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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 Jung Jun 17. 2023

[에세이] 우연 - 3

도시 아이

 마을로 들어서는 길 왼쪽에는 가는 시내가 굽어 흐른다. 시냇물 건너편 귀퉁이의 작은 언덕벽에는 당나무라 불리는 오래된 나무가 있다. 어디부터가 뿌리의 시작인이 알 수 없게 생긴 이 나무는 기둥의 아래가 사람의 두 다리처럼 벌어져 있고, 그 가운데에는 더운 날 수소의 그것처럼 아래로 길게 늘어진 고환모양의 혹이 붙어있다.


 당나무가 위치한 그곳은 찻길이 넓어 뛰어놀기가 좋다. 어차피 버스는 하루에 네 번만 마을을 들르고, 찻길이라고는 하나 자동차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는 수일 전 완성한 활로, 대나무와 철사, 못으로 만든 화살을 이리저리 쏘고 노는 중이다. 나는 활을 당나무의 그곳을 향해 들고 시위를 힘껏 당겼다가 놓는다. 명중이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나는 울상을 짓는다. 화살이 박힌 그곳은 높아서 내 손이 닿지 않는다. 게다가 당나무에 닿으려면 시냇물에 들어가야 한다. 동네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당나무는 귀한 나무라 함부로 꺾지도 말고, 올라타지도 말라고 일렀다. 그렇잖으면 부정을 탄다고 했다. 가만 보니 그 말이 맞다. 하필이면 나는 당나무의 급소를 찔렀으니 이런 벌을 받게 된 것이 당연한 이치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주변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줍고, 신발을 대충 벗어던지고는 당나무 아래로 간다. 나뭇가지를 높이 들어 화살을  향해 뻗는다. 나뭇가지가 닿을 듯 말 듯 허공에 흔들린다. 그때 큰 웃음소리가 들린다. 계단식으로 집들이 모여있는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아주머니의 목소리다. 내가 당나무의 아랫도리를 간지럽히는 바보로 보일까 봐 해명할까 싶다가도, 그럴 계제가 아니다 싶어 다시금 화살에 집중한다.


 나뭇가지가 당최 화살에 닿을 성싶지가 않다. 나는 나뭇가지를 던져 화살을 맞힌다. 어림도 없다. 나는 물이 첨벙거리도록 발을 구르고 꼭 쥔 손을 연신 위아래로 흔들며 분을 풀다가 뒤로 돌아선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주머니는 한 번 더 소리 내어 웃는다. 내가 분투하는 모습이 재밌던지 아직도 걸음을 떼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턱끝을 목에 닿을 듯이 당겨서 웃는 모습이 얄밉다. 그 와중에도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벗어둔 신발을 향해 걸어 나온다. 젖으면 곤란하니, 활을 어깨에 메고 양손에 신발을 한 짝씩 들고 맨발로 걷는다. 아주머니가 내 뒤를 따라 걸음을 뗀다. 아주머니가 뒤에서 말을 건다.

<니 저 화살 포기하나?>

키 큰 어른이면서 도와주기는커녕 놀리기만 하는 것 같아 나는 투덜거리듯 대답한다.

<아니요, 집에서 감 딸 때 쓰는 장대 가져오려고요.>

아주머니는 한참 말이 없다가 내게 다시 말을 건다.

<그거 우리 손주가 좋아하겠다. 저번에 내가 줬던 사탕 맛있었지? 몇 개 더 줄게, 바꿀래?>

순간 고민이 든다. 어렵게 활을 만들던 기억과, 입에 넣으면 숨을 쉬기가 어려울 만큼 커다랗고 달콤하던 사탕의 맛이 머릿속에서 갈마든다. 하지만 나는 보통의 아이가 아닌 사나이의 결정을 내린다.

<아니요, 안 바꿀래요.>


 며칠 뒤, 윗 집 아주머니네 집에 손주가 놀러 왔다. 나는 혹여 내 활과 화살을 잃을까 봐 경계심이 든다. 그를 먼저 보고 온 둘째가 내게 말한다.

<걔 좀 기분 나쁘다.>

나는 단번에 그 뜻을 이해한다. 우리 남매는 도시에서 온 아이들에게 유난하게도 거부감을 가졌는데, 그런 감정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었다. 어쩔 도리가 없다. 대중목욕탕에서 금방 나와서 새 옷과 새 신을 신은 듯한 모습을 하고서는 우리의 일상을 초라하게 만드는 말을 뱉는 게 그들에 대한 우리의 인상이었다. 그중에서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과 같은 말씨를 쓰는 아이들이 특히 더 그랬다.


