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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Feb 16. 2022

7. 우리 옛것과의 만남

'화협 옹주의 얼굴 단장' 고궁박물관전시(2019.10.01~10.31)

美, 人


저는 옹주 화협和協(1733-1752)입니다. 2015년 남양주에서 제 묘가 발견된 후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임금 영조의 일곱 번째 딸이고 세자 사도의 두 살 위 친누이입니다. 

제 나이 겨우 스물에 세상을 떠났을 때 아비는 묘지문墓誌文을 직접 지으셨습니다.

“~ 기품은 침착하고 맑았으며 ~ 마치 듣지 못한 듯이, 보지 못한 듯이 한 것이 곧 화협의 성품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아랫사람을 거느리고 어찌 뭇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었겠는가? ~ 몇몇 문구를 나란히 하여 그 영혼을 위로하고자 한다...”

한 줄 기록하는데 눈물 열 줄기가 흘러내린다는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맴돕니다. 

가족들이 기억하는 제 마지막은 기력이 쇠한 모습이겠지요. 청동거울, 먹, 빗, 청화백자합 등, 부장품 가운데 생전 아끼던 화장化粧과 관련된 물건들을 보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훗날 곱고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만나자는 남은 이들의 바람이 느껴집니다.

      


본래 화장은 개화기 이후에 일본에서 들어온 말로 우리 고유어로는 장식粧飾 또는 단장端粧이 있습니다. 이 말들은 피부손질과 아름다움 가꾸기, 옷치장 따위를 모두 아우르는 것으로, 주로 화려하면 장식, 수수하면 단장이라 했습니다. 

피부손질 위주의 담박한 멋내기는 담장淡粧, 색채를 곁들여 치장한 경우는 농장濃粧, 짙은 화장으로 요염한 꾸밈일 때에는 염장艶粧이라 합니다. 또한 의식을 위한 짙은 화장, 예를 들면 혼례를 치르는 신부의 경우는 응장凝粧, 얼굴 중심의 치장이 아닌 옷치장과 몸치장을 곁들이면 성장盛裝이라 하였지요.


조선시대에 화장과 연관된 말들이 이리 세분화된 것이 뜻밖이라고 여겨질지 모르겠습니다. 얼핏 외모에 대한 관심의 방증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양반 남성의 글을 빌립니다. 거울을 보면서 의관이 바른 지 확인하며 태도를 존엄하게 하고(이덕무(1741~1793) 『사소절士小節』), 새벽에 머리를 빗고 거울을 보며 흐트러진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정온(1569~1641) 『동계집桐溪集』). 유교적 도덕관념에 따라 외면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에 치중했던 조선시대 화장의 의미를 전합니다.

화장은 아름다운 부분을 돋보이도록 하고, 약점이나 추한 부분은 수정하거나 위장하는 수단의 의미까지 포함합니다. 화장품이라는 말은 화장이라는 말과 함께 유행했습니다. 이전에는 지분脂粉(연지와 백분) 또는 분대粉黛(백분과 눈썹먹)가 주로 쓰였고, 화장품과 화장도구 일체는 장렴粧匲이라 불렀습니다.     

같은 시기, 창백해 보이게 얼굴 전체에 분을 두껍게 발라 병폐적인 느낌이 강한 청대의 화장이나, 이를 검게 물들이는 치흑齒黑이 일반적이었던 에도시대의 화장과는 너무나 달랐던 우리의 화장문화, 실제 사용했던 용기와 화장품을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세안을 한 후 지금의 로션과 같은 미안수美顔水, 크림에 해당하는 면약面藥이나 화장유를 발랐습니다. 미안수는 수세미, 오이, 박 등의 줄기를 자르면 나오는 즙이나 수분을 사용하여 만듭니다. <청화백자 모란덩쿨무늬 호>에 넣었습니다. 면약은 꿀에 자연재료를 섞은 것으로 좁쌀 물의 웃물, 복숭아꽃, 동아 씨 등도 함께 썼습니다. 지금의 팩처럼 꿀 찌꺼기인 밀랍을 발랐다가 일정 시간 후에 떼어내기도 했습니다. 피부를 매끈하게 한 후 분을 발랐지요.

