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을 여행하는 시크한 여자의 살림에 대한 단상
바닥이 넓은 냄비가 굳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있는가.
한 끼 먹을 도토리묵을 만드는 데는 도토리 가루 한 컵이면 족하다.
종이컵으로 딱 하나면, 우리 식구 한 끼 먹을 넉넉한 양이 나온다.
하루 넘게 불려 놓은 도토리가루에 물 6배를 넣어(온갖 블로그들을 검색한 결과 평균값)
휘 젓는다.
가루가 잘 불어서인지,
몇 번 젖자마자 응고된다.
사실 레시피에는 하루 이상 불리라는 말은 없었다.
그리고 30분은 열심히 저어야 묵 꼴을 갖추어 갈 거라 했다.
그러나 나는 말 잘 안 듣는 버릇, 게으르고 산만한 버릇이 불쑥 튀어나와
레시피에 있던 불리는 시간 30분은 예저녁에 넘어 하루 이상을 불렸고,
적당한 크기의 냄비가 아닌, 도토리북 10인분은 만들 수 있을만한 큰 냄비를 올렸다.
너무 쉽게 묵이 만들어지는 것 같으니, 불안해진다.
뭐, 이래. 너무 쉽잖아.
살면서 그런 적이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너무 쉬우면 아니었던.
그것은 진짜가 아니었던.
그래서 물을 더 부었다. 두 차례 조금씩 더 붓고 나니, 전에 30분 정도 도토리가루를 불려
묵을 쑬 때와 같은 그런 느낌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제 안심.
나는 금방 될 도토리묵은 포기하고, 더 노동하여 얻을 수 있는 묵 쪽을 택한다.
냄비가 너무 컸지만, 젓다 보니 그런 생각도 든다.
둘레가 넓어야 불 닿는 곳에서부터 균일하게 온도 전달이 될 거야.
한 끼 먹을 묵을 쑤기에는 너무 넓은 냄비에 너무 오랜 시간 불렸지만,
완성된 묵은 정말 아름다웠다. 옆집 아랫집 어디에도 한 입 나눌 수 없게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말았으니
내가 살면서 만들어 본 몇 가지 안 되는 음식 가운데 최고였다.
돌이켜보니 틀린 건 없었다.
그 순간의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했다면
틀리지 않은 거다.
적어도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할 때는 적당히 통용되는 진리.
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더 많겠지.
예를 들어 오차를 잘 허용하지 않는 베이킹이랄지,
규칙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운동경기랄지, 딱딱 들어맞아야 하는 기계 조립이랄지 하는 것 등 말이다.
엄마에게 음식하는 법을 배우면 가장 어려운 것이 '적당히'라는 말을 맞닥뜨렸을 때라지만,
그만큼 안전하고 따뜻한 말이 또 있을까.
실수를 허용한다는 말, 사랑이 담겨 있다면 봐 주겠다는 말,
정성을 다했다면 다 맛있는 거라는 귀여운 거짓말.
그런 것들이 통용되는 어설픈 이 부엌이 좋다.
우리 집은 4인 가족이지만,
바닥이 넓은 냄비가 굳이 필요한 이유는
불에 닿는 면적이 넓을수록,
예기치 못한 이야기들이 뜨겁게 피어오를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 아닐까.
그런 기대 때문이 아닐까.
이 부엌에서는 이따금 그렇게 이야기가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