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을 먹는 법'에 대해 써야 한다면

부엌을 여행하는 시크한 여자의 살림에 대한 단상

by 정원

얼마 전 <우아하게 랍스터를 먹는 법>이라는 책을 보았다.

제목에 등장하는 랍스터를 쉽게 먹는 방법이나 일반적으로 생소하게 느낄 수 있는 아스파라거스를 먹는 방법, 와인 잔을 올바르게 잡는 법 등 예상할 수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인데, 때로는 어떤 음식을 조리하거나 먹을 때 필요한 도구도 등장하며 또 때로는 평생 필요하지 않을 것만 같은(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곤충 먹는 법이나 파티에서 다이어트하는 법 등도 설명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매력은 내게 절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부분에 있었다. 필요한 것은 찾으면 되고, 찾아서 충족되는 것들은 만족감 포만감과 더불어 새로운 욕망을 낳으며 끝을 맺는다. 지극히 공식적이다. 그런데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끝을 모른다. 실행할 리가 없기 때문에 완벽한 미지이고, 그러한 영역은 먹는 것 행하는 것 배 불리는 것이 아닌, 단지 이야기가 된다.

글쓰기 공부를 하다가 배운 것들 가운데 영 잊히지 않는 말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낯설게 하기'다. 세상에 그저 그래 보이는 것들을 특별한 빛깔의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기도 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함몰되지 않고 캐릭터를 구축해 나갈 수 있게도 하는 글쓰기의 기술이랄까.

낯선 것들은 낯섦 자체로 동경의 피사체가 된다. 항상 그렇다고 말하면 공격받을 여지가 있기에 종종 그렇다고 기술하고자 하지만, 사실은 늘 그런 것 같다고 쓰고 싶다.


이 책에 아쉽게도 당근은 등장하지 않는다. 지은이에게 당근은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을까.

만약 '당근을 먹는 법'이라는 짤막한 글을 쓴다면 나는 무엇을 쓰게 될까.

아, 갑작스레 당근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오늘 아침을 차리다가 무심코 당근을 내려다보는데, 텃밭에서의 지난 계절이 떠오르면서 내게 얼마나 당근이 특별해졌는지 감사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만약 텃밭 농사를 짓기 전, 그러니까 약 5년 전이었다면, 나는 당근에 대해 정말로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잘 모른다고 낯설다고 설을 풀기에도 당근은 너무 평범한 채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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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몰려오기 직전 수확해 신문지에 잘 싸서 보관하고 있는 당근을 하나 꺼낸다. 수확한 지 3개월도 훌쩍 넘은 상태다.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도 싱싱할까. 이런 걸 보면 마트(동네 슈퍼마켓과는 다른 그곳)에 가서 무심코 집어와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기를 두어 번, 일주일 정도면 물러져서 버리곤 하던 그 당근들은 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떠돌다 온 녀석들인지 정말로 진심으로 궁금해지게 된다.

카레나 볶음밥을 하려고 꺼낸 당근이 아니었다, 오늘은.


당신이 먹었다는 그것. 당신 말을 거의 그대로 가져오자면, 아주 얇게 채 썰어 그냥 소금이나 좀 뿌렸을까 심심한 맛이 자꾸 당기는 그런 당근 볶음이었다. 당신의 엄마가 어릴 적 만들어 주시고는 했다는 그 소박한 반찬을 나는 본 적이 없으니 겨우 당근 세 개 앞에서 복잡한 요리 레시피를 두고 서 있는 망연한 기분이 잠시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먼저 당근을 채 썰었다. 당근 두 개쯤을 썰고 나면 팔도 손목도 다 아프다. 그러면서 늘 하는 생각을 반복해 한다. 내 기억으로는 적어도 2년이 넘었다. '채칼 하나 꼭 사야지.' 나처럼 요리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아니 어쨌쨌든 부엌에서 이것저것 만들기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머스트 헤브 아이템' 아닌가 하며 늘 하듯 혼자 중얼거린다. 그러다가 다 썰고 나면 '이깟 것' 하며 당근 썰기는 제발 이따금...... 하며 어처구니없는 결론을 맺는다. 그러고는 다음에 오는 당근 썰기 시간이 시작되면 또 똑같이 '아, 채칼...' 하는 것이다. 부지런하고 계획성 있는 누군가가 듣는다면 어처구니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내가 사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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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텃밭에서 키운 당근을 1월 중순 냉장고에서 꺼낸다.

