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잔향의 문
7월 10일, 일요일. 꿈에서 죽은 소녀를 보았다. 낯이 익은 소녀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게 그녀와 관련한 기억은 없었다. 직관적으로 그녀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역시나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거실에서 부엌으로 향하는 나의 정면으로 열려있던 창문 밖에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이었는데, 나는 무심한 듯 표정이 없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꿈인가, 가위에 눌린 건가 하고 의심이 든 것은 그때였다. 몸 구석구석의 맞닿은 피부 사이로 미끄러운 땀이 느껴지면서 나는 잠에서 깼다. 나는 거실 바닥에 누워있었다. 이른 아침인지 늦은 오후인지 깨닫는 데에 삼십 분이 넘게 걸렸다. 손에 든 물건을 까맣게 잊고 주변을 뒤지며 찾는 사람처럼, 나는 언제 어디에서 잠이 들었는지를 시간 순으로, 또 시간의 역순으로 기억해 내려 애를 쓰느라 다른 무엇도 생각하지 못했다. 부엌 창문은 닫혀있어서 노르스름한 햇빛과 그를 가리는 나뭇가지의 그림자만이 간유리를 통해 보일 뿐이었으므로 조금 전 소녀를 마주했던 기억은 현실이 아닌 꿈이라는 증거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아마도 가위에 눌렸다가— 깨서 일어선 곳은 침실의 이불속이 아닌 거실 바닥이었기 때문에 마음은 계속 불편하기만 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땀으로 젖은 살갗에는 이따금 소름이 돋았고, 몸살이 난 듯한 오한을 느끼기도 했다. 집안 모든 전등을 켠 다음 더운물로 샤워를 하려던 참에 휴대전화에서 짧게 문자 수신음이 울렸다. 고등학교부터 절친하게 지낸 친구 연후로부터의 부고였다. 정수리로 쏟아지는 더운물을 맞으며 고체 비누를 쥐고 몸 구석구석을 문지르는 동안 나는 아무 생각도 않기로 했다. 창문 밖 소녀가 스치듯 머릿속에 떠오를 때면 연후의 여자친구 장례식에 입고 갈 옷과 검은 넥타이가 어디에 있는지 따위의 생각으로 창문 밖 소녀를 덮어버렸다. 거실 바닥의 차가웠던 느낌이 떠오를 때면 몸을 틀어 샤워기가 등을 향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머릿속 평온을 해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에는 최근 시스템 보안을 주 사업으로 하던 회사의 신규 사업, 데이터 복원 기술에 대한 생각에 집중했다. 몸을 다 씻고 세면대 앞에 서서 면도를 하다가 들여다본 거울 속 내 얼굴이 유달리 야위어 보였다. 최근 체중이 늘어나는 것에 신경이 쓰였으므로 기분이 좋았다. 욕실 벽걸이 수납장에서 수건을 꺼내 머리를 털며 거실로 나왔다. 몸의 물기가 채 가시지 않아 닿는 걷는 걸음마다 물로 발자국을 만들면서도, 나는 시원한 탄산수를 마셔야 했다. 겉을 깨끗하게 씻었으니 이제 몸속에도 청량감을 들이부어줄 차례였던 것 같다. 냉장고 문을 열어 가지런히 정리된 음료들 중에서 라임향 탄산수를 집어 들고 곧바로 뚜껑을 돌려 열고는 목이 따가울 만큼 빠르게 들이마셨다. 고개를 쳐들고 마시던 중 시야의 오른편으로 창문이 들어왔다. 터져 나오는 트림을 참는 통에 매워진 두 눈으로 창문 너머의 지는 태양과 건물들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장례식장까지의 거리는 25 킬로미터로, 주말이라고는 하나 서울에서 경기도 남부로 가는 데에는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릴 것이 뻔했다. 하지만 부고를 알린 이가 연후인 만큼 나는 가야만 했다. 마시다만 탄산수와 반 갑이 넘게 남은 담배를 챙기면서 운전에 대비했다. 운전을 하던 중에 마실 것이 없다던가, 피울 담배가 없다던가 하는 불상사를 막는 것은 제법 중요한 일이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길은 조금 전 내게 일어난 일련의 불가해한 사건을 생각하기에도 마침맞았다. 운전대를 잡고 길을 나서자 군데군데 가로등이 켜지며 밤길을 밝히기 시작했다. 나는 담뱃불을 붙이고 조수석 창문과 선루프를 조금 열었다. 눅진한 여름밤의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오롯이 운전과 담배연기에 집중했던 것 같다. 필터에 닿기 직전까지 태운 꽁초를 차량용 재떨이에 비벼 끄고서도 창문과 선루프를 열어둔 채 화면의 길안내에 따라 밤길을 달렸다. 내 차의 내비게이션 장비는 말이 없다. 음악을 듣거나 라디오를 들을 때 안내음성 때문에 무언가를 놓치는 것이 싫고, 무엇보다도 끈질기게 울리는 과속 경고음이 싫어서다. 어느덧 고속도로에 진입을 하고, 나는 모처럼 느긋하게 2차로를 달렸다. 왼손으로 운전대를 잡은 채, 오른손으로 담뱃갑을 집어든 다음 엄지로 뚜껑을 열고 손목을 퉁겨 몇 개비가 솟아오르게 한 다음 가장 높이 뛰어오른 담배의 필터를 앞니로 꼬집듯 문 다음, 검지로 뚜껑을 닫은 담뱃갑을 내려놓고 라이터를 집어 들었다. 불을 붙이고 볼이 옴폭 파이게 첫 모금을 당겨마시면서 라이터는 담뱃갑 옆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뿌연 연기는 앞차의 브레이크 등에 붉어졌다가, 1차로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BMW의 주행 등에 푸르스름해지기도 했다. 주변에 다른 자동차가 없을 때면 가로등 불빛에 해 질 녘 구름처럼 노래졌다. 소녀를 본 것도 그 무렵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에 대한 판단에 앞서, 창밖에서 나를 향해 선 그녀도 해 질 녘의 노란 하늘을 등진 채였고 거실에서 일어난 내가 창문으로 시선을 던졌을 때의 하늘도 노랬다. 