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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식PM Dec 14. 2022

내가 세례를 받게 될 줄이야

2022년 8월 15일, 광복절. 성모 승천 대축일이었다. 나는 그날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부모님, 처가 식구 모두 종교가 없다. 그 어떤 연결고리도 없는 '자연발생'이다. 무엇이 나와 아내를 성당으로 이끌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우리 가족은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가 지원하려는 학교 중 한 곳이 가톨릭 신자를 우대했다.


불경하지만 최초의 동기는
자식 교육 때문이었다.

가톨릭은 세계 종교이다. 서구권 역사 문화의 근간이다. 아이가 세례를 받는다면, 나중에라도 해외 생활을 할 때 도움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천주교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6개월 정도 매주 교리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 유아 세례는 예외다. 다행히 만 8세까지는 유아 세례가 가능한데, 내 딸은 올해가 마지막 기회였다. 그런데... 유아 세례를 받으려면 부모가 신자여야 한단다. 결국 아내와 내가 교리 수업을 참여하고 세례를 먼저 받아야 했다.


매주 두세 시간을 내서 교리 수업과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 쉽진 않았다. 그 원동력은 자식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 마음도 모르고 성당에 가기 싫다고 투덜댔다. 이해한다. 아빠도 사실 가기 싫거든.


아이는 왜 세례를 받아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렇게 얘기했다.


"차가 없어도 운전면허는 미리 따놓는 것이 좋아. 막상 필요할 때 시작하면 오래 걸리거든. 세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내가 생각해도 내 답변에 흡족(?)했다. 사실 세례는 신성한 것인데 이런 비유를 들어서 찔린다. 그래도 용서하시겠지? 아이가 한 번만에 납득을 했으니ㅋㅋ


그렇게 나와 아내는 8월 15일, 아이는 8월 27일 세례를 받고 천주교 가족이 되었다.


세례성사까지 기간 동안, 많은 인연이 생겼다. 교리 수업 봉사자님, 같이 세례 받은 동기분들. 자주 뵙지도 못했는데 흔쾌히 대부모 해주신 큰 이모와 이모부. 딸 아이 대모로 먼저 나서주신 형수님. 천주교 신자였던 친척, 지인들도 축하와 좋은 말씀을 참 많이 해주셨다.


종교가 없을 적에는 몰랐던 따뜻함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호의를 경험하니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각박한 삶에 지친 사람들이 종교를 통해 치유받았다는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계기는 다소 불손(?)했지만, 신자로서 최소한의 의무는 지키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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