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잔향의 문
7월 12일, 화요일 김훈성 실장은 일을 미루는 법이 좀처럼 없었고, 역시나 그가 월요일 아침에 말한 대로 나의 인적사항은 바로 다음날 포렌식 팀에 전달되었다. 목요일 퇴근 때까지 이수연 실장으로부터 온 이메일은 없었다. 기약 없는 불안정성이 싫었다. 어차피 벌어질 일, 면접 날짜 통보를 나는 차라리 기다리고 있었다.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면서 문득, 아직 내가 이 실장의 전화번호를 모른다는 사실과 간밤에 온 부재중 전화가 저장되지 않은 번호라는 사실이 갈음하며 떠올랐다. 설사 그럴 일은 없으리라 단정하며 나는 치약을 뱉었다. 고운 거품에 길쭉한 피가 묻어 나왔다. 운전석 유리창 너머의 한강으로 담배 연기를 뿜으며 운전을 하고, 건물 뒤에 후진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 사무실로 들어섰다. 한 주가 순식간에 지나고 또다시 금요일이 되었다며 담소를 나누는 동료들에게 목례를 하고, 소리를 내는 둥 마는 둥 인사말을 하며 노트북을 꺼냈다. 읽지 않은 이메일이 줄지어 들어왔고, 그중 대부분은 내가 감시하는 고객사 망의 시스템 로그였다. 로그 분석 툴을 거친 비고에 이상징후나 침해탐지 알람은 없었다. 특별할 것 없는 업무의 시작이었다. 불현듯 나는 아침잠에서 일어나 확인했던 부재중 전화를 떠올렸다. 내가 담당하는 고객사의 보안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꼭두새벽부터 그렇게나 전화를 걸었던 걸까.
“여보세요.”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부재중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내가 말했다.
“어디세요?” 여자가 묻는 것이 나의 물리적 장소인지, 회사나 부서 따위의 소속인지, 혹은 내 이름을 묻는 것인지를 고민하느라, 나는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하고 대답하려던 참에 여자가 다시 물었다.
“조태호 씨, 지금 어디세요?”
“아, 이수연 실장님이셨군요. 지금 사무실입니다. 새벽에는 어쩐 일로……”
“이수연이 누군데요?”
“네? 그럼 그쪽은 누구십니까?”
“하연인데요.”
머릿속으로 이름을 훑었지만 떠오르는 얼굴은 없었다. 고객사 직원도 아니고, 이수연 실장도 아닌데 나를 안다. 회사 바깥세상에서 여성과 소통하는 일이 없었기에 나로서는 몹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고 아마도 나의 얼굴도 알 터였지만, 그에 반해 나는 그녀를 몰랐다. 이름도, 전화번호도, 얼굴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 폰에는 그쪽 번호가 저장돼 있지도 않고 아, 이점은 물론 제 잘못일 수 있겠지만요. 저는 그쪽이 누구신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전화 너머에서 거리감이 있는 한숨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한숨소리의 끝을 듣고서도 내가 할 말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모르면 재깍재깍 모른다고 말을 하지 뭐가 그렇게 굼떠요? 나, 이하나 언니예요. 연후 씨하고 같이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니, 내가 이런 것도 설명해야 해요? 뭐 며칠이나 지났다고 내 이름도 기억을 못 한대…….”
여전히 불씨가 남은 장초를 밟아 끄고서 장례식장으로 현관으로 들어서던 검고 긴 머리의 뒷모습이 그제야 기억났다.
“아, 네. 이하연. 세상에, 이제야 기억이 나네요. 제가 워낙에……” 부지불식간에 나의 말투는 오랜 지기라도 만난 것처럼 들떠있었다. 나의 무의식이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 잘못을 만회하려 쓸데없는 법석을 떠는 모양이었다. 내가 말끝을 맺지 못하는 참에 그녀가 대꾸했다.
“됐고요. 자위기구 어디 있어요?”
“자위기구……. 예?”
