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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 상남자 Jul 30. 2021

신안 여행 끝 이제 일상으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꼬끼오 소리에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32분이다.

5시에 일어나 짐을 챙겨 다시 서울로 돌아갈 계획이라 신경이 쓰였는지 일찍부터 감각이 시간을 더듬는다

어쩌면 닭소리와 개소리 덕분일지도 모른다.


잠시 닭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닭울음소리가 이렇게나 다양했었나. '꼬끼오'라고 모두 퉁 치기엔 꽤꽤액도 있고, 께께켁도 있다. 그리고 간간히 치고 들어오는 개와의 콜라보까지. 도심에서 듣지 못했던 닭소리와 개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아직은 여행 중이다.


누운 자리에서  하늘 올려다본다.

달이 보인다.

아직 한창이다.

텐트에서 자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자리에 누워 달을 올려다볼 수 있다니 황송하다. 해가 떠오르기까지 한참 남았으니 한 숨 더 자라한다.


잠깐 더 눈을 붙였다가 알람 소리에 화들짝 놀라 정신이 번쩍든다. 가족이 눈뜰새라 황급히 알람을 끈다.

 아직 깜깜한 새벽 5시. 더 잘까, 일어날까 고민하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 순간을 기록해야지 싶어 복근을 당겨 몸을 일으킨다.

모기떼의 습격이 무서워 모기 기피제까지 팔다리에 뿌리고 굳이 베란다로 나왔다. 앞마당과 베란다 때문에 이 숙소를 선택했다. 베란다에서 앞마당을 내려다보며 글을 써보고 싶었다. 글을 쓰는 게 나에게 더 중요한 과업이 되면 꼭 초록이 눈에 비치는 곳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



일상적인 소재는 네이버 블로그에 기록해오고 있는데, 하필 오늘 아침 7시까지 네이버 블로그 점검 시간이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이라 여행의 침전물을 기록해두고 싶었는데... 그래서 브런치에 접속하려고 네이버에서 '브런치'를 검색했더니 진짜 '브런치' 관련된 것만 등장한다. 경쟁사라 그런가, 네이버 알고리즘이 얄궂다.

물놀이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는 아침부터 짐을 챙겨 해변으로 나갔다. 전전날에 내가 아침 산책을 하며 잡았던 스마일 게도 챙겨갔다. 첫째가 스마일 게에게 '유화'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유화는 바다 모래를 깔아준 플라스틱 안에서 바다 향수병에 걸린것 같았다.


우리 눈치를 보며 다리를 조심히 움직이던 녀석은 에라 모르겠다 싶었는지 나중엔 플라스틱 통 위에 있는 조그마한 구멍에 발 4개를 걸치고 탈출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불태웠다. 구멍에 비해 큰 몸통 때문에 탈출을 성공하지 못한 유화는 구멍보다 큰 자신의 몸통을 원망했을까, 잡아온 나를 저주했을까

 똘똘한 유화 눈을 보고 있으면 큰 죄를 짓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날 노려봤다. 날 놓아달라고. 풀어준 잉어가 용왕의 둘째 딸이었던가... 하는 그런 동화가 머릿속에서 자꾸 맴돌았다. 유화를 집에 들고 가서 계속 키우고 싶다는 윤 자매를 설득 또 설득하여 풀어주기로 했다. 그래야 꿈에서 유화 지인을 안볼것 같았다.

윤 자매는 유화를 해변으로 데리고 가서 눈물의 이별을 했다. 첫째는 울음을 짜냈고, 둘째는 그런 언니를 보며 눈물을 짜냈다. 연기인지 진심인지 모를 윤 자매의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하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으려 입술을 물었다.


내려주면 쏜살같이 사라질 것 같았던 유화는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 우리 주변을 맴돌다가 물길을 따라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내 시선은 유화의 뒤를 꽤 오랜 시간 쫓았지만 윤 자매의 이별은 나보다 '쿨'했다. 유화를 보낸 적적한 마음을 모래 놀이로 채워냈다. 모래를 퍼내면 솟아나는 바닷물로 온천을 만들고, 비단 고둥 양식장을 세웠고, 배를 띄웠다. 곱디고운 모래에 온 몸을 비벼대며 자연의 향긋함을 몸에 새겼다.


 멀리 나갔던 물이 슬슬 들어올 때쯤 튜브를 들고 물로 나갔다. 구멍 조끼를 입은 윤 자매와 튜브에 탄 아내와 나, 그렇게 파도를 타다 보니 어느새 하루가 흘러갔다. 일상에선 바쁜 마음에 잘게 쪼개 써왔던 시간이었는데 여행을 오게 되니 시간이 덩어리째 지나간다. 4박 5일, 네 덩어리의 시간을 보냈더니 어느덧 일상의 시계를 켤 시간이다.


 여자 셋이 숙소에서 씻을 동안  하나로마트에 갔다가 '민어'회를 발견했다. 회를 살 계획은 없었지만 뻔한 우럭 광어가 아니라 민어라서 집어 들고 말았다. 임자도가 주요 산지이며, 복날에 임금님 수라상에도 오르곤 했다는 민어 스토리에 설득되고 말았다.


 치킨도 시키고, 민어회도 올리고, 게다가 올림픽 축구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우리나라가 온두라스를 5:0으로 이기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저녁 시간이다.

평소에 회를 좋아하는 첫째는 민어회를 보더니 군침을 삼켰다.


어린아이가 치킨을 제쳐두고 회에 먼저 손이 가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섬 출신이면 모를까, 생각했다가 섬 출신이면 오히려 생선보다 치킨을 더 맛보고 싶어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내 어린 시절, 섬에 살았을 때를 떠올려보면 치킨보다 훨씬 더 흔한 게 생선이었으니까.


 긴 여행을 갈 때마다 쑥쑥 크는 윤자 매였다. 이번에도 내가 예상한 것보다  바다 물놀이에 쉽게 적응하며 나를 놀라게 했다. 일렁이는 바다에 몸을 맡기고 간혹 눈과 코, 그리고 입으로 밀고 들어오는 짠맛을 쿨하게 '퉤퉤'하며 씻어냈다.  하루 종일 물에 들어가 있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챙겨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아빠의 마음이 무겁다.



일상을 떠나 있는 동안 같은 것을 먹고, 자고, 보고, 놀며 생각과 느낌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여행이 참 좋다.

 4박 5일 동안 8살, 6살인 윤 자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날 행복하게 했다.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는 것은 흐뭇한 일이지만 곧 둥지를 떠나려는 날갯짓이기도 하기에 마음 한편엔 서운함이 서린다.

7시 30분에 출발해 12시 반에 정확히 집에 도착했다. 377.6킬로미터 떨어진 임자도에서 보냈던 4박 5일 그리워질 때쯤 200킬로 안쪽으로 갈 수 있는 한적한 해변을 찾아봐야겠다. 떠나야겠다는 결심 만으로 한 달음에 갈 수 있는 그런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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