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 Nov 02. 2018

적당한 레시피 찾는 능력을 겸비한, 부엌의 한 여자

부엌에 머물면서 자주 하게 되는 일 가운데 하나는 인터넷 검색이다. 도대체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음식을 만들어 먹었을까 싶게 자주 핸드폰을 찾게 된다. 옛날이랄 것도 없다. 불과 15년에서 20년 전만 해도 북엇국을 맛깔나게 끓이기 위해서 혹은 어느 떡볶이집의 떡볶이 맛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서 굳이 검색을 하며 조리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장일단이 있다. 아주 쉽고 간단한 요리도 자꾸 확인하게 되는 불필요한 습관이 생겼고, 한편 아주 어려운 요리도 겁 내지 않고 일단 부딪혀 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열렸다. 그런데 일장일단이라는 가벼운 말로 정리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몸이 더 이상 흘러가는 곧 과거가 되어 버릴 음식을 기억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제라도 접근 가능한 정보가 도처에 널려 있으니까. 

현재 상태, 그러니까 부엌에서 자꾸 검색을 하는 내 상태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가 진단에도 불구하고 치료는 아직 시작하지 않은 단계라 나는 여전히 꽤 많이 검색을 하며 지낸다. 


엊그제는 팜파티에 내놓을 구운파프리카샐러드를 만들면서 토치로 겉을 까맣게 태운 파프리카를 포일로 싼 뒤 냉장고에 넣어 두면 그 까만 껍질을 벗기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검색을 통해 알았으며, 냉장고에서 한 달간 묵혀 있던 막걸리는 버리지 않고 세 배 정도 물을 희석해 텃밭에 뿌려 주면 좋은 비료가 된다는 것도 검색을 통해 알았다. 물론 한계는 있다. 송명섭 막걸리 장인은 자신이 빚은 막걸리의 경우 유통기한을 넘어 두 달여 지난 막걸리에서는 묘하게 어우러지고 잘 익은 맛이 난다면서 막걸리의 유통기한이 10일뿐인 것을 아쉬워했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내 냉장고 안의 장수막걸리도 혹시 그러한가 하고 의문을 품게 된다.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함부로 벌컥벌컥 마시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검색은 실로 복잡하고 알고 보면 엄청난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번뇌의 늪일 때가 많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엌에서 끊임없이 검색을 한다. 


그런데 이때 요구되는 능력이 하나 있다. 적당한 레시피를 찾을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 내 친구 중 하나는 검색 몇 번에 나에게 딱 적합한 레시피를 찾는 능력이야말로 이 시대 부엌 주인장들이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이라 했다. 무슨 덕목이 그렇게 시시할까 싶지만 주방에서 어쩌다 한 번씩은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이라면 조금이나마 공감할지 모르겠다.

딱 보면 내 입맛에 맞을, 혹은 주변 인물들 몇몇에게 엄지 척 들게 할 그런 레시피를 찾으려면 기본적인 감각이 있어야 한다. 인터넷만 열면 세상 모든 요리들이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 가운데 지금 현재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낼 만한 조합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타인이 올려놓은 정보 값을 통해 요리가 진행되는 것 같지만, 실은 내가 지나 온 과거의 기억들과 삶의 스타일 취향 등이 어우러진 순간의 선택인 것이다. 그 선택이 옳은가 그른가는 온전히 내가 쌓아 온 음식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에 기반한다. 