이른 아침, 사무실, 내 자리, 사적인 통화. 그리고 육성으로 뱉어버린 자위기구 라는 단어. 목과 얼굴이 뜨거워지고 귓불까지 열기가 번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내가 모르는 전화번호였고, 뭇 책임감 있는 사람이 그러하듯 부재중 전화는 늦더라도 확인하는 것이 마땅했다. 당연히, 나는 공적인 부재중 전화였으리라 의심치 않았다. 자기 합리화의 회로가 동작하는 걸까—자문해 보았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벗어난 일이었다. 확실히,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전화를 든 손바닥에서 맺힌 땀이 손목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구두의 뒷굽이 절로 들썩였다. 나의 잘못이라면 멍청하게도 그 말을 입으로 내뱉어버린 것뿐이었다. 나에게 집중되는 주변 직원들의 시선이 피부로 느껴졌다. 순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철로로 몸을 던지는 사람을 마주한 기관장이 떠올랐다. 내가 기관장의 입장이었음을 설명해야 할 일이 없기를, 혹여 설명해야 한다면 그 기회가 조속히 오기를 바라고 바랐다. 내게 주어진 최선책은 회피였고 나는 주변 직원들을 의식하며 점잖게 목소리를 높여 말을 이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업무 중이라, 제가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급하시다면 문자를 남겨주시죠. 실례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무어라 매섭게 쏘아붙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거의 아마도 확실히 그녀가 다시 전화를 걸겠지, 라는 불안이 채 전화기를 내려놓기도 전에 등골을 따라 머릿속으로 전달됐고, 나는 서둘러 전화를 무음으로 돌렸다. 하룻낯 내내 나는 하연에게서 전화가 올까 봐서 마음이 불편했다. 도저히 마음 편하게 점심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기에, 그날 점심은 탕비실의 쿠기 몇 조각과 커피로 때웠다. 퇴근시각까지 그녀가 단 한 번도 다시 전화를 걸어오지 않은 것은 뜻밖의 다행이었다. 그까짓 성인기구가 뭐라고 고작 장례식에서 단 한번 만난 내게 닦달을 한단 말인가. 심지어 그것의 주인은 제 죽은 여동생의 것이 아니었던가.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노트북을 접어 가방에 쑤셔 넣으면서 문득, 미루고만 싶은 방학숙제 같은 고민이 불쑥하고 떠올랐다. 종이가방 속을 뒤졌다는 사실을 하연에게 숨길 수 있을까. 연후에게는 숨길 수 있을까. 어차피 나는 고인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 이런 상황에 처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불공평한 경우라고,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있을까. 나는 얼굴에 드리운 불쾌함을 숨길 여유도 없이 사무실을 떠나 차에 올랐다. 연후를 불러 종이가방을 돌려주면 그만인 일라고 목표를 정하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담뱃갑이 비어있어 퇴근길 내내 담배를 태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대로로 빠져나온 나는 곧장 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잔잔한 피아노 전주에 이어 여가수가 막 노래를 시작하던 즈음에 그가 전화를 받았다.
“어, 근무 중.”
짤딸막한 그의 말마따나 편히 말하기가 여의찮은 탓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의 목소리는 태연한 척 침울했다. 연인의 죽음을 겪은 사람을 대하는 나의 편향 때문일 수도, 과로하기가 빈번한 구급대원이라 으레 그럴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구급대원이래 봐야 결국은 사람이라 익숙해질 수 없는 꺼림칙한 일들은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교통사고 등의 이유로 심하게 다친 환자나 끔찍하게 훼손된 시신을 마주한 날이면 그는 특히나 별일 아닌 척을 했으나 그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목소리에서 침울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다만 그의 우울이 출동 때문이기를 바랐다, 그럴 리가 만무하건만도. 부모가 죽어도 주어진 휴가를 마치면 일터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월급쟁이의 처지이니, 연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시간이 그에게 충분히 주어졌을 리 없었다. 나는 그의 감정에 조용히 동조하며 차분히 물었다.
“잠깐 통화될까?”
“급한 일?” 그가 더욱 짧게 되물었다. 흔한 일이었다.
“아니야, 급하지는 않고. 어, 전혀. 급한일은 아니야.”
“나는 또 무슨 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네, 아무튼. 나는 출동했다가 이송 하나 마치고 이제 막 복귀했어. 잠깐 담배 피우고 있었는데, 아무튼, 바로 올라가 봐야 하거든. 내일 아침 공구 시에 교대하고 나서 얘기해도 되지?” 그가 빠르게 말을 쏟아내었다.
