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이어 ‘아이의 우주’를 들여다보는 도구로서의 글쓰기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오늘은 왜 우리가 굳이 바쁜 일상 속에서 직접 아이의 글쓰기를 지도해야 하는지, 그 현실적이고도 따뜻한 이유를 짚어보려 합니다.
사라진 일기 검사, 갈 곳 잃은 아이들의 문장
우선 현실적인 변화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예전 우리 세대에게 '일기'는 학교 숙제의 대명사였죠. 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초등학교의 일기 검사가 아동의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고, 이제 많은 교실에서 강제적인 일기 쓰기와 검사 관행이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변화라는 점에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교육적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도 큽니다. 매일의 삶을 기록하고 문장으로 정리하며 얻는 '성찰의 힘'을 기를 기회가 학교 밖으로 밀려난 셈이니까요. 학교에서 정답을 맞히는 법은 배우지만, 정작 내 마음의 정답을 찾는 연습은 이제 가정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집에서 아이와 함께 펜을 들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글쓰기, 부모와 자녀를 잇는 가장 고요한 대화
두 번째 이유는 글쓰기가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가장 깊은 ‘소통 창구’가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지난 글에서 편지를 쓰는 시간은 곧 그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이라고 말씀드렸지요. 말은 허공으로 흩어지기 쉽고 때로는 감정에 휘말려 날카로운 가시가 돋기도 하지만, 글은 정제된 마음을 담아냅니다.
아이와 함께 글쓰기 공간을 꾸리고 주제를 나누다 보면, 평소 대화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아이의 속마음을 마주하게 됩니다. "학원 가기 싫어"라는 투정 뒤에 숨겨진 아이의 피로함이나, 친구 관계에서의 미묘한 서운함을 글 속에서 발견할 때 부모는 비로소 아이의 '진짜 데이터'를 얻게 됩니다.
반대로 부모 역시 글을 통해 아이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습니다. 잔소리처럼 들릴까 봐 삼켰던 응원의 말들, 혹은 부모로서 서툴렀던 순간에 대한 고백을 글로 전해 보세요. 손 편지가 오갈 때 흐르는 그 애틋한 공기가 글쓰기 교육을 통해 가정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지난 주말에는 자작자작 글쓰기 플랫폼에 '두려움'이란 글감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두려움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 중 하나입니다.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메커니즘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성장과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각자는 표면적인 두려움 (예: 시험 실패, 거절당하기, 높은 곳 등) 너머에 더 근본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충분히 좋지 않다'는 생각, 외로움, 통제력 상실, 의미 없는 삶을 사는 것 등 더 깊은 차원의 불안일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 칼 융은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종종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두려움을 인식하고 그것과 마주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성장과 자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나요? 그리고 그 두려움이 여러분의 삶과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오늘은 자신의 깊은 두려움을 탐색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넘어서기 위한 방법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작성 안내>
1. 자신이 느끼는 표면적인 두려움 너머에 있는 더 근본적인 두려움이나 불안을 탐색해 보세요. 이 두려움이 언제부터,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성찰해 보세요.
2. 이 두려움이 지금까지 여러분의 선택, 관계, 목표 등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분석해 보세요.
3. 이 두려움을 이해하고 그것과 더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 또는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작은 단계들에 대해 계획해 보세요.
그리고는 제가 먼저 예시글을 적어보았습니다. 그동안 아빠는 모든 일에 괜찮은 척을 했지만... 실제로는 '겁쟁이'였다는 것을 고백하는 수줍은 글이었습니다.
오늘은 아빠가 아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나 해주려고 해. 바로 아빠의 마음속에 사는 ‘겁쟁이’에 대한 이야기야. 아빠가 겉으로는 씩씩해 보여도, 사실 속으로는 덜덜 떨 때가 많거든!
1. 아빠를 괴롭히는 ‘4대 천왕’ 두려움
아빠 마음속에는 네 명의 대장 겁쟁이가 살고 있어. 첫째는 ‘행복 도둑’ 두려움이야. 지금 우리 가족이 누리는 이 꿀맛 같은 행복을 누군가 뺏어갈까 봐 괜히 걱정하곤 하지. 둘째는 ‘직장인 멘붕’ 두려움! 경력이 쌓여 대선배가 되어가는데, 사실 아빠도 모르는 게 많거든. 후배들이 물어볼 때 “어… 그게 말이지…” 하며 당황하다가 피해를 줄까 봐 진땀을 뺀단다. 셋째는 ‘유리 멘탈’ 두려움이야. 배드민턴 경기에서 서브 한 번 넣을 때나 중요한 발표를 할 때, “망하면 어떡하지?” 하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병이 도진단다. 마지막으로는 ‘할아버지 닮기’ 두려움이야. 편찮으신 할아버지를 보면서, 나중에 아빠도 내 몸을 내 마음대로 못 쓰게 되면 어떡하나 하고 살짝 우울해질 때가 있어.