소녀를 본 때의 시간대와 깨어난 직후의 시간대가 일치한다면, 소녀를 본 건 꿈에서가 아니라 현실일 가능성을 키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평소 꿈의 배경이 밤이었다고 하여 수 없이 꿨던 그 꿈들이 현실일 가능성은 없다는 반론이 머릿속 한 구석을 우직하게 자리 잡으며 나 스스로를 다그쳤다. 팔짱을 낀 채 콧방귀를 뀌는 반론을 위로하기 위해 나는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들이마셨다. 그런데, 내가 부엌의 창문 밖을 눈여겨본 일이 과거에도 있었던가—하는 의문이 크고 둥근 눈의 새끼고양이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럴 리가 없다. 소녀가 내다보이던 창문 오른편 나무의 모양과, 거실에서 일어나 바라본 닫힌 간유리에 비친 나무의 그림자는 너무도 닮아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최근의 기억이라고 한 들 사람의 기억은 결코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고 뇌의 해석이 반영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나무의 형상 따위는 왜곡된 기억일 수 있다. 그렇게 반론이 이기는 듯했다. 하지만 샤워를 마치고 나와 탄산수를 마실 때 창문은 열려있었다. 창문을 열었던 기억이 없기에 생각의 파편을 아무리 고루 주워 모아도 퍼즐이 맞춰지지 않았다. 소녀를 마주하기 전에 이미 창문이 열려있었다면 차라리 말이 된다. 창문이 닫혀있었던 게 아니라 거실에서 일어났을 때 잠이 덜 깬 나의 시야가 흐리멍덩했던 탓에 마치 간유리로 된 창문이 닫힌 것처럼 보였을 수 있다. 아마도, 창문을 열어둔 지 너무 오래되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 누구나 잠버릇이 있어서 누운 곳과 일어나는 곳이 다를 수 있다. 나의 경우 그 거리가 침실에서 거실의 거리만큼 조금 더 멀었을 뿐이다. 아마도 이 정도라면 몽유병 축에도 끼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담뱃재가 바람에 날려 차 안 여기저기서 부서지고 떨고 있을 때, 나는 그러면 그렇지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고작 그런 일에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움을 느껴 집안의 모든 전등을 켰던 스스로를 위한 격려였다. 입구에 출입 차단기가 없는 장례식장 주차장은 한눈에 보아도 빈 주차칸이 주차된 차보다 많았다. 습관적으로 출구와 가까운 곳에 후진주차를 한 다음 눈곱을 꼬집어 떼고 차에서 내렸다. 아스팔트를 밟자마자 양허리에 손을 받치고 등을 펴면서 바라본 4층짜리 건물은 위쪽 두 개 층의 전등이 모두 꺼져있었다. 장례식장의 입장에서는 실적이 그다지 좋지 않은 날이었을 테다. 나는 로비의 구석에서 어렵지 않게 현금인출기를 찾았고, 출금한 십만 원을 손에 들고 계단실 옆에 친절하게 비치된 높은 탁자로 가져갔다. 수백 장의 조의금 봉투가 켜켜이 세워져 있고 개중 대여섯 장이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흩뿌려져 있었는데, 나는 그중 하나를 집어 돈을 넣었다. 봉투를 뒤집어 내 이름 석자 조태호를 쓸 때가 돼서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실제로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러니까 모르는 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한 여인의 장례식장에 온 것이다. 부고문자에 쓰인 대로 나는 201호 빈소를 향해 계단을 올랐다. 2층 복도는 조용했다. 갓 여덟 시를 넘긴 시각치고는, 또 장례식장이라는 장소를 감안하면 차라리 적막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빈소를 지나쳐 갈 것도 없이, 201호는 복도의 첫 빈소였다.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늘 신고 다니는 검은 구두를 벗으며 빈소 안쪽을 대충 훑어보았지만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질 뿐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 직업의 특성상 경사까지 챙기지는 못하더라도 평소 주변의 조사만큼은 빠지지 않고 얼굴을 비추던 연후였다. 하지만 오늘의 고인이 아내가 아닌 연인이었던 탓에 그가 부고를 전할 사람은 많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따지고 보면 연후 그 스스로도 일개 조문객에 지나지 않았다. 남편이 아니므로 한 줄짜리 완장도 차지 못 할 것이 분명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녀는 삼십 대 초반이었다. 젊디 젊은 사람이 요절을 했는데 이토록 장례식장이 한산하다는 것이 여전히 의아했다. 이미 죽은 사람이 무엇을 알겠냐만은, 나의 장례식이 이렇게 되지는 않기를 짤막하게나마 바랐다. 아니, 어쩌면 이런 편이 나을지도. 신발장 앞에 서서 목청을 고르며 작게 헛기침을 했는데 의도치 않게 소리가 울리는 통에 꽤나 무안했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하나하나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장례식을 방문했지만 이렇게 말을 던져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도 거의 확실히, 두 번 다시는 없을 말이었다.