“그러자.” “그래, 끊는다. 쉬어라.” 고생해라—하고 내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그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들춰본 종이가방 속의 물건이나 하연의 전화 따위를 그에게 묻고 채근할 계제가 아니었기에, 전화를 걸었던 것을 나는 후회했다. 한숨이 나오고 가슴이 답답해져 에어컨을 세게 켰다. 왼손 검지를 까닥여 창문을 올리려 했지만, 이미 모든 창은 닫혀서 습한 바깥공기를 막아서고 있었다. 찌뿌둥한 건 옷과 피부에 닿는 차 안의 공기가 아니라 내 안의 무언가였다. 그나마, 내일 아침 연후가 퇴근하면 귀찮으리만치 얽혀있는 무언가를 조금은 풀어낼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때까지 만큼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련의 압박감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우리라, 하고 다행스레 여겼다. 실마리를 손에 잡고 풀기를 미뤄놓고는 다만 놓치지 않으려 손가락에 돌돌 말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금요일 저녁 퇴근길은 언제나 그랬듯 혼잡했고, 때로는 인도에서 수레를 끄는 노인이 나를 앞서기도 했다. 늘 금요일 퇴근길에는 장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꽉 막힌 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그 생각을 쉽게 접고는 했다. 예외는 드물었다. 거의 두 시간을 운전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고, 주차를 한 뒤 식료품점 대신에 가까운 편의점으로 걸어가서 도시락과 담배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끔찍한 풍선껌 광고음악을 질색하면서도 흥얼거리듯 나는 머릿속으로 집게손가락 끝 마디에 감겨있는 실을 엄지로 문지르며 아직 놓치지 않았음에 안도하기도, 타래가 풀리지 않았음에 초조하기도 했다. 에어컨 온도를 너무 낮게 설정했던가, 한기에 잠을 뒤척였다. 그래도 끈적함이라곤 찾을 수 없이 온몸이 보드라웠고 보송보송한 이불이 아늑해서 오히려 차가운 공기가 반가웠다. 발가락만 꼼지락거려도 그 쾌적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바로 누운 몸을 틀어 이불을 고쳐 덮는데 인기척이 있어 부스스 눈을 떠보니 나를 향해 모로 누운 딸의 정수리가 보였다. 팔꿈치를 괴어 고개 들어 다시 보니 옹송그리고 누운 딸이 딱해 보였고 — 아마도 내가 이불을 죄 끄잡아 덮은 탓인지라 미안하기도 했다 — 무엇보다도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애틋했다. 길고 검은 머리칼이며 동그란 이마며 기다란 속눈썹이며 모아쥔 조그만 손이며 나직이 들썩이는 어깨까지, 그녀의 모든 게 세상의 가장 착한 것들에게서 빌려온 것 같이 귀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깨지 않도록 나는 조심성 있게 이불을 끌어 녀석의 어깨까지 덮어주고서 새근새근 잠자는 소리와 아이다운 정수리의 꼬순내를 한참이나 만끽했다.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토닥이고 싶은 마음이 일었지만 혹여나 괜스레 그녀를 깨우는 짓일까 염려되어 생각에서 그쳤다. 침실 창밖에 가까운 담장을 겨우 비출만큼의 해가 뜰무렵 눈을 떴지만 채 잠에서 온전히 깨기 직전에 떠올랐던 의문은 기억나지 않는 딸의 이름이었다. 물을 끓이고 인스턴트 커피를 큰 컵 가득 타서 몇 모금을 마시다가 담배를 들고 집 밖으로 나섰다. 누가 비우는지 알길 없는 업소용 콩기름 깡통에는 바닥을 겨우 다 가릴 만큼의 꽁초가 들어있었다. 영원히 가득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꽁초가 아닌 맥주캔이나 소주병 따위의 쓰레기가 들어있는 것을 몇 번이고 보았지만 며칠 지나 다시 담배를 피우러 나와 들여다보면 사라지고 없었다. 이 깡통이 바로 이 골목의 재떨이 외다—하고 알리기 위해 꼭 한 줌만큼의 꽁초만 남겨두는 것 같기도 했다. 언제고 이 깡통을 비워주는 고마운 이웃을 알게 되면 감사를 전하리라. 눅진하고 차가운 새벽 공기에 소름이 돋았다. 두 개비째 담뱃불을 붙이고 전화기를 보니 여덟 시가 다되어 갔다. 주말이면 늦잠을 자는 것으로 부족한 휴식을 보충해 왔는데 요즘 들어 부쩍 아침잠이 준 것 같아 의아했지만, 일찍 일어나 손해 볼 것도 없고 억지로 잠을 잘 까닭도 없으므로 더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생각은 한 시간 정도면 연후와 통화를 할 수 있으리라는 것으로 옮겨갔다. 연후는 열 시가 다되어가도록 전화를 하지 않았고 나는 못마땅해하며 다시 커피 물을 끓이던 참에 그가 현관문을 두드리며 불렀다. 허구한 날 기별 없이 찾아오는 그였기 때문에 네놈의 전화를 내내 기다렸었노라고 책망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