2. 이 겁쟁이들이 아빠를 어떻게 괴롭혔냐면…
이 녀석들 때문에 아빠가 너무 ‘선비’처럼 굴 때가 많았어. 실패가 무서워서 안전한 길로만 가려고 하고, 후배들 앞에서는 ‘완벽한 아빠’인 척하느라 스스로를 들들 볶았지. 특히 나이 드는 게 무서우니까,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보다는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 걱정에 빠져서 인상을 팍 쓰고 있기도 했단다.
3. 이제 이 겁쟁이들과 ‘절친’이 되어보려고!
심리학자 칼 융 아저씨가 그랬대. “가장 무서운 곳에 네가 진짜 필요한 보물이 있다”라고! 그래서 아빠는 이제 이 두려움들이랑 친하게 지내기로 했어.
첫 번째, 미래 걱정 대신 오늘을 즐기는 거야. 내일 행복을 미리 걱정하느라 오늘 너희랑 노는 시간을 놓치지 않을 거야! 두 번째는 “나도 몰라!” 작전이지. 후배들한테 다 아는 척 안 하려고. “나도 잘 모르는데 같이 공부해 보자!”라고 말하는 멋진 선배가 되어보려고 해. 세 번째, 쿨하게 넘기기야. 서브 실수? 배드민턴 서브 실수 좀 하면 되지, 지기 밖에 더하겠어? 발표 좀 버벅대면 어때? “에잇, 실수했네!” 하고 웃어넘기는 단단한 멘털을 키울 거야. 네 번째는 오늘의 나를 사랑하는 거야. 나중 일을 미리 걱정하기보다, 지금 내 다리로 걷고 뛰는 것에 감사하며 더 열심히 운동하는 ‘몸짱 아빠’가 될게!
두려움은 우리가 더 잘살고 싶다는 증거래. 아빠도 이렇게 노력 중이니까, 너희도 무서운 게 생기면 숨기지 말고 아빠한테 말해줘. 우리 같이 그 두려움을 발로 뻥~ 차버리자!
제가 쓴 글을 읽고 나서 큰 딸은 이런 글을 썼더라고요. '아빠가 알고 보니 겁쟁이였더라?' 하면서 말이죠.
사람은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두렵거나 무서운 것 하나쯤은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영화에 나오는 용감한 캐릭터도 무서워하는 것이 있듯이 무서워하는 것은 자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겠다.
나는 학생인지라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의 3분의 1 정도는 숙제와 공부와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숙제가 12페이지까지인 줄 알고 거기까지만 했는데 학교나 학원에서 검사받기 직전 숙제가 18페이지까지였다는 것을 발견하거나 아니면 일요일에 숙제하려고 보니 할 일이 산더미라던가 이런 일들 말이다. 그때 얼마나 멘탈이 부서지는지 모른다.
두 번째는 내가 아끼거나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지는 일이다. 가족을 사고로 잃거나 몇 년 동안 공들여 쓰던 소설을 잃어버릴 때 말이다. 물론 가끔 질려서 없어져도 별로 안 슬플 거라 생각되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아끼는 것들도 그만큼 적지 않다.
그리고 내가 다치거나 아프게 되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칼을 쓰거나 종이를 넘길 때 손가락을 베이거나, 뛰어가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벗겨지면 굉장히 아픈데 다른 사람들이 다 그러는 거처럼 그 통증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조심하게 된다.
또 나는 뱀이나 거미 같은 독이 있는 곤충이나 동물을 무서워한다. 아직 물려본 적은 없지만 독이 아주 치명적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독이 내 몸에 들어와서 나를 괴롭히고 망가뜨리는 것도 싫고, 13세의 나이로 죽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자연히 그런 두려움이 생긴 것 같다.
결국 가정에서의 글쓰기 지도는 단순히 맞춤법을 가르치는 기술 교육이 아닙니다. 학교가 지켜주지 못한 아이의 기록 습관을 잡아주고, 말보다 깊은 글의 힘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사랑의 기술'입니다. 사춘기라는 높은 벽이 세워지기 전, 글쓰기라는 튼튼한 다리를 우리 아이와 함께 놓아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