냥 음악을 즐겼다. 이 친구들에게 나는 축가를 부탁했다. 그리고 친구들은 나에게, 축가 마지막에 마이크를 전달할 테니 리브에게 감동적인 말 한마디를 하자는 이벤트를 제안했다.


이 이벤트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폴라리스 친구들이 축가를 부르다가 축가가 끝나기 전, 꽃다발과 마이크를 나에게 전달하면 내가 리브를 울릴만한 멘트를 말하며 꽃을 주는 것이다. 결혼 일주일 전부터 출퇴근 길에 리브를 펑펑 울릴 멘트를 정해서 외웠다. 그런데 나는 멘트에만 신경 쓰고 꽃다발을 생각하지 못했다.


축가가 시작됐고 나는 꽃다발과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완벽하게 외운 멘트를 말했다. 하지만 리브에게 꽃다발을 주지 않았다.

이 장면이 아래와 같이 사진에 찍혔는데, 리브는 울기는커녕 언제 꽃다발을 주나 꽃만 쳐다만 보고 있었다. 아마 내가 준비한 멘트는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언제 꽃을 줄까?


축가에서 실수가 있었지만, 마지막 행진까지 무사히 예식을 마쳤고 친구들과 본판 사진을 찍을 때 우리의 김 사장이 아내의 옷을 들고 위풍당당하게 예식장에 들어왔다. 역시...! 김 사장은 믿을만하다.


이 옷을 못 입을 뻔 했다.




이렇게 결혼식 하객은 꿈에도 모르는, 우리만의 불안한 예식이 무사히 끝났다. 예식이 끝나니 다시 슬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빨리 신혼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빠르게 씻고 나가야 여유롭게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참 쉽지 않다. 새벽부터 정신없었는데 여행을 떠나는 순간에도 여유가 없다. 이래서 예식 다음 날 신혼여행을 떠나는 선배들이 많았나 보다.


준비한 캐리어를 급하게 닫고 다시 웨씨를 몰아 인천공항으로 갔고 우리는 드디어 신혼여행에 떠났다. 이건 두바이에 도착하고 이틀이나 지나서 깨달은 건데, 나는 미리 준비한 흰색 셔츠를 빼먹고 짐을 챙겼다. 리브와 커플룩을 맞췄던거라 어쩔 수 없이 두바이에서 흰 셔츠를 새로 사야 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소파 위에 흰 셔츠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참, 빼먹는 게 많은 예식 당일이었다.


7화만에 이륙하는 신혼여행 비행기, Incheon Airport, 15th Jul, 2024 @on.time_jungsee




인터뷰: 결혼식 날 어떤 게 가장 정신없었어?


꽃, 2부 드레스.

우리의 결혼식은 그걸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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