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종종 하셨던 말씀이
"일단 배가 고파야 밥이 맛있는 법이제"
밥 먹는 것보다 노는 것을 좋아하는 활발한 아이였던 저는 밥 먹을 때가 되면 늦게 나타나거나 얼른 먹고 나갈 준비를 하던 그런 아이였어요. 그런데 밥상에 착 붙어 앉아 열심히 밥을 먹을 때가 간혹 있었는데 그건 바로 '배가 고플 때'였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제 큰 딸을 보고 있노라면 피는 못 속이는구나 싶어요. 5번 넘게 '와서 밥 먹어라'를 외쳐야 그제야 어슬렁어슬렁 나타나거든요. 어떻게든 밥을 먹이려는 아내에게
"일단 배가 고파야 밥이 맛있는 법이지'를 말하곤 합니다. 배고픔만 한 반찬이 없죠.
학습은 어떨까요? 공부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학생에게 열심히 가르친다고 해도 학생의 뇌는 지금 전혀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요. 강제로 시킨다면 어느 정도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배고픔에 스스로 밥을 떠먹는 것과 같이 스스로 공부를 해나가는 것보다는 양과 질 면에서도 모두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얻게 되리라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뇌를 고프게 할 수 있을까요? 해답은 바로 '질문'입니다.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불확실성'이라고 합니다. 들판에서 살던 원시적인 본능이 뇌 한켠에 남아 있어서 저 앞에 보이는 희미한 물체가 돌인지 아니면 짐승인지 불확실할 때 뇌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고 해요. 불확실함이 곧 나와 가족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요. 그래서 뇌는 불확실함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명령을 내리고 몸을 움직이게 합니다. 주식시장에서도 주식 참가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이죠.
불확실함을 싫어하는 뇌의 특성을 자극하는 것이 바로 '질문'입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왜? 하지 말라고 하지?' 하면서 더 하고 싶은 게 뇌고,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자연스럽게 '답'을 찾게 되는 게 뇌입니다. 책을 열심히 읽었는데 책을 읽고 나서 아무런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글자만 읽었을지 모르고, 누군가의 발표를 들었는데 발표가 끝나고 아무런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발표가 너무 어려웠거나 혹은 그 발표를 잘 듣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죠.
대학원 시절에 저를 비롯한 동기들을 참 많이 괴롭혔던 교수님이 한분 계셨는데요, 그분은 대학원 수업을 위해 교재를 읽고 미리 내용 정리를 해오게끔 하는 과제를 자주 부여하였는데 과제의 마무리는 항상 '질문'을 준비하도록 안내하셨어요. 질문의 수준만 봐도 그 사람이 그 과제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했는지 알 수 있다고 하시면서요. 어느덧 저도 제가 만난 학생들에게 같은 맥락에서 '질문'을 강조하게 되었어요.
아이들을 만난 첫날에 제 소개를 하기 위해 '질문'을 활용했던 이야기를 한번 해볼게요.
예전에는 첫날에 아이들을 만나면 제가 미리 준비한 제 소개자료를 아이들에게 쭉 소개하고 끝냈었는데 요즘에는 방법을 좀 바꿨는데요, 첫날 아이들을 만나서 아이들에게 한번 물어봤어요.
"선생님에 대해 혹시 알고 있는 거 있으면 다 말해보렴"
의욕 넘치게 말하던 아이들도 곧 자신들이 선생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깨닫습니다. 제 이름과 어디서 봤었는지 정도 나오면 끝이에요. 그때 아이들에게 선생님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은 게 아니냐는 푸념(?)과 함께 선생님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것을 '질문'해 보라고 합니다.
그럼 상당히 많은 질문이 쏟아지는데 학생들이 저에게 던진 질문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제 소개를 하면 학생들이 훨씬 더 경청하며 제 소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제가 준비한 제 소개자료를 쏟아낼 때보다 요.
그리고 덧붙여서 학생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질문을 했을 때 좋은 점이 뭘까?" 다양한 대답들이 등장합니다. 아이들의 대답을 종합해서 정리해주었습니다.
"선생님에게 던진 질문을 통해서 선생님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 그리고 선생님과 더 친해진 듯한 느낌도 들었을 테고. 그렇다면 책을 읽을 때 책에 질문을 던지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책을 읽을 때 책 내용에 질문을 던지면서 읽으면 책 내용을 더 깊이 있게 집중할 수 있고
공부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질문을 던지면서 공부를 시작하면 해결되지 않은 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해 공부 상황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끝난 후에 추가 질문을 떠올리고 그 질문을 기록해 놓는다면 해당 차시의 복습과 더불어 다음 차시에 대한 예습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요.
질문을 떠올리고 질문을 던지고 나누다 보면 없던 관심도 생깁니다. 상대가 사람이든 책이든 간에 말이죠.
배가 고파야 밥이 맛있고, 뇌가 고파야 책이 맛있고 공부가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