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띠 가는 길

by 최정식

--- 아래 글은 우띠 로렌스 학교에서 근무할 때 쓴 글이다. 인도에 10년 동안 사는 동안 방학을 이용해서 연 1회 정도 한국을 다녀갔다. ---


두 달간의 한국 일정을 마치고 우띠(Ooty) 로렌스 학교(The Lawrence School Lovedale)로 돌아왔다. 방갈로(Bangalore)에서 우띠 오는 길은 언제나 힘들다. 이른 새벽에 떠나 차가 없을 때 달려와도 6시간에서 7시간이 걸린다. 이번에도 아침 6시에 방갈로를 떠났지만 우띠에 도착하기까지 거의 9시간이 넘게 걸렸다.

해발 2300미터를 굽이굽이 돌아 올라오는 길은 아이들에게 여러 재미를 준다. 내려갈 때는 멀미를 심하게 하더니 올라올 때는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좋아한다.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하는 즈음에는 "Hair pin sharp"라는 문구가 굽이마다 쓰여 있다. 차가 상하행선 한꺼번에 돌 수 없을뿐더러 조금이라도 덩치가 큰 차는 한 번에 돌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버스 통행이 제한되어 있고 모든 차량의 야간 통행도 제한되어 있다. 그러한 굽이들은 모두 36개, 표지판 하단에 36이라는 숫자가 써져 있고 상단에 굽이마다 하나씩 줄어든 숫자가 써져 있다.

이렇게 올라온 해발 2300미터 산동네는 춥다. 우기라서 햇볕이 제대로 들지 않으니 7월에도 춥다. 내복에 잠바, 여러 가지 겨울 옷가지를 꺼내 입고 밤에는 전기장판을 틀었다. 차를 몰고 오느라 옷을 갈아입지 않아 반바지 차림인 나를 보고 모두들 놀라는 기색이다.

다시 집이다. 아이들이 자기 방에서 그동안 놀지 못했던 장난감을 꺼내 마냥 즐겁게 논다. 그동안 못 탄 자전거를 타겠다며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도 끌고 나간다. 아내는 한국에서 가져온 짐을 푸느라 바쁘고 이곳저곳 곰팡이 가득한 부엌을 청소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다시 인도 학교에 나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반가워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가 살졌다며 한국에서 좋았느냐며 묻는다. 이제 외국인 등록을 마치면 한시름 놓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여전히 착륙 중이리라.

매년 한국을 다녀오지만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긴 휴가를 보내지만 인도로 돌아올 때면 여전히 미묘한 감정에 젖어든다. 아이들을 끌어안고 가슴 깊숙한 곳에 있던 눈물을 터뜨리시는 부모님들과, 애써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서둘러 자리를 뜨는 우리 내외 그리고 운전하는 차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인도에도 살고 한국에도 사니 얼마나 좋으냐며 설득하지만 우리 부부는 여전히 이것이 좋지만은 않은가 보다.

나는 이러한 감정이 또 언제 있었는가 애써 연결 지어 보았다. 흡사 군 복무 중에 휴가 나왔다가 복귀하는 때 같으리라. 우리는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이 늘 남아있다. 어쩌면 늘 있으리라 생각한다. 머리는 여기도 좋고 저기도 좋다고 생각하는 데 가슴은 여기서도 저기서도 쉼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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