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을 여행하는 시크한 여자의 살림에 대한 단상
그릇을 헹구어서 건조대로 옮기는데, 까뭇까뭇한 것이 눈에 띈다.
스테인리스로 된 설거지 건조대는 선들이 얼기설기 엮여 있는 형태라 선과 선이 만나는 지점에 물이 고이기 쉽다. 건조대 아래 물받이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라 잘 쓰지 않는 쟁반을 받쳐 두었는데, 쟁반의 물은 잘 비우고 닦는다 해도 이상하게 그 스테인리스 건조대를 닦는 일에는 게으르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역시 건조대를 대강 헹구고 그 아래 물받이를 박박 닦은 다음 마른 수건으로 닦아두고 그 위에 건조대를 다시 올리는데, 물때들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실은 며칠 동안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특히 입에 닿는 컵을 건조대에 엎어둘 때는 아.. 닦을까 말까 얼마나 갈등이 되던지.
오늘에서야 올리던 그릇을 다시 내리고 건조대를 들어 박박 닦았다. 스테인리스 두 가닥이 만나는 그 교차지점의 물때가 잘 닦이지 않는다. 몇 번이고 앞뒤로 뒤집어가며 꼼꼼하게 닦아야 이내 본래의 색을 되찾아 반짝거린다.
오래 두면 그렇게 때가 고인다. 닦아야 할 때를 놓치면 그렇게 오래 걸린다.
그래도 아직은 반짝반짝해질 수 있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우리는 시기를 놓쳤을까, 아니면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그 일은 다 끝나 버린 걸까, 아니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마음만 먹으면 다시 빛나는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환상적인 일인가.
오늘 아침 이 부엌에서 벌어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