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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 Jung Jun 15. 2023

[에세이] 잣나무골

자연부락

 내 고향은 잣나무골, 청송군의 한 구석에 위치한 산골 자연부락이다. 내가 태어난 후로, 그 마을에서는 아무도 태어나지 않았다. 나에게는 누나가 둘인데, 첫째는 나보다 세 살이 많고 둘째는 한 살이 많다. 둘째는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 마을의 막내였다. 우리 삼 남매를 포함한 마을의 어린이 수가 채 열명이 되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나를 알듯 나 또한 마을의 모든 사람을 알았다. 경운기의 단발엔진에서 나오는 소음만 없으면 마을 아래쪽 끝 집과 위쪽 끝의 집이 고함칠 필요 없이 육성으로 소통했다. 겨우 열 가구 남짓의 마을이란 그런 모습이었다.


 우리 삼 남매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백자분교라는 작은 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 내가 둘째와 그곳에 다닐 때에는 전교생의 수가 다섯이었다. 1학년이 셋, 2학년이 둘로 구성됐는데 나는 1학년, 둘째는 2학년이었다. 우리 둘을 뺀 나머지 세명은 학교에서 아이들 잰걸음으로 십분 거리에 있는 진골이라는 마을에 살았다. 진골은 학교 인근의 세 마을 중에서 그 크기가 중간이었다. 진골로 가기 위해서는 잣나무골로 가는 길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야 했지만, 잣나무골에는 없는 점방이 있어 이따금씩 사탕을 사러 가곤 했다. 설득하기는 어려웠지만, 비디오 게임기가 있는 친구를 졸라 놀기 위해 들르기도 했다.


 첫 째 역시나 백자분교를 다녔지만, 일찌감치 할머니와 대구로 유학을 떠났다. 워낙에 명석한 아이라 이런 시골에 머물러서는 안 될 일이라 주장한 교사의 말이 부모님에게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분교의 교사가 한 말을 증명하듯, 대구에서도 손꼽히게 큰 초등학교로 전학한 첫 해에 전교 1등을 해냈다. 안타깝게도 어린 첫째의 이런 면모는 그녀 앞으로의 10년을 고되게 하는 신호탄이 되고야 만다. 가진 것이 적었던 부모님이 삼 남매 중 첫째에게 많은 학구열을 쏟게 된 계기였다. 경영학을 배우지 않았어도 부모님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를 간파해 냈다.


 내가 아홉 살이 되던 해, 백자분교가 폐교됐다. 겨울방학이 끝나도 개학식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부모님이 설명을 했다. 둘째와 내가 등교할 곳이 없어졌다. 이렇게 삼 남매의 나머지 둘은, 할머니와 첫째가 사는 대도시인 대구로 거처를 옮겨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폐교 소식이 반가웠던 사람은 외딴 분교에서 학년 구분도 없이 모여 앉은 전교생을 혼자서 책임져야 했던 교사와, 학교와 담을 마주한 포도밭의 주인밖에 없었을 것이다.


 둘째와 나는 대구시 서구에 위치한 그야말로 거대한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가로로 길쭉하게 뻗은 4층짜리 건물이 정면에 등장하자 우리 둘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건물 너머로 비슷한 건물 두 개가 더 보였다. 걷는 동안 왼쪽으로는 커다란 운동장이 두 개, 쓰임이 짐작가지 않는 작은 운동장 몇 개도 녹색 천 따위의 벽으로 구분된 채로 보였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커다란 물고기가 헤엄치는 연못이 있는가 하면 작은 가축이 든 철제 우리도 보였다. 고개를 들어 건물의 창문을 올려다보니 셀 수 없이 많은 학생들이 보였다.


 직전의 겨울이 오기까지 내가 속해있던 학교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그 광경은 나를 불안하게 했다. 교실 한 칸으로 지어진 건물과 자그마한 운동장이 여태껏 알고 있는 학교의 전부였고, 학교에서 신비로운 곳이라면 고작 교사가 묵는 작은 방 한 칸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새로운 학교는 너무나 거대했고 두려운 곳이었다. 둘째의 얼굴을 보니, 나와 느끼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한편으로는 위안이 된다. 나만 바보 겁쟁이가 아니다. 둘째도 나와 같다. 한결 마음이 편해진 나는 촌뜨기 특유의 천진한 얼굴로 양쪽 눈썹을 높게 올린 채 둘째를 바라본다. 순간 그녀는 나를 온종일 초조하게 만들 질문을 던진다.

<있다가 집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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