“저기……. 계십니까?” 마음속으로 초를 세었다. 5초를 기다리고, 아무도 모를 난처함에 오롯이 혼자서 부끄러워하다가 10초가 지나기 전에 얼른 재킷 안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연후에게 전화를 걸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휴대전화 진동소리가 들려왔다. 오른쪽 귓바퀴가 절로 움직였다. 일부러 움직이고자 용을 쓸 때에는 꿈쩍도 않는 부위가 이럴 때에는 곧잘 제 기능을 한다. 나는 곧장 오른쪽으로 걸음을 떼며 다행이라는, 혹은 잘됐다는 따위의 순간적인 안도감에 기인한 미소를 의식하고 얼른 거두었다. 내가 막 표정을 고쳐지었을 때,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목뼈가 부러진 듯 이마를 무릎까지 숙인지라 그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주황색 소방공무원의 제복이 그가 연후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의 흐느끼지 않았고, 다만 가만히 느린 숨을 반복하고 있었다. 연후는 그야말로 덩그러니 혼자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공연히 그를 깨울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그저 그의 맞은편 벽에 등을 대고 앉아서 기다릴까— 하고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정면의 영정사진과 나 사이에 놓인 향로가 신경이 쓰였다. 물건은 저마다의 쓰임이 있고, 그 쓰임에는 때가 있다. 나는 직사각형의 향그릇에서 세 가닥의 향을 집어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단 어디에서도 성냥이나 라이터가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담뱃갑 속에 넣어 둔 라이터를 꺼내어 향 끝을 태웠다. 향로가 제 쓰임을 찾았다. 이미 여러 고인을 거쳐간 듯 색이 바래고 먼지가 눌은 조화에 손을 뻗어 만져보려던 차에 연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와줬네. 깨우지 그랬어.”
앉은 채 기지개를 켜는 그를 향해 내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문자를 받았으니까, 그러니까 왔지. 그런데 어째 아무도 없어? 상주는, 그러니까, 가족들은? 보아하니 너도 급하게 온 모양인데.”
그가 머리 위로 쭈욱 뻗었던 손을 내려 바닥을 짚은채 뒤통수를 벽에 대고 대답했다. “피차 맞절은 됐고, 좀 앉아라. 피곤해 죽겠네. 그런데 너는 인마, '너는 괜찮냐'라던가, 그래도 뭐 어떻게 된 일인지 묻기라도 하던지. 빈소가 휑한 게 뭐 대수라고. 하긴, 일반인들은 잘 모를 수도 있겠네. 타지에서 죽으면 이런 경우는 흔한 거야. 참, 네. 하나네 가족은 제주도에 살아. 항공편이야 얼마든지 많으니까 곧 올 거야. 나는 그때까지만 지키고 있으려고. 어쨌든, 와줘서 고맙다. 배고프면 말해. 상조회사에서 출장온 분들이 휴게실에서 쉬고 있는데, 말만 하면 이것저것 차려줄 거야.” 흰밥을 입에 물고 육개장을 한 숟갈 하려는데 연후가 소주병과 잔을 상에 올려놓고는 맞은 자리에 앉았다.
“나 운전해서 왔어. 못 마셔. 대리운전도 무리야, 여기서 집까지는.” 씹던 밥만 삼키고 육개장은 여전히 숟가락에 든 채로 내가 말하자 그는 심드렁하게 “내가 마실 건데.”라고 뱉듯이 말했다. 나는 “아, 음음.”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육개장을 입에 넣었고, 그는 소주병을 따고 잔을 채운 뒤 바로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그는 이내 나무젓가락을 좌우로 뜯고 수육을 새우젓에 찍으며 말했다.
“하나는 말이야. 어쩌면 살해당한 건지도 몰라.”
나는 손에 든 밥숟갈과 입의 저작운동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차가운 수육을 입에 쑤셔 넣고 마치 그것이 질긴 고무인양 씹었다. 이 사이에 고기가 끼인 듯 인상을 쓰며 혀로 어금니를 긁으며 소주잔을 채우고는 다시 한번 입으로 털어 넣었다. 입안을 헹구느라 그의 볼이 한쪽씩 볼록해졌다가 금방 홀쭉해졌다. 그는 손에 든 젓가락을 까딱거리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망상장애라나? 정신병자 취급을 하더라고. 하나네 가족들이 말이야.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거든. 오히려 하나는 누구보다 분별 있고 똑똑해. 항상 감정기복도 적고 얼마나 침착한데. 정신병자라는 게 말이 안 돼. 전혀 말이 안 된다고. 야, 태호야. 네가 보기에도 정신병자 같았어? 하나가? 아차차, 네. 넌 아직 만난 적이 없지.”
