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을 여행하는 시크한 여자의 살림에 대한 단상
콩나물 300원어치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면 집 아래쪽 100미터 정도 떨어진 구멍가게로 달려가 동전을 내밀고 콩나물을 사 왔다. 그러면 엄마는 그걸 바로 펼쳐서 신문지를 깔고 꼬리 부분을 잘라 내고 머리 부분도 상태가 안 좋으면 다듬었다. 그렇게 다 다듬어지고 마지막에 남은 콩나물들은 조금 전에 사 오자마자 열어 보았던 그것과는 달리 더 뽀얗게 제 빛깔을 뽐내며 반짝거렸다.
콩나물 다듬기는 그럭저럭 어느 부위를 떼어 내고 어느 부위를 남기는지 논리적으로 보였고, 엄마 곁을 오고 가면서 익힌(?) 실력으로 사춘기 즈음에는 혼자서도 제법 콩나물을 다듬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엄마가 초록 빛깔의 풀들을 다듬을 때는 달랐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느 부분은 남겨 두고 어떤 부분은 떼어 내었다. 시금치를 다듬을 때도 그 기준이 모호해 보였고, 특히 미나리처럼 갈래갈래 가느다란 줄기가 많은 풀들을 다듬을 때는 더욱 어려워 보였다. 텃밭에서 끝을 향해 달려가는 쪽파를 조금 뽑아 와 다듬고 있자니,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서슴없이 거침없이 먹는 풀을 다듬을 수 있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남길 부분과 버릴 부분을 단호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된 걸까.
“엄마, 이건? 이건 남겨, 버려?”
엄마 앞에서 종알거리며 다듬은 초록 풀들은 결국 한 줌도 되지 않는데, 신문지를 깐 순간부터 말끔하게 다듬은 풀들이 한쪽에 쌓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과 번민과 호기심이 굽이굽이 산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물처럼 넘치도록 투명했는지.
이제는 아무에게도 묻지 않고 쪽파를 다듬는 시절. 나와 같은 나이에 누구나 딱 이만큼의 살림을 한다고 장담할 일은 아니지만, 꼭 살림이 아니더라도 자신에 대한 정당성과 더불어 약간의 고집이나 아집, 또는 철학을 세우려고 단단한 집을 짓기 시작하는 시절.
텃밭에서 뽑아 오자마자 다듬었다면 좋았을 것을, 나는 또 무엇을 하느라 집 안 구석구석을 헤매다 식탁으로 와 잠시 머물며 끝이 조금 마르고 노랗게 변한 쪽파를 한 줌씩 쥐고 다듬으며 버리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를 부분들을 단호하게 버려 내고 있었던 것일까.
쪽파를 다듬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몰라도,
어떤 생각들이 무엇은 버리게 하고 무엇은 남겨 두게 했는지 몰라도,
어쨌든 남게 된 것은 쪽파 그 자체다.
내 바구니에 담겨 먼지가 엉켜 있는 차를 타고 터널을 지나고 낯선 동네의 공기를 따라 우리 집에 다다르기까지 상념들로 노랗게 변한 것들은 다 버려지고, 어쨌든 남아 있는 것은 처음처럼 푸르디푸른 쪽파다.
단순하게 쪽파의 모습과 빛깔을 유지한 고 녀석들이 식탁 위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