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을 여행하는 시크한 여자의 살림에 대한 단상
살다 보면 의도하지 않았는데 예기치않게 어쩌다 보니 일이 커지고 또 커질 때가 있다.
이상린 농부에게 루꼴라를 좀 얻어 온 것이 화근이었다.
루꼴라를 먹어야 하는데, 상추처럼 겉저리를 해 먹기도 좀 그렇고 간단히 끓는물에 데쳐서 나물을 먹기에도(농부의 아내는 이미 내 성격을 아는 지라 내게 건너오는 루꼴라를 보며 가져가서 간단히 무쳐 먹기를 권했다) 성에 차지 않는다.
루꼴라 하면 특별히 떠오르는 것은 샌드위치다. 다섯 해쯤 전일까. 김포공항 안에 프랜차이즈 빵 가게가 하나 있는데, 그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팔고 있었다. 아마 봄날이었던 것 같다. 평소에 샌드위치를 잘 사 먹지 않는데, 그날은 왜그랬는지 샌드위치를 하나 샀다. 한 입 베어 무는데, 향긋하고 알싸하게 코를 자극하고 혀의 놀림을 아쉽게 만드는 초록빛깔 잎사귀가 한 장 있었다. 목 뒤로 넘어갈까 봐 어찌나 안간힘을 쓰며 천천히 천천히 붙잡고 씹었는지. 정말 대단한 경제개념을 지닌 빵 가게라는 생각인데, 어떻게 루꼴라 잎사귀를 딱 한 장 넣을 수 있는지는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쨌거나 그날의 경험으로 나는 루꼴라를 아주 맛있고 귀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텃밭 농사를 지으니 루꼴라가 비쌀 때 따로 사 먹는 일도 없으며 루꼴라를 써서 음식을 할 때 아껴서 넣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도 그날 그 일 때문에 나는 루꼴라가 넘쳐나는 계절에도 루꼴라에게 의연해지지 못하는 그런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다.(아마 그 사건 때문일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루꼴라라는 식물은 참 별나게도 일을 만들고 또 만든다. 루꼴라를 맞아들이는 내 주방은 몹시 분주해지고 바빠진다. 루꼴라님을 특별히 대접하기 위하여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두 눈을 지그시 감는다. 이미 다양한 식재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루꼴라와 딱히 어울릴 만한 것이 없으면 다시 장을 본다. 오로지 루꼴라를 먹기 위해서 다시 마트에 시장에 간다. 내 요리 창착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어디 부족한 것이 요리 창작력 뿐일까, 그 외에도 많은 창작력들이 빈곤하여 요 모양인데), 치즈와 토마토는 기본적으로 있어야 한다. 평소에 파스타 면이나 각종 소스, 드라이토마토, 올리브류에 담가둔 바질, 마른 허브류는 부엌에 구비해 두고 있는 편이지만 토마토와 치즈는 항상 부족하다. 그런데 루꼴라를 보면 꼭 그것들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런데 그날은 정말로 정말로 장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귀차니즘이 발동하여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냉장고 파먹기를 시작하자면 한 달은 족히 살 우리 집 냉장고라는 것쯤 잘 알고 있지만 그런 지혜나 인류애가 발동하여 움직이지 않은 것은 아니고, 참 귀찮았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또띠아 만들기였다. 또띠아를 사러 가는 일이 귀찮아서 또띠아를 만들다니, 세상에! 그냥 어느 순간 이렇게 일이 커지는 거다. 귀찮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던 여자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밀가루와 올리브오일과 소금과 베이킹소다를 찾아 전자저울에 1그람도 오차가 없이 정확히 계량하기를 마다하지 않고 반죽을 하고 밀대로 밀고 주전자 뚜껑으로 완벽하게 동그란 모양을 찍어낸다. 그러면서 이따금 생각한다. '내가 왜 이럴까?' 그렇게 만든 또띠아에 집에 있는 갖가지 재료들로 만들어 낸 속재료를 담아 타코를 만든다.