그는 마치 아직 연인이 살아있는 사람인 것처럼 말했다. 나는 그녀를 만나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만날 수 없다. 오늘, 장례식장에서 사진으로 마주한 지금의 상황을 두고 내가 그녀와 만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저세상이 존재하여 훗날 그곳에서 그녀를 만난다면, 그것이 서로에게 초면일 것이다. 나는 그가 또 한 잔의 소주를 들이켜는 걸 바라보면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야, 연후야. 어떻게 된 거야. 하나 씨 말이야. 어떻게 죽……. 그렇니까,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냔 말이야.”
그는 조그마한 소주잔을 연이어 채우고 비우기가 귀찮아졌는지, 상 가운데에 뒤집혀 쌓여있는 종이컵 하나에 힘주는 소리를 내며 손을 뻗었다. 어느새 연후의 얼굴 곳곳이 취기로 붉어져 있었다. 나는 소주병을 들고 그가 든 종이컵에 탈탈 털어 부었다. “그러니까, 어쩌다 돌아가신 거냐고 물었어. 그냥 예의상 물어보는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물론 대답해주지 않아도 상관은 없어. 내가 알아야 할 이유도 없고, 네가 말해줘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 불편했다면……. “
그는 가만히 소주를 홀짝이며 듣다가 내 말을 막아섰다.
“너는 어째 이십 년 지기한테도, 아직도 그렇게 예의 바르게 그러냐. 예의를 지키는 게 꼭 예의가 바른 건 아니야. 친구끼리, 어? 그냥 편하게 물어볼 수도 있잖아. '야, 그런데 하나 씨는 어쩌다 죽은 건데?' 뭐, 이렇게 말이야. 에이 불편한 새끼.”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전혀 슬프지 않은 듯, 평소대로 그 특유의 호쾌한 말투로 말했다. 괜찮을 리 없을 텐데 괜히 괜찮은 척하는 기색도 느껴지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는 종이컵의 바닥이 천장을 향하도록 들이켜고는 탁— 하고 빈 종이컵을 상에 올려놓자마자 맨손으로 수육 한 장을 집어 새우젓을 찍은 다음 입에 물고 수육의 끄트머리가 혀처럼 입 밖에 남은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더욱 궁금해하던 중에, 그가 새로 소주 한 병을 들고 자리에 털썩하고 앉았다. 그의 입은 아직 고무 같은 수육을 씹고 있었다. “있어봐.” 그는 웅얼거리며 소주병을 따고 종이컵에 부으며 말했다. 나는 대꾸하는 대신 육개장 국물을 한 술 떠먹었다.
“일단은 자살인데, 내가 보기에는 자살이 아니야. 생각을 해봐라. 그러니까 상황이 어떻게 된 거냐면, 퇴근한 다음에 하나가 사는 아파트에 갔단 말이야. 근무 중에 문자가 왔었거든. 저녁에 보자고. 그래서 갔는데 시팔 얘가, 옷장 속에 옷걸이 봉 있잖아? 거기에 목욕 로브 끈 같은 걸 묶고 반대쪽에는 제 목을 맨 채로 엎드려 있더라고. 무릎을 꿇고, 두 팔은 손가락 끝이 바닥에 닿을 듯이 축 늘어져 있었어. 목은 힘없이 공중에 매달려 있었고. 나는 얼른 119에 신고를 했고, 현장 사진을 찍고……. 시팔 진짜.”
그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는 듯 수육을 두어 점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쑤셔 넣었다. 실로 그는 지쳐 보였고, 무엇보다 허기져 보였다. 입을 우적거리면서 그는 두 팔로 뒤쪽 바닥을 짚고 허리와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의 깡마른 목에 숨은 식도로 한참을 씹던 음식이 넘어가는 볼록한 모양이 보였다. 그가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건네는 휴지를 받아 양쪽 눈을 훔쳤다.
“이 짓도 못해먹겠어. 여자친구가 죽었는데 제일 먼저 한 행동이 현장촬영이야.”
“잘못된 행동은 아니잖아. 자책할 필요 없어.”
