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누구의 책임일까?

by 최정식

내가 간접적으로 경험한 한국의 기숙사 사감은 기숙사에서 머무는 동안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이 주된 일이었다. 반면에 인도 기숙사 학교에서 경험한 기숙사 사감의 역할은 전혀 달랐다. 나는 인도 중앙 정부 교육부 직속에 있던 로렌스 학교에서 3년 동안 사감을 했다. 1858년 인도가 영국 식민지 당시에 세워진 학교는 기숙사 사감을 "하우스 마스터(House Master)"라고 불렀다. 지금도 영국의 기숙학교(Boarding School)에서 이 명칭을 그대로 쓴다. 뭔가 군대 용어 같기도 해서 근엄함이 묻어 나오는 호칭이다. 실제로 군사학교 전통이 있는 로렌스 학교에서 사감 역할이 그러했다. 아이들을 관리하고 통제하고 훈육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마치 군대의 소대장 같다고 할까. 그러니 그 학교에서 사감이 갖는 위상은 컸다. 학교를 상대로는 학생들의 학부모 역할을 해야 했고 학부모를 상대로는 학교 교장 같은 역할을 해야 했다.


5년 동안 근무한 로렌스 학교를 떠나간 곳은 헤브론 학교다. 헤브론 학교는 인도에 있지만 영국 학교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학제도 영국 학제를 따랐고 교사들도 영국 선생님들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다. 헤브론 학교에서는 기숙사 사감을 "돔 페런츠(Dorm Parent)"이라고 부른다. 나와 아내는 헤브론 학교에서 3년 동안 사감을 했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의 먹을 것부터 학업까지 자잘한 일들을 많이 해야 한다. 로렌스 학교에서 돌보던 인원이 40명 정도였던데 비해 헤브론 학교는 13명에서 20명 정도만 돌봤다. 옛날 같았으면 말 그대로 한 가족이 될 만한 규모다. 학생들에게는 일 년에 집을 떠나 8개월이나 보내는 곳이니 집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살고 부모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돔 페런츠"와 보낸다.


나는 이러한 경험들 속에서 학교 교육이 가진 한계를 늘 직면했다. 우선 1~2년 정도 아이들을 돌보며 변화를 주는 것이 쉽지 않았다. 10년 이상을 키운 부모도 어찌 못하는 아이를 1년 동안 맡은 선생님이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게다가 선생님들에게는 부모가 가진 것과 같은 권위가 없다. 오래전처럼 배움이 특권이던 시절에 선생님들은 무조건 순종하며 존경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배움이 일반적인 권리를 넘어 소비의 대상이 되었으니 선생님들을 존경해야 한다는 것은 도리로서만 존재하는 것이지 기정사실이 될 수 없다. 엄격히 말해 사랑과 존경의 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교육은 관리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교육 환경 속에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부모로 하여금 교육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성경에서 기인했다. 최초의 학교는 가정이었고 성경은 시종일관 자녀 교육의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고 말한다. 성경 자체는 이미 부모이신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교육하는 책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의 삶과 성장과정을 최대한 부모에게 알리려고 노력했다. 끊임없이 그 부모가 교육하고 있고 선생님인 나는 옆에서 유모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아이가 잘 한 점들도 알려주고 아이가 잘못한 점들을 가지고는 해당 부모와 전화 통화를 길게 하기도 했다. 이러한 연락을 대부분의 부모들은 고마워했다. 나는 최대한 아이들의 삶을 투명하게 부모에게 전달하려고 애썼다. 누구도 어느 날 갑자기 착해지거나 악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과정을 여과 없이 알려주어야 부모가 대처를 하고 개입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자녀 교육은 학교나 사회가 아니가 결국 부모에게 최종 책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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