영화 <파리로 가는 길>에서 허황기 있고 심하게 낭만적이고 본능에 충실한 파리지앵 영화제작자 자크는 미국 도시 출신의 심심한 여자 앤을 이끌고 파리로 향한다. 칸에서 파리로 향하는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생 빅투아르 산과 미슐랭 레스토랑과 끝없이 펼쳐진 라벤터 밭과 베즐레이 성당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의 오감을 지배한다. 나는 그랬다. 나는 내가 꽤 일반적인 관객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어쨌거나 영화를 보는 내내 그랬다. 멋지구나. 와. 가 보고 싶다. 먹고 싶다. 저건 어떤 맛일까......
자크가 앤을 이끌고 강가에 낡아 빠진 클래식카를 버려둔 채 풀숲으로 가서 5성급 피크닉을 세팅하고는(조금 전 화려한 호텔에서 식사 도중 몰래 챙겨 온 치즈, 와인, 빵 등으로) 물냉이를 건너며 말한다. 
"조금만 지나면 매워지는데, 지금이 딱 좋은 때죠."
그러자 앤이 시크하게 받아친다. 
"다 안 먹어 봐도 내 취향 정도는 알아요."
프랑스의 유명한 식당이라면 줄줄이 꿰고 와인 샴페인 치즈에 대해서라면 사전을 읊듯 박식하고 맛에 대해서라면 자신의 혀가 아닌 타인의 혀까지 금방 유혹할 만큼 시 같은 메시지들을 줄줄 쏟아 내는 한 남자와 목적지를 향해 어디 한 곳 들르는 것도 불편하고 달팽이 요리는 비위가 상해 뱉어 내고 관심 가는 남자의 주변 여자들이라면 별 이유 없이 경계하게 되는 근엄한 여자의 줄다리기가 팽팽한 것은 어디까지나 팽팽한 취향에 대한 철학 때문이었다. 자크는 자신의 취향을 앤에게 전염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남자고, 앤은 누구도 자신의 성지에 들어와 함부로 취향을 벌려 놓을 수 없다고 믿는 여자다. 둘 가운데 누가 승리할지, 아니 어쩌면 정말로 하룻밤의 섹시한 사랑이 승리하고 말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건 그냥 내일의 일. 


그러니까 취향,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꼭 알맞은 취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섹시한 일이다. 다시 돌아가자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럴싸한 레시피를 찾아 어느 지점에서 오케이 하는 것도 참으로 섹시한 일이다. 그 섹시한 결말은 온전히 경험에서 비롯한다. 많이 먹어 보고 많이 만들어 보고 아주 많이 식탁에 대한 고민을 해 본 사람만이 그 섹시한 결말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랑의 문제는 조금 달라서, 많이 해 본다고 많이 경험한다고 그것이 체화되거나 각인되어 사랑을 더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체화되거나 각인되면 오히려 그것은 불행의 싹이 되고 만다. 음식처럼 많이 경험한다고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다. 수없이 만나고 수없이 사랑해도 사랑의 맛은 그때그때 다 다르기만 하다. 누군가의 레시피를 따라 할 수도 없다. 사랑에 있어서만은 아무리 적당한 레시피 찾는 능력을 가진 자라도 현실에서 적용 불가다. 


그것이 늘 문제다. 적당한 레시피를 찾는 것도 능력이라 앞에서 내내 말해 왔지만, 문제는 인간 삶에 늘 검색보다 우월한 무엇인가가 끼어든다는 것. 그 우월한 것이라는 게 참 하찮을 때가 많은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 그것이 참 문제다. 



검색을 하면 방울토마토 껍질을 벗길 때는 과육에 칼집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얇게 십자를 내서 한 차례 데치라고 되어 있지만 방울토마토는 그냥 벗겨도 된다고 한 요리사 정영의 한 마디가 더 유용했던 것, 감자는 껍질 째 삶을 때 소금을 넣으라고 많은 이들이 소개하지만, 그래 봐야 소용없다는 <엘리엇의 특별한 요리책> 속에 있는 한 줄 정보가 내 인생에 더 유용했던 것. 그러니까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검색보다 더 쓸만했던 많은 경우를 보건대, 나는 적당한 레시피 찾는 능력을 겸비했으나 그것을 온전히 신뢰하지는 않는 사람이다. 


늘 검색을 하지만 어쩌면 곁에서 다정하게 칼을 갈아 주고 
손으로 토마토를 주무르며 장난을 쳐 주고 
밥 속에 고추냉이를 넣어 눈물 찔끔 나게 해 줄 누군가의 속삭임을 기대하며 
음식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엌에서는 주로 혼자다. 
당신이 그러하듯이.


이전 19화 귤 속껍질을 벗기는 비일상적인 행동에 대한 자의적 해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