“자책은 무슨. 아니야, 그런 거. 사람 죽는 꼴을 너무 자주 보니까. 그게 지긋지긋해서 네. 아니, 평소에는, 그러니까 출동해서 볼 때는 괜찮습니다. 수도 없이 봐왔지. 죽은 사람이나 죽어가는 사람들. 자살한 시신, 심하게 화상을 입은 시신, 아 그래서 내가 돼지 껍질을 안 먹게 된 거야. 그러니까 나한테 그런 거 먹으러 가자고 하지 마라. 아 그리고 또 교통사고로 곤죽이 된 시신, 특히 바이크 타는 사람들. 그거는 그냥 주워 담는 거야. 쓸어 담는 거지. 너도 인마 운전 살살해. 그런데, 한 십 년 넘게 이 일을 해보니까 역시 사람이란 건 적응의 동물이더라고. 그래서 다 괜찮은데, 그래도 이건 아니더라. 죽은 하나를 보고도 몸에 밴 습관대로 움직이는 내가 싫었던 거야. 아니, 이상하잖아? 이상한 거지. 감정이 어? 내가 무슨 기계도 아니고 말이야. 아무튼 그건 그렇고. 네. 하나 목에서 끈을 풀고 바닥에 눕혀놓고 얼굴을 바라봤지. 그냥 뭐, 평온하더라. 나 말고, 하나 얼굴이. 온몸이 하얗게 질리고 굳어서 딱히 처치할 것도 없었어. 평소 출동할 때 같았으면 가족들이 울고 불고 난리를 치니까 어떨 때에는 PCR 하는 시늉이라도 하는데, 어차피 뭐 나 혼자였고, 네. 죽은 지 한참이었으니까. “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시의 순간을 되뇌다 감정의 둑이 터진 것 같았다. 피로한 몸에 빠르게 들이부은 소주도 한몫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콧물과 섞인 눈물을 마저 흘리도록 기다리면서 남은 흰쌀밥과 육개장을 깨끗이 비웠다. 그게 조문객 된 예의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럼에도 다른 음식에는, 특히 수육에는 젓가락을 대지 않았다. 보는 것 만으로 역겨웠다. 그는 코를 풀고 붉게 상기되고 부어오른 얼굴을 휴지로 모두 닦아 낸 다음에야 말을 이었다. 입을 떼면서 그는 쓰고 허탈한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의식적으로 지어 보인 것이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 것으로 보였다.
“차라리 낫다. 울고 나니 차라리 나아. 적어도 내가 감정이 있는 인간이라는 건 확인이 되잖아. 그렇지?”
그는 내게 물으면서 튀어나오려던 딸꾹질을 참았지만 들썩이는 어깨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나는 시선과 양쪽 입술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 순간이 현실이었는지 꿈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감각은 분명했다.
“네가 인간 같지 않은 놈이면 왜 친구로 두겠어. 별소리를 다한다. 내가 말주변이 좋은 것도 아니고, 적어도 너한테는 솔직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겪어보지 않은 일을 두고 공감한다느니 그런 말은 못 하는 성격이다만, 누구나 정신적으로 크게 충격을 받으면 실감이 안 날 수 있을 거 같기는 해. 벌써 세월이 꽤 지났네. 예전에 눈앞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봤을 때, 그때 내가 고등학생이었던가. 아니, 중학생이었던가. 실감이 안 난다는 걸 그때만큼 사무치게 느껴본 적이 없어. 꼬박 이틀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의 피를 말리면서 띄엄띄엄 숨을 쉬셨지. 날숨으로부터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두려운 순간과 순간이 반복괜찮습니다. 2 분이 넘도록 멈추었다가 다시 숨을 쉬기도 하셨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에 할머니의 복부가 부풀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어. 들쭉날쭉하던 간격, 아무리 얕은 호흡이라도 나와 아버지는 감지할 수 있었어. 그날 밤이 고비라는 걸 직감했었으니까. 그런데 그 주기가 어느샌가 지나치게 길어진 거야.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아버지도 마음속으로는 시간을 셌을 거야. 몇 번이고 셌을 거야. 정말이지 한참을 할머니 손을 잡은 채 바라고 또 바랬어. 배가 조금만이라도 부풀어 오르기를, 다시 공기를 들이마시기를. 아버지가 할머니의 인중에 떨리는 검지를 뻗어 확인하고는 '아이고 어머니'하고 울부짖는 순간 결정괜찮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게 사실이 된 건. 그런데, 눈물이 안 나더라. 속으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 예전 건강하시던 모습을,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아이고 내 똥강아지'하시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억지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지금도 선해. 쭈글쭈글한 손등이라던가, 굳은살 박인 손바닥이라던가. 아무튼 나는 그랬다고.”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연후의 슬프게 취한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 그가 내 말을 잘 듣고 있는지 신경이 쓰여서는 아니었지만, 그와 눈을 마주치자 불가해한 죄책감이 들었다. 당장의 애도만으로도 마음 그릇이 비좁은 때에 내가 쓸데없이 귀퉁이 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 것만 같았다. 그는 말없이 엷은 미소를 짓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의도된. 하지만 체온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안도감과 함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참을 수 없었던, 내가 하고 싶었던 질문 때문에 죄책감만은 가시지 않았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일단 어느 정도 진정은 돼 보이니 물어나 보자. 내가 듣기에는 글쎄다, 슬픈 일이기는 하다만 자살로 보이는데. 네가 좀 전에 그랬지. 살해당한 걸 수도 있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렇지. 너라면 궁금할 법도 하지. 참지 않을 만도 해, 새끼. 사람 참 한결같다. 그런데, 그건 말을 못 하겠다. 여기까지 불러놓고서는 솔직하지도 못하고, 미안하다. 그래도 변명하자면 나름의 사정이 있다— 정도야.”
그의 눈에서 조금 전 내가 느꼈던 죄책감이 엿보였다. 그는 틈을 두고 짤막하게 말을 덧붙였다.
“나도, 그냥 자살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보다.”
