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얼굴에서 상대방이 호감을 가지게 되는 포인트는 눈매 다음으로 피부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좋은 피부는 피부결에 달려있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생기 잃은 피부보다는 부드럽고 촉촉한 피부결을 원한다.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더 광채 있는 피부를 위해, 까만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더 탄력 있는 피부를 위해 힘쓴다. 나는 피부톤에 살짝 노란 끼가 있고 양쪽 볼과 코, 이마까지 홍조가 퍼져있다. 피부는 점점 얇아지고 얼굴의 모세혈관은 점점 확장되고 붉어지는 중이다.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을 거울로 보면 마치 조금 화가 난 듯하거나 술에 취한 것 같다. 마냥 자신 있게 생긴 얼굴은 아니었으나 그나마 어릴 땐 눈웃음으로 한 귀여움, 했었는데 이제는 웃으면 생기는 주름들 때문에 자신 있게 웃지도 못한다.
여성 호르몬의 감소로 인해 안면 홍조는 점점 더 심해졌다. 이제 피부과에 가면 ‘홍조’의 단계를 지나버린 ‘주사’라는 만성 염증성 피부질환에 속했고, 매일 한 알씩 먹어야 하는 흰색 알약을 처방해줬다. 그런데 ‘주사’라는 이름 자체가 맘에 들지 않는다. 주사는 영어로 Rosacea로 표현되는데, 장미색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 엷은 붉은빛을 뜻하는 로사세아라는 말은 예뻐 보였다. 하지만 우리말로는 너무나 직설적이라 솔직히 화가 난다. 주사의 동의어로는 빨간 코. 왠지 술을 자주 먹어 고주망태가 된 사람에게 불리는 말 같지 않은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쯤 되면 과거를 후회한다. 나는 여전히 얼굴이나 몸에 로션을 바르는 걸 귀찮아하는데, 어릴 때에는 로션을 발라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기 로션의 대명사로 불렸던 존슨즈 베이비 로션의 '핑크 로션'마저도 나는 거부했었다. 그때는 뭘 바르지 않아도 괜찮았던 피부결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로션도 결국 화학성분이기 때문에 순해봤자 인간에게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친구들의 사물함 안에 늘 있던 핑크로션은 내가 핑크색 병풍처럼 홀대했던 것 중 하나다. 이제 와서 피부 장벽을 탄탄하게 해 보고자 고수분의 로션을 발라봐야 소용없다. 피부톤에 맞는 메이크업 베이스에 파운데이션까지 발라도 늘 코와 볼에 올라오는 붉은 기는 가릴 수가 없어 더 두꺼운 화장을 해야 했다.
그나마 몇 년 동안은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끼고 다녀야 해서 편하긴 했다. 얼굴의 반은 가려지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다. 마스크는 순간을 지나가게는 해주지만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는다. 아니, 마스크로 내 얼굴은 더 악화되었다. 피부 온도가 올라가서 홍조가 더 심해진 것이다. 병원에서 레이저 시술을 받아도 그뿐. 조금만 돈을 덜 써도 얼굴에 티가 났다.
“이게 뭐야! 이럴 거면 차라리 사람들한테 술 마셔서 빨갛다고 하는 편이 낫겠어!”
쓰는 돈에 비해 금방 다시 홍조가 차올라서 나는 자주 씩씩거렸다. 예민한 피부 때문에 자극적인 레이저 같은 것들은 꿈에도 못 꿨다. 의사 선생님은 히스타민이나 타이라민이 포함된 발효성 식품, 맵거나 뜨거운 음식, 술에 들어간 알코올은 내 얼굴을 더 붉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이라며 자제하라고 했고, 사우나나 찜질방 같은 곳도 피하라고 했다. 피부에 자극이 될만한 것들은 모두 피해야 그나마 유지된다고 했다. 다이어트보다 힘든 것이 내 얼굴에 색을 빼는 것이다.
그날 백화점 식당가에 들어가 부타동(돼지고기 덮밥)을 시켰다. 매콤한 것이 당겼지만 얼굴을 생각해서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함께 들어있는 채 썬 파와 고추냉이로는 내 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역시나 낙지덮밥이었던 건가?' 속으로 속상한 마음을 달래 보지만 음식과 상관없이 얼굴이 자꾸 붉어졌다.
터덜터덜 계산하며 나오는데 유리창에 비치는 내 모습이 너무 처량하다. 마침 반대편에는 와인샵이 보이고, 이제 나는 유혹하는 로제 와인을 당해낼 수가 없다. 술을 마셔 빨개지거나 설움에 북받쳐서 빨개지거나 매 한 가지인 상황인 것이다. 그나마 술은 얼굴이 빨개져도 용인되는 상황 아니겠는가?
'오늘은 살짝, 핑크빛 얼굴만큼만 마셔볼까?' 이제 나는 핑크색 병을 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예뻐지고 싶다.
얼굴이 발그스레해도 이해해 주세요. 원래 부끄럼이 많은 사람인 걸요. 아니면 같이 한 잔 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