그게 다가 아니다. 루꼴라는 또 곧 샐러드니까. 이런 편견 갖기 쉽지 않은 거 알지만, 음식을 섭취하거나 즐기거나 만드는 데 있어서 나는 어쨌거나 편견 덩어리다. 호불호가 확실하고 내가 아는 세계와 미지의 영역 또한 정확하게 인식하며 비용을 지불하기에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냉장고를 뒤져 아끼고 아껴두었던 엔초비를 꺼낸다. 이 엔초비로 말할 것 같으면, 무엇이든 잘하고 늘 아름다운 것(맛을 포함)에 촉각을 곤두세운 채 사는 아주 예민한 사람이 만든 완벽한 식재료다. 가격이 좀 비싸기는 하지만 그녀가 그것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 믿는다면 그 돈이 절대 아깝지 않은 음식이다. 루꼴라 한 단 때문에 나는 요즘 우리 집 냉장고에서 가장 핫한 그 녀석을 꺼내든다. 얼음물에 담가 엔초비의 짠기를 조금 빼고 루꼴라를 담고 레몬즙을 뿌리고 발사믹과 허니머스터드를 섞어 간단한(?) 샐러드를 만든다. 마침 허니머스트드가 떨어졌는데, 또디아가 없어서 만든 것처럼 역시 연겨자와 꿀 등을 적당히 섞어 허니머스터드를 급조한다.
그렇게 나는 루꼴라를 넣어 만든 타코와 엔초비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귀차니즘이 발동하여 집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는, 또띠아를 만들고 허니머스터드를 만들고, 루꼴라가 주인공인 그럴 듯한 식탁을 차려냈다. 이 모든 것이 루꼴라 한 단 때문이었다. 레드와인 한 잔을 곁들여 배불리 먹고 나니 음식을 차리기 전의 나른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다시 어떤 의지 같은 것이 스멀슬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취기 때문인지, 포만감 때문인지... 물론 워낙 천성이 전투심이 약한 데다가 경쟁 의식 따위가 없어 '의지'라고 해 봐야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별 것 아닌 것이지만, 어쨌든 손가락 꼼짝 하기 싫던 귀차니즘은 사라지고 적어도 루꼴라를 씹을 때 입안에 남는 알싸한 잔향과 쌉싸름한 맛 만큼 생에 간이 더해졌다.
그래서일까. 루꼴라는 필요하다. 상추처럼 남녀노소 좋아하는 포근한 맛도 아니고, 적겨자 잎처럼 눈물 찔끔 나게 하는 매운 맛도 아닌, 적당히 튀는 맛. 누군가 내 등을 떠미는 것처럼 물살에 떠가는 듯 바림에 밀리는 듯 부엌에서 칼을 놀리고 불을 보고 채소의 향을 맡다 보면 괜한 생의 의지가 돋아 '이쯤이면 좋다, 그러니까 좀 더 해 보자.' 이렇게 나를 다독이게 되는 그런 맛. 그래서 루꼴라를 알게 된 것일지 모르겠다. 그날 공항 한 켠, 별 것도 아닌 어떤 빵집에서 평소 잘 먹지도 않는 샌드위치를 사서 먹게 되었던 것은 그 특별한 루꼴라의 맛을 만나라고 그런 것이었나 보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며 사는 것이 메말르고 나른하다 느껴질 때, 생에 알싸한 한 입이 필요할 때 반드시 스스로 몸을 놀려 생의 에너지를 회복하라고 그 푸른 루꼴라를 만났나 보다.
피곤할 땐 누구도 나에게 루꼴라를 주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해 보며 피식 웃는다. 누가 주든 안 주든 밭에는 늘 몸을 놀리게 하는 채소들이 지천이라 생각하니 당연히 웃음이 나는 것이다. 어쩌면 루꼴라는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생의 회복력이 대단한 것도 너무 극성맞아 보인다는 생각에 한 발짝 물러서고 싶은, 한 바지런한 여자의 핑계. 외로울 때도 루꼴라는 좋고, 너무 기운 넘칠 때도 핑계 될 것이 있어 루꼴라는 좋다. 루꼴라는 완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