그가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하고서 소주를 따라 마시는데, 입구에서 사람소리가 났다. 나는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일어섰고, 연후는 한숨인지 기합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느릿한 동작으로 일어섰다. 내 또래 여자가 내 어머니 또래 노부인의 팔을 잡고 부축하며 들어섰다. 잔머리 없이 단정한 머리와 깔끔한 눈썹, 먼지 하나 없어 보이는 단정한 검은 옷차림의 두 여성은 허리가 곧고 유달리 바른 자세로 걸었다. 젊고 숱 많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이는 고인의 언니, 새하얀 머리칼을 짧게 깎아 올린 이는 고인의 어머니가 분명해 보였다. 나는 그 둘의 모습에서 영정사진 속 하나 씨의 얼굴을 떠올리며 살아서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지를 그렸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짧은 순간에 긴 머리칼의 그녀에게서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연후군, 고생이 많아요.” 노부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연후는 대꾸하는 대신 구부정하게 고개를 숙여 둘을 맞이했다. “연후군, 우리 둘이서 따로 이야기를 좀 할 수 있을까요.” 상대의 호의를 바라는 질문은 분명 아니었다. 그것은 예의를 지키면서 진중하게 꺼낸, 거절을 용인하지 않는 주문에 가까웠다. 연후는 작은 목소리로 그러시죠— 하고 답하면서 식당에서 빈소로 향했다. 노부인은 내게 목례를 하고 연후의 뒤를 따라갔다.
상황이 불편해졌다. 연후는 비록 유족이 아니라고는 하나 고인의 연인이었다. 또한 고인의 가족, 최소한 그녀의 어머니와는 안면이 있는 듯했다. 그러니 장례 첫날도 비록 원통할지언정 어색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았다. 음식도 나름 깨끗하게 먹었겠다, 그만 일어나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양복주머니에서 채 꺼내지도 않은 조의금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선채로 고개를 숙여 입술을 비죽이며 손바닥을 조물 거리고 있는데, 그녀가 말했다. “앉아요.”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려 했는데, 이미 그녀는 연후가 있었던 자리에 앉고 있었다. 내 시선이 먼저 닿은 곳은 벽이었고, 그다음은 단정한 그녀의 정수리였다. 내가 그녀를 따라 자리에 앉을 때, 그녀는 곧은 자세로 앉아 주변을 훑고 있었다. 무심한 시선이 벽과 창문, 벽에 걸린 선풍기 따위를 지나 나와 그녀 사이에 놓인 음식, 빈 그릇, 술병과 잔 따위를 향했다. 이윽고 내가 자리에 앉아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심각한 척 아무 생각도 않고 있을 때, 그녀가 나를 살펴보고 있음을 눈치챘다. 조심성이랄 것도 없이, 거리낌 없는 그 시선이 내 눈에 닿았을 때 하마터면 나는 딴 데로 눈을 돌릴 뻔했다.
“이하연이에요. 하나 언니예요.”
“네, 조태홉니다. 반갑습니다.” 나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반갑다는 말을 후회했다.
“연후씨한테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말해주겠어요?”
“갑작스럽네요. 저 놈이 저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왜 물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연유를 알 수 없는 압박감에 나는 방어적으로 대답했다.
“그럴 만도 하죠. 초면에. 실례했습니다. 하지만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요. 그래서…….”
“연후도 저한테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나름의 사정이 있다고.”
말을 가로막으며 그녀의 얼굴을 바로 바라봤다. 언짢은 기색은 없었다.
“다행이네요. 질문을 좀 바꿔볼게요. 하나와 관련한 어떤 '물건'에 대해서 연후씨가 말하던가요?”
“목욕 로브 용 허리끈. 저놈이 말한 것 중에 물건이라면, 글쎄요. 그것밖에 없습니다. 뭐, 다른 게 있습니까? 아, 물론 대답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그렇잖습니까. 궁금하니까요.”
그녀는 한동안 내 말에 대꾸하지 않고 초점 없는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굳이 짚어보자면 그녀의 시선은 내 목젖에서 명치 사이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찰흙을 바르기 전 빳빳하게 꼬아둔 굵은 철사가 그녀의 뼈를 지탱하기라도 하는 듯 미동 없이 바른 그녀의 자세는 나의 움직임마저도 구속하고 있었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할수록 더욱 신경 쓰였다. 어차피 그녀의 대답을 기다릴 이유도 없거니와, 이 불편한 장소에 계속 머무를 까닭 또한 없었으므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무릎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고, 재킷의 아랫단을 잡아 매무새를 고치는 동안에도 그녀는 일어서지 않았고 그저 고개를 들어 내 가슴깨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내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몸을 틀어 밖으로 향할 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
“기다리셔야 해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얌전하게 배꼽아래로 모은 그녀의 두 손을 보았다. 그녀는 왼손의 검지와 중지로 오른손 엄지의 거스러미를 뜯고 있었다. 그녀의 두 허벅지 위로 떨어진 작은 가루가 움직이는 손가락 틈으로 보였다. 앉은 상태에서 내가 바라본 그녀는 부동의 조형물 같았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제 살을 뜯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제 손을 쳐다본다는 것을 의식하고서야 그녀는 왼손으로 오른손 엄지를 말아 쥐었다. 소름이 끼쳤다. 억누르지 않으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불가해한 즐거움이 심장에서 목을 타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나는 목소리의 크기와 어투에 주의하며 말했다. “사실 저는 하나 씨를 잘 모릅니다. 직접 만나본 적도 없습니다. 그저 연후가 이따금 하나 씨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을 뿐입니다. 기억력 탓일 수도 있고, 제가 귀담아듣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저는 하나 씨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습니다. 이렇다 할 인연이 없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 제가 이곳에 온 것도 연후가 부고 문자를 보내서…….”
