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정완 Oct 23. 2023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우리 주위에 여전히 존재하는 국가적 폭력의 모습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acrylic on canvas,  89.4 X 130cm, 2019

2014년에 일어났던 홍콩의 민주화 운동, 우산 혁명 이후 5년이 지난 2019년, 범죄인 인도법안의 완전 철회를 요구하며 홍콩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가 일어났다. 홍콩 인구 739만 명 중 7분의 1에 해당하는 103만 명이 참여한 이 시위는 2020년까지 소규모 시위들로 이어지면서 21세기에 벌어진 반정부 시위 중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시위로 기록되었다. 2014년보다 더 익숙해진 SNS의 활용 덕분에 홍콩 시위의 소식은 더 빠르고 넓게 세계 곳곳에 알려졌다. 나 역시 당시에 그 상황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고, 마음속 깊이 응원했다.

               

그러나 이 시위는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시위 세력의 분열, 경찰의 폭력을 앞세운 강경 진압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시위의 동력은 점점 희미해졌고,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이 통과되고 2021년 10월 마지막 남은 홍콩의 민주화 세력이라고 볼 수 있던 직공회 연맹마저 해산을 발표하며 사실상 홍콩의 민주화 물결은 메말라버렸다.               


홍콩은 미술인들에게는 각별한 도시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아트페어인 아트 바젤이 열리는 도시이고,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인 도시이기 때문이다. 아트페어 참가 및 전시 관람 등으로 몇 번 방문해 본 홍콩은 아트 바젤 기간에 중ㆍ소규모의 아트페어들이 곳곳에서 열리고 수많은 갤러리에서 세계의 여러 작가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예술적 경험으로 가득 찬 굉장히 세련되고 거대한 도시로 기억된다. 그런 좋은 기억으로 남은 도시에서 벌어진 폭력적인 진압 모습들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성숙한 민주주의 체제를 이룬 대한민국 역시 과거에 홍콩과 비슷한 모습의 시위들과 그에 대한 탄압들이 존재했다. 그런 탄압 속에도 많은 사람이 자유와 권리에 대한 갈망을 놓지 않음으로써 현재의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거를 알고 있기에 홍콩의 시위를 진심으로 응원했고 좋은 결과를 맞이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상대는 너무 거대했다. 강경 진압으로 시위대를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모습은 우리가 일궈온 자유 민주주의 체제 역시 그에 반하는 강력한 권력이 들어선다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자동차 사이드미러를 통해 보이는 폭력적 이미지와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는 문구를 통해 여전히 우리 곁에는 권력에 의한 폭력이 항상 남아 있고 이것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표현하였다.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가다 보면 가끔 사회가 가진 폭력적인 모습을 잊고 살 때가 있다. 현대에 들어서며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지만 여러 국가의 내전과 2022년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2023년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전쟁 등 여전히 국가 단위의 전면전도 벌어진다. 그리고 세계 주요국들이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독재와 왕권의 권력에 의한 탄압으로 인간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계의 대다수를 이룬다. 우리가 이뤄낸 자유와 평화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아직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력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경계하는 태도를 지녀야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국가적 폭력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고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