남녀 불문하고 희고 옥 같은 피부를 선호한 지는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흰 얼굴을 위해 조선시대에는 미분米粉과 연분鉛粉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미분은 쌀과 서속黍粟(기장과 조) 가루를 배합한 것으로 수저나 종지 그릇으로 소량씩 떠서 물이나 기름에 개어 썼지요, 연분은 피부에 잘 붙지 않는 미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금은 사용금지인 납을 넣은 것입니다. 윤기가 나며 미세해서 분첩으로 두드려 발라도 잘 밀착되지만 계속 사용하면 땀구멍이 넓어지고 얼굴색이 검어지곤 했답니다. 

양반가 부녀자는 얼굴을 윤기 나게 하는데 공을 들였습니다. 신체를 청결하게 가꾸고 용모를 단정하게 유지하고자 함은 같아도 복숭아색 분을 사용하여 흰 분을 사용하는 궁녀나 기생과는 차이를 두었습니다. 왕실에서는 백분과 자기의 원료인 고령토를 섞거나 진주를 부드럽게 간 초미세분말도 사용했습니다. 진주분의 은은한 반짝임은 몽환적일 만큼 아름답지요. <색회 등나무무늬 합>에 담긴 백색 분은 쌀가루, 연백, 활석 등입니다. 

일찍부터 연지를 바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분채백자 풀꽃무늬 잔>에는 주사가 들어있는 적색 분을 담았습니다. 홍화에서 추출한 가루를 환약 형태로 만들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살구씨, 복숭아씨, 유채꽃을 압착해 만든 기름에 개어 솔로 그리거나 둥근 연지 도장을 찍었습니다.


정종대왕과 효의왕후의 기일에 연지는 바르지 않고 분만 바른다는 기록은 색조화장은 하지 않더라도 분화장은 빠지지 않음을 알려줍니다. 순종비 윤황후는 ‘한 듯 안 한 듯 분만 살짝 바르는’ 화장을 했답니다. 개인의 취향도 있겠지만 본래의 생김새를 바꾸지 않는 자연스러움에 우위를 두어 확연하게 달라 보이는 화장한 모습을 ‘야용冶容’이라며 경멸하던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습니다. 

화장품 용기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청화백자 칠보무늬 팔각호>입니다. 중국, 일본에서 건너온 수입품이 아닌 유일한 국내 제작품이라는 점보다는 안에 담긴 머리, 가슴, 배가 분리된 황개미 수천 마리 때문이었지요. 개미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가 연지벌레와 함께 으깨어 립스틱으로 썼다는 이야기만 전해질뿐입니다. 개미를 산성이 강한 식초에 담근 것으로 보이는데 피부병을 진정시켰으리라 짐작한다지요. 쓰임을 밝히고 싶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고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른 미용법에는 머리카락을 뽑아 이마 선을 가지런히 하기도 있습니다. 드물게 남아 있는 여인들의 초상을 살피면 시대와 신분의 구별 없이 이마 모양이 거의 같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진수아미螓首蛾眉, 아름다운 용모를 일컫는 말로 이상적인 이마와 눈썹의 모양을 알려줍니다. 넓고 네모반듯한 이마에 초승달 같은 눈썹을 뜻하지요. 

눈썹은 관솔, 달개비 꽃잎, 목화꽃을 태운 재를 재료로 한 먹을 기름에 개어 그렸습니다. 미묵眉墨으로 검은색, 짙은 밤색, 검푸른 색까지 다양한 색의 표현이 가능합니다. 가늘고 길게, 때로는 두텁게 눈썹을 그리고 지웠던 시절이 아득하게만 느껴집니다.   

  


흰 분과 검은 미묵, 붉은 연지... 앙증맞은 용기에 담긴 색색의 화장품을 바라보며 지난 시절의 미인관을 떠올립니다. 피부, 이, 손은 희어야 한다는 삼백三白, 눈동자, 머리카락, 그리고 속눈썹은 검어야 한다는 삼흑三黑, 입술, 두 뺨, 손톱은 붉어야 한다는 삼홍三紅 등의 까다로운 여러 조건을 갖춰야 미인이라 했습니다. 미인상은 여성을 구속하는 무언의 족쇄와 다름없다 했는데 이제는 일편 무병의 증표였음에 생각이 미칩니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등지고 보니 건강한 모습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싶습니다. 미인박명이던가요? 미인장수는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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