“기다리셔야 해요.” 이번에는 그녀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 나는 그녀의 눈을 빤히 응시하면서 그 이유를 듣고자 했으나, 그녀는 침묵했다. 그녀와 나 사이의 물리적 공간이 팽창하는 듯한 기묘한 찰나가 지나고 —물론 내 기분일 뿐이었겠지만— 빈소 쪽에서 새된 소리가 났다. 나와 하연은 빈소로 귀를 향했다.
“연후 군, 안된다고 내가 말하잖아요! 왜 억지를 부려요!”
“정 그러시면 제가 챙겨가겠습니다. 경찰에 넘기지 않는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노부인은 모든 말 마디마다 힘을 주고 또박또박하게, 그렇지만 감정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법 없이 연후를 추궁하듯 물었다.
“명심하겠습니다. 타살이니 뭐니 하는 말은 두 번 다시 입밖에 내지 않겠습니다. 이 물건은 제가 책임지고 잘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와 하연은 종이가방을 들고 빈소에서 걸어 나오는 연후를 지켜보았다. 여러 번 말아 접은 종이봉투의 윗부분을 움켜쥔 그는 노부인을 만나기 전보다 더욱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출구 쪽으로 향해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뒤돌아 보지는 않았다.
“태호야, 가자.”
“그래, 그러려던 참이야.”
나는 하연에게 목례를 하고 연후의 뒤를 따라 걸었다. 내가 틈을 두지 않고 몸을 돌렸기에 그녀가 답례를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연후와 나는 말없이 신발을 신고 계단을 내려가 봉투가 늘어선 탁자와 현금인출기를 지나 건물 현관문을 나섰다. 연후는 휠체어용 경사로 너머에 위치한 흡연장으로 곧장 걸어갔다. 그는 과장된 동작으로 바짓주머니를 뒤지며 말했다.
“야, 담배 있냐.”
내가 건넨 담배를 입에 문 연후가 불 좀—하고 말하기도 전에 나는 라이터를 건넸다. 연후는 조명을 맞아 누르스름해진 연기를 입가로 뱉으며 담배를 꼬나문 채 손을 뻗어 담뱃갑과 라이터를 돌려줬고, 나도 곧장 한대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그가 입에 물었던 담배를 왼손으로 옮겨 쥐고서 말했다.
“너는 뭐가 급하다고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냐? 나 데리고 가달라고 불렀구먼. 거, 너무하네.”
“대리운전도 아니고 아주 수행비서 노릇을 시키려고 드네. 내가 버릇을 잘 못 들였지.”
“암, 그렇고 말고. 네 탓이다, 친구야. 네가 나를 망쳤어, 세상에.”
“내가 안 왔으면 어떻게 가려고 했어?”
“택시를 불렀겠지.”
“그랬겠지.”
시답잖은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나는 연후의 오른손에 들린 종이가방이 신경 쓰였다. 그리 무거운 물건이 들어있을 리가 없는 종이가방인데도 그는 상당한 힘을 들여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벽돌처럼 쌓인 돈다발을 떠올렸으나, 이내 그럴 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누구도 돈다발을 흉물이라 말할리는 없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그의 오른손에서 얼굴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네. 어디로 모실까, 소방공무원 나으리?”
“너네 집. 하루 재워줘라. 내일 오후 출근이야.”
“그래라.”
딱히 할 말을 떠올리지 못한 둘이 연신 담배를 피우는데, 연후가 재떨이에 담배를 비비며 내 뒤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동시에 “저도 한 대 주세요.”라는, 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한기를 느꼈는지 팔짱을 끼고 몸을 움츠리고 내 뒤에 서있었다. 두께 있어 보이는 검은 재킷이 구겨지며 그녀의 가느다란 팔이 도드라졌다. 막상 그녀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을 때 나와 연후는 담배를 다 피운 터라 분위기가 퍽 어색해졌다. 연후는 무언가 탐탁지 않은 모양으로 아스팔트에 신발 앞꿈치를 문지르고 있었고, 하연은 한 손을 다른 팔의 안쪽 팔꿈치에 걸치고 조용히 담배를 피웠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다가 금세 알아차렸다. 입담배만 피울 뿐, 연기를 폐로 들이키지 않는 게 분명했다. 겉멋이 든 십 대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그 모습에 나는 다소 의아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연후에게 어떤 할 말이 있어서 따라 나왔다가 어색함을 덮으려 입담배를 피울 수도 있겠거니 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녀에게 담배를 주려 마주 서기는 했는데, 그러고 나서 그녀로부터 등을 돌려 다시 연후를 보기에도 불편하고, 그렇다고 연후를 계속 등진채로 그녀와 마주 서 있기에도 편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므로, 나는 그녀와 연후 사이에 장애물처럼 애매하게 서있는 대신 뒷걸음을 하며 물러섰다. 그렇게 장례식장 건물 귀퉁이 흡연장에서, 딴청 부리는 남자, 입담배 피우는 여자, 그 둘이 못마땅한 내가 정삼각형의 꼭짓점처럼 한참을 조용히 서있었다. 주변에서 작은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 하세요?” 여자 꼭짓점이 말했다. 나는 침묵을 깬 그녀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녀는 질문을 던지고 새까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두 손을 바짓주머니에 꽂은 연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가 나를 보며 “너 말이야. 나 말고.”라고 들릴 듯 말 듯하게 신경질을 냈고, 그제야 나는 하연을 향해 대답했다.