- 당근을 깨끗이 씻는다. (씻다 보면 흙인지 의심스러운 빛깔들이 수채화처럼 군데군데 남아 있는데, 눈 질끈 감고 그냥 넘어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근 씻는 일이 너무 버거워진다.)

- 채칼이 아닌 투박한 부엌칼로 낑낑거리며 채를 썬다. (반절쯤 썰었을 때와 다 썰었을 때의 생각이 당연히 다르다. 인생의 무게감이 그토록 들쭉날쭉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이 세계를 멀쩡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만의 비법이다.)

- 곱게 썰어진 당근을 보며 잠시 웃는다. 생각에 잠긴다. 눈을 감아 보기도 한다. 속살을 드러낸 채소의 색다른 향기를 맡아본다.

- 프라이팬을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서 기름에 코팅한다.

- 잘 달구어진 팬에 좋은 기름을 두르고 채 썬 당근을 볶는다.

- 먹을 때 만족할 만한 매력적인 소금을 아주 조금 뿌린다.

- 마음에 드는 접시에 담아낸다.

- 그러고는 당신이 한 젓가락 뜨기를 기다린다.


이 의식 같은 일의 레시피는 이 뒤로도 얼마든지 더 쓸 수 있다. 내 삶의 스타일대로, 내가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대로, 내 밤의 세계가 이끄는 의식의 흐름대로.

그러나 그만둔다. 여기까지면 되었다. 내가 당근이라는 채소를 조리하여 당신 기억대로, 그러니까 내게는 전혀 없는 당신 기억대로 조리하여 당신 앞에 내밀기까지, 거기까지가 이 이야기의 끝이다.

당신은 맛있게 먹을 것이고, 어딘가에서 어릴 적 먹었던 당근 반찬을 또 먹게 된 이야기를 술안주 삼아 할지도 모르고, 특별한 당근을 얻을 수 있는 텃밭의 즐거움을 설파하고자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것은 여기까지다. 그것은 당신 삶의 영역이므로.

다 말하기에는, 내가 당신을 아는 것처럼 다 말하기에는, 일이 너무 복잡해지고 또 너무 많은 수식어들을 동반해야 하므로 나는 그냥 포기한다. 어쩌면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고 할지도 모르는, 당신의 솔직한 음성을 듣기가 싫어서 핑계를 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똑같을 필요도 없고, 똑같을 리도 없는데, 나는 그냥 당신에 한해 쿨하지 못한 사람이므로 어떻게든 대충 넘어가려 한다.

그런데 작전 실패다.

당신의 옅은 미소 뒤에 이어지는 과찬으로 나는 못내 흐뭇해지는, 드라마 속에나 등장할 법한 상투적이고도 행복한 커플의 이야기가 잠시 끼어든다. 역시 인생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


나 역시 참 맛있게 잘 먹었다. 그런 음식은 처음이었다.

당신의 말을 따라 당신의 옛이야기 속으로 잠시 다녀오게 되는 그 당근 볶음은,
어쨌든 당신이 겪었던 그 맛 그대로일 리 없다.
프라이팬이 다르고, 기름이 다르고,
부엌의 온도가 다르고,
우리가 사는 이 집으로 불어 드는 바람의 냄새가 다르고,
음식을 하는 내 주변을 서성이며
당신이 만들어 내는 공기의 움직임까지 다 다르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오늘의 당근 볶음을 당신이 기억해 주는 것이다. 맛과는 상관없이, 오늘 내가 당신의 기억을 따라 아주 먼 곳까지 다녀온 그 길을 내 뒤에서 당신이 보아주는 것이다. 우리 부엌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을 당신이 삶의 중요한 일부로 느끼면 좋겠다.


당근의 시간이 끝나고, 양이 넘치는 듯해 남겨 둔 당근을 다시 넣으려 당근 봉투를 열었다. 당근들 사이에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한 고수 잎 하나가 끼어 있다. 아, 지난가을까지 고수를 많이도 먹었지. 자투리 공간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그 고수 잎 하나가 이 겨울 나의 역사를 차별해 주는 것만 같다.

당근의 시간을 마치며 엉뚱하게도 고수 잎 한 장에 기쁨이 넘쳐 "반가워,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넨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내 당근의 시간'이다.


아, 잊고 있었군.

'당근을 먹는 법'에 대해 쓴다면, 나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쓸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줄이느라 갈등하고 고생해야만 할까.

그러니 쓰지 말아야지.

당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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