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을 여행하는 시크한 여자의 살림에 대한 단상
가만히 보면 그래요.
내 부엌에는 요즘 유행하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떠올리는 소품 하나도 없고, 친환경적이라는 쿡탑이 설치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바다를 건너온 색색의 향신료나 양념도 별로 없어요. 카메라를 들이대면 잡지의 한 컷처럼 보일만 한 마땅한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우리 엄마들이 썼던 평범한 가스렌지, 누가 언제부터 쓰다가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모를 부엌칼, 잘 관리하려고 애써도 조금만 정신팔고 있으면 어느새 생기는 곰팡이, 어느 슈퍼마켓에나 있는 분홍 고무장갑, 새하얀 민자 행주, 무늬 없는 수저들, 오래된 그릇들. 이런 것들이 내 부엌을 채우고 있어요.
예쁜 부엌이 아닌데,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자꾸 부엌이, 부엌의 살림살이들이, 부엌에서 움직이는 사뿐 내 발짓이 자꾸 말을 거는 거예요. 이런 것도 예쁘지 않냐고요.
나 예쁘지 않냐고 자꾸 채근하는데, 버틸 장사가 어디 있겠어요.
정말로 예쁜가 하고 들여다보게 되고, 그렇게 보고 보고 또 보는 거지요.
웃기지만, 그렇게 보다 보면 예뻐져요. 세상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게 예뻐지는 거예요.
이건 다 그렇게 예뻐진 내 부엌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요즘은 모든 것들이 너무나 눈부셔요. 반짝반짝 빛이 나요.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도 들어요.
평범하고 소박하고 정말로 나에게 있을 법한
그런 아름다움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있을 법한 아름다움, 눈 크게 뜨고 보면 내 옆에 있는 아름다움, 그런 아름다움들이 넘쳐나는 부엌에 대해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화려한 조명 아래 모델하우스의 키친이나 다이닝룸이 아닌, 그 옛날부터 엄마들이 우리를 먹여 살리고 남편과 아내가 술잔을 한 잔 기울이고, 안 좋은 일에 그릇이 깨지기도 하고, 한 끼 먹었을 뿐인데 김치 청국장 냄새가 가실 줄을 몰라 추운 겨울에도 한참이나 창을 열어 두었던 그 부엌에 대해서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내 부엌에 있는 작은 창을 열면 맞은편에서 자기 부엌 창을 열고 “아, 나도 그래.”라고 맞장구 쳐 주는 그런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기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