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좋아하세요?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물론 운동장 체육만 가능했던 시기였기에 비 때문에 체육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만 빼곤 비가 좋았다。 비를 좋아하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이 특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365일 중 비 내리는 날이 약 100일 정도 된다고 한다。 확률로 치면 약 27% 정도다. 만약 내가 영국처럼 수시로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곳에 살았다면 비에 대한 이런 애틋한 감정은 없었을지 모른다.
집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 창문 너머로 들리는 차바퀴 소리의 음색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바퀴에 바닥에 쩍 달라붙었다가 쭈욱 미끄러져 떨어지는 그 소리를 들으면 밖에 비가 오는구나 싶고 배시시 기분이 좋아진다. 결혼하기 전 혼자 살 때, 주말 낮에 혼자 있을 때 비가 오면 차를 가지고 한강공원에 갔다. 한강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주차하고 차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보곤 했다. 물론 마음이 너무 편안해졌는지 자연스레 눈을 감게 되었지만.
캠핑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매력 중 하나는 자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비를 좋아하는 나에겐 텐트 안에서 들리는 빗소리는 온몸을 짜르르하게 만든다. 강화도 캠핑을 했던 시작했던 금요일, 아이들을 모두 재운 후에 친구와 잠시 불멍을 했다. 2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와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함께 불을 바라봤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시골에 오니 별이 참 많네'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하늘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그렇게 텐트 안에서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텐트를 톡톡 건드리는 빗소리가 들렸다. 오늘 오후부터 온다고 했는데 일찍 왔구나 하며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텐트 안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빗소리의 질감을 느끼며 기분 좋게 침낭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같이 텐트에서 잠을 자던 후배는 다소 분주해졌다. 내가 빗소리가 주는 편안함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그는 텐트 밖으로 나가 미처 챙기지기 못했던 집기류와 물품들을 부지런히 텐트 안으로 들어 날랐다. 그러고 보니 어제 애들 챙겨 재우기 바빠서 대부분의 물건들을 텐트 밖에 그대로 두고 왔던 게 생각이 났다. 정신이 번쩍 들어 나가 보니 이미 빗물을 폭식한 채 축 늘어져있었다.
아침 먹고 나면 바로 짐 챙겨서 나가야 하는데... 이 축축한 짐들을 어떻게 챙기나... 한숨이 나왔다. 멀리서 바라보는 비는 참 좋은데 현실 속에 들어온 비는 이렇게 고단함을 안겨주는구나.
토요일이면 10시에 일어나는 애들이 7시도 되기 전에 침낭 안에서 꼼지락대기 시작한다. 빗소리가 무섭다며 둘이 한 침낭 안에 들어가서 꼬물대는 모습이 귀엽다. 그래... 아빠가 짐을 한번 잘 챙겨볼게 다짐했으나 막상 짐을 어디서부터 챙기기 시작해야 하나 생각하니 막막하다.
아빠 셋이 부지런히 아침상을 차려 아이들과 함께 먹고 설거지까지 마치고 텐트 안에 앉았다. 여자 아이 넷은 한 텐트에 들어가서 기둥이 휘청 일정도로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빠 셋은 커피 마실 물을 올렸다. 주전자에 김이 나올 때까지 다들 말이 없다. 아침 먹고 짐을 챙겨 나가야 하는데 가기 싫은 나.. 내가 가버리면 아빠 둘에 아이들 둘만 남으니 내심 안 가거나 늦게 갔으면 하는 둘.
9시에 철수하려고 했는데 비 때문에, 비 덕분에 11시 30분이 되어서야 캠핑장을 나섰다. 비를 쫄딱 맞으며 짐을 싸야 했고, 축축해진 짐을 다시 펴서 말려야 했지만 강화도에서 만났던 비는 참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