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쫓다

이상을 쫓다 허무에 이르다.

by 채정완
뒤쫓다_acrylic on canvas_50.0X65.1_2025.jpg 뒤쫓다 Pursuit, acrylic on canvas, 50.0X65.1cm, 2025

현대 사회는 사랑을 하나의 이상적 서사로 규정한다. 단순한 감정의 흐름이나 인간적 관계의 다양성을 넘어, 사랑은 특정한 형태와 과정을 갖추어야 성공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회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가진 사람끼리 만나 연애를 시작하고, 최종 단계로 결혼에 이르는, 이 서사는 미디어, 광고, 문화 전반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개인에게 사랑을 통한 자기완성과 사회적 인정이라는 과업을 부여한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사랑은 본래의 감정적 자유로움이나 인간적 연결을 넘어, 사회적 기준에 부합해야 하는 일종의 과제가 된다. 연애를 시작하는 시기, 상대방의 조건, 관계의 발전 속도, 심지어 관계 유지의 방식까지도 외부의 기대와 비교 대상이 된다. 그 결과, 사랑을 둘러싼 경험은 점차 개인적 의미를 잃고, 사회적 평가 체계 안에서 존재하게 된다.


이와 같은 구조 속에서 많은 이들은 사랑에 좌절을 경험한다. 이는 감정 그 자체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적 이상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좌절이다. 사랑을 경험하는 과정이 아니라, 사랑을 성취해야 할 목표로 인식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사랑을 통해 개인이 자신을 증명하고자 할 때, 그 실패는 단순한 이별 이상의 깊은 자기 부정과 소외로 이어진다. 오늘날 연애와 결혼을 둘러싼 불안, 회피, 심리적 압박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뒤쫓다' 작품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사회가 제시하는 사랑의 이상을 따라가는 개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빨간 선은 사랑이라는 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이상을 상징한다. 인물은 이 선을 좇아 나가지만, 선은 어느 순간 검은 절벽 앞에서 끊기고 만다. 인물은 그 끝에서 멈춰 서서 절벽 아래를 바라본다. 이는 사랑을 추구하는 과정이 끝없이 이어질 것처럼 보이다가, 예기치 않은 단절과 허무에 직면하는 현실을 나타낸다. 검은 절벽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그리고 그로 인한 심리적 낙차를 상징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사회적 성취 도구로 삼는 인식을 해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랑은 특정 기준이나 형태를 따라야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맥락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관계의 성공을 외부 기준으로 평가하기보다는, 개인 간의 존중, 이해, 자유를 중심에 놓는 사고 전환이 요구된다. 나아가 사랑이라는 경험을 통해 자기 존재를 입증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감정 그 자체를 경험하고, 다양한 관계의 형태를 인정하는 사회적 문화가 구축되어야 한다.


'뒤쫓다'는 현대 사회가 규정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 회복을 위한 새로운 시선을 제안하는 시도이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다시금 질문해 봐야 할 것이다. 사랑이란 특정한 가치를 지닌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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