“회사원입니다.”
“무슨 일을 하는 회사원이세요?”
그녀가 고개를 틀어 나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
“보안 관련된 업무를 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는데, 아래로 고개를 내렸다가 올리는 게 아니라 턱을 조금 들었다가 천천히 내리는 동작에서 갸름하고 하얀 턱선이 특히 눈에 띄었다. 음—하고 작게 대답을 한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았다. 그녀는 피우다 만 담배를 떨어뜨리듯 바닥에 버리고 검은 구두로 지그시 밟았다. 몇 걸음 앞에 재떨이가 있었지만 그녀의 됨됨이가 나쁜 게 아니라고, 연후에게 다가가기를 꺼리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내게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고, 연후에게는 끝내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다만 나를 향해 “잘 피웠습니다.”라고 짧은 인사를 끝으로 몸을 틀어 건물로 돌아갔다. 살펴가세요—라는 흔한 인사도 없었다. 내가 먼저 자동차로 걸음 했고, 연후가 잰걸음으로 뒤따랐다.
“저 집안사람들을 보면은 다 좀 뭐랄까, 싸해. 그냥, 뭐. 그렇다고.”
하나 씨도 그런 성격이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나는 말을 삼켰다. 내가 보기에 하연은 그저 침착하려 애쓰는 매력적인 사람이었기에 연후의 말에는 공감이 가질 않았다. 여동생의 장례식에서 타인에게 온정을 드러낼 수 있을 사람은 분명 드물 것이다. 게다가 고인이 오랜 시간 병마와 싸워 가족들이 마음의 준비를 해온 경우와는 달랐다. 갑작스러운 자살이기에, 유족이 슬픔을 실감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연후의 말은 때와 장소에 적절하지 않았다. 슬픔과 애도의 때에는 평소와 사뭇 다른 성격이 튀어나오기 마련이고, 그래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아마도 평소에 그녀는 담배를 길바닥에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상상에 이르고서야 내가 그녀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을 이어가고 있음을, 일련의 변호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기지개를 켜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내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연후는 소파에 몸을 던졌고,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샤워를 하고 양치를 했다. 하루에 샤워를 두 번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장례식장에 다녀와서인지 다시금 몸을, 어쩌면 영혼까지 깨끗하게 씻고 싶었던 것 같다. 욕실의 젖은 바닥을 디딘 채 몸을 닦고 옷을 걸쳐야 하는 것이 번거로웠지만 개운한 기분으로 잠들 수 있겠다는 기대가 더 컸다. 이미 코를 골며 소파에서 잠들어 있는 오랜 친구의 위쪽 벽에 걸린 시계가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5분 빠르게 맞춰둔 시계이므로, 나는 자정 전에 누울 수 있음에 소소한 행복감을 느꼈다. 방으로 들어가 장에서 여분의 이불을 챙겨 나와 연후를 덮어준 후에야 나는 침대에 누웠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마디마다 기지개를 켠 다음 이불 밖으로 두 팔을 꺼내고 손을 포갠 채 깊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내 일곱 살 난 딸이 두려움과 긴장으로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파란색 페인트가 벗겨져 검붉게 녹이 슨 철제 난간 너머로 몸의 절반을 넘긴 채로 딸의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건장하고, 내 딸은 결코 무겁지 않았다. 어쩌다가 딸이 난간 밖으로 떨어질 상황에 처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녀의 가는 손목을 쥐어 잡고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추락을 멈출 수 있었음을 누군가에게 감사했다. 오롯이 나의 힘으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 순간 나는 환희와 희열을 동시에 느끼며 눈물과 콧물을 흘렸다. 딸도 나를 믿기에 양쪽 눈가로 흐르는 눈물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빠 고마워-하는 안도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 또한 안도했다. 괜찮아, 아빠가 잡았어. 괜찮습니다. 내 머릿속은 그녀를 들어 올려 땅에 무릎을 꿇은 채 끌어안고 발그레한 볼에 입맞춤을 해줄 생각으로 가득 찼다. 나는 더욱 손에 힘을 주었고, 난간을 발로 밀며 온몸을 뒤로 젖혔다. 그때 딸의 손목을 놓쳤고 내가 네 발로 기듯이 몸을 던져 난간 너머 콘크리트 바닥을 보았을 때, 잠에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