 한 번은 부모와 함께 승용차를 타고 온 어떤 아이가 내 부모님의 과수원에 달린 예쁜 사과를 허락도 없이 딴 적이 있다. 하릴없이 사과나무를 타며 놀던 나는 그 광경을 보고 도둑이라며 큰 소리로 성을 낸다. 손가락으로 그 아이를 가리키며 눈이 마주칠 때까지 같은 소리를 질러댄다. 그랬더니 아이는 손에 든 사과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제 부모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내가 저를 괴롭힌다며 이른다. 뭘 잘했다고 우는 소리도 낸다. 그 아이의 엄마가 나를 부른다. 아이에게 용서 구하는 법을 가르치려나 보다 하며 나는 의기양양하게 사과나무 사이를 걸어 나간다. 나는 이 과수원 주인의 아들인 것이다. 자신감이 넘친다. 예쁜 옷을 입은 아주머니의 품에 아이가 얼굴을 묻고 안겨있다. 얼굴이 하얀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다. 내가 가까이 와서 멀뚱히 쳐다보자, 그녀가 상냥한 얼굴로 말한다.

<내가 남인 줄 아니? 그 사과 하나 딴다고 너한테 얘가 손가락질을 당해야 하니? 얘는 도둑이 아니야.>

이런, 텔레비전 사람들의 말씨다. 나는 조금 주눅이 들고, 계속해서 듣는다.

<이 사과 밭이 네 거니? 네 부모님 거지. 부모님이 너한테 우리 이름 알려주면서 사과 못 따먹게 하라고 시켰니? 그랬니? 아니지? 너는 참 나쁜 아이야.>

생각해 보니 아버지도, 어머니도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내가 잘못을 한 모양인가 싶어 얼굴이 붉어진다. 나는 입꼬리가 무거워지고, 앙다문 입술이 제 멋대로 움직이기도 하고, 어금니 맞물리는 힘이 세게 들었다가 빠진다.

<사과해야지. 안 할 거니?>

이번에는 이마에 이어 눈이 제멋대로 뜨거워진다. 어깨가 들썩이고 등줄기는 싸하다. 어느덧 입술에 닿는 눈물이 짜다.


 그나마 다행이게도, 윗집 아주머니의 손자는 말씨가 나와 같다. 키가 좀 작다 싶더니, 알고 보니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리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형이라는 말을 들어본다. 나는 도시 아이를 만날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니, 언제 돌아가는데?>

해맑은 얼굴로 아이가 답한다.

<몰라. 내일 아니면 모레 아니면 그다음 날.>

대답이 맹하다. 마음에 쏙 든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둘째가 양손을 둥글게 말아 입에 대고서 나한테 귓속말을 한다.

(언제 또 오는지를 물어봐야지!)

맞는 말이다. 중요한 건 그런 거였다. 역시 누나는 누나다. 도시에서 오는 아이들이란 처음에 밉다가, 친해질 즈음이면 원래의 집으로 돌아가버렸고, 우리의 몫으로 서운함만 남기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떼려던 참에 녀석이 먼저 대답한다.

<할머니 보고 싶을 때마다.>

둘째의 귓속말 보안이 신통치 않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와 둘째는 드디어 매우 중요한 결정을 한다. 녀석과 같이 노는 것이다. 나는 녀석에게 나를 형이라는 호칭대신 이름으로 부르라고 시킨다. 이 마을의 어른들이 정해준 규칙으로, 아직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나이를 따지지 말고 격 없이 어울려 지내라는 것이다.


 그는 잣나무골을 자주 방문했다. 해가 바뀌고, 내가 여덟 살 정식 학생으로서 분교를 다니게 되어서도 그의 방문은 이어졌다. 방학이 되면 보름 넘게 머물다 가기도 했다. 내가 아홉 살이 되던 해에 분교가 폐교되고 둘째와 나도 대구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 후로 방학이 되면, 내가 한 명의 도시 아이가 되어 잣나무골을 방문했다. 동네 마지막 출생자인 나를 경계할 아이는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윗집 아주머니의 손자는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나는 중학생을 거쳐 고등학생이 됐고, 2년의 시간이 더 흘러 고3 수험생됐다. 그렇게 어울려 놀았던 시간의 수십 배, 수백 배 긴 시간이 흐르면서 어릴 적 어울렸던 도시 아이의 기억은 잊혀 갔다. 어느 날 내 어머니는 전화를 한통 받으시더니, 내게 그의 소식을 전하셨다. 그 해에, 잣나무골 윗집 아주머니의 손자, 그가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마주칠 때면, 그는 이름이 아닌 선배님이라는 호칭으로 나를 불렀다. 이따금씩 학교에서 그를 마주칠 때면, 나는 이 나라가 생각보다 작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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