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어린 딸이 나에게 물었다.
"아빠, 왜 천국에 빨리 가면 안 돼?"
여느 부모처럼 우리 부부도 아이들에게 건강과 안전을 강조하면서 "그러면 죽을 수 있어!"라고 아이들에게 겁을 주곤 했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신앙을 강조하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가르쳤다. 한편으로는 천국은 슬픔도 아픔도 없는 곳이고 사랑과 행복처럼 오직 좋은 것만 가득한 곳이라고 가르쳐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죽어야 천국에 갈 수 있는데 죽으면 안 된다고 가르치니 아이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그런 딸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렇지,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니까 죽으면 모두 천국에 갈 거야. 그리고 천국에 가면 그곳이 정말 행복해서 여기서 있었던 힘든 일이나 슬픈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그런데 너는 천국에 가려면 지금 엄마, 아빠랑 헤어져야 하는데 헤어질 수 있어? 아빠는 너랑 헤어지기 싫은데"
내 말에 딸아이는 자기도 엄마, 아빠랑 헤어지는 건 싫다고 말했다. 내 설명에 딸아이는 천국과 죽음을 관념과 논리가 아니라 조금은 더 체험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누구나에게 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의 실체는 잘 모른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 두려움을 무시하려고 한다. 죽음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무시하려고 해도 그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죽음을 천국에 가는 한 과정으로만 치부하며 죽음이 주는 두려움을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당장 죽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나는 그 두려움의 실체가 이별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이 주는 가장 큰 고통은 이별이다. 어린 딸만 엄마, 아빠와 헤어지는 것을 싫은 하는 것이 아니다. 노년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사랑하는 자녀와 손주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이다. 그러니 우리 중에 누구도 빨리 천국에 가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천국에 가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죽음이 주는 이별이라는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나는 그 힘이 "천국에서 다시 만난다"는 소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대화 후에 딸아이는 천국에 대한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 후로 1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엄마, 아빠의 사랑을 늘 확인하는 질문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