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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Feb 15. 2022

6. 우리 옛것과의 만남

'백제 토기'에 대하여

우아하게 위대하게

그녀는 백제의 귀부인이다. 1995년 부여 능산리 고분에서 발굴된 후 현대 첨단기술에 의해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160cm 넘는 키에, 지금 여기에서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의 얼굴인양 친숙한 생김새이다. 많아야 30대 정도라는 그녀는 천두술의 흔적이 남아있어 큰 관심을 받았다. 그녀는 왜, 고대 멕시코나 이집트 등지에서는 주로 두통을 치료할 목적으로 행해졌던 두개골에 구멍을 내는 뇌수술을 받았을까. 고대 한국 의술의 발달된 수준에 놀라는 한편 옛 여인의 일상은 어떠했을지 그려보게 된다. 

660년 사비성 함락이란 기록을 끝으로 사라져 버린 비운의 왕조, 백제의 이미지가 겹쳐져서일까. 그녀가 겪은 삶의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으리라 싶다.     


사비일 때 하루가 시작된다. 사비는 이 땅의 이름이자 새벽이란 뜻을 지닌다. 잠자리에서 뒤척이는 어린 아들을 일으켜 오줌을 누인다. 중국 청자를 우리식으로 변모시킨 호자를 볼 때마다 웃음이 절로 난다. 무서운 호랑이가 공손하게 앉아서는 입을 활짝 벌려 아이의 아침을 개운하게 열어준다. 

물을 길어 우물로 향한다. 목에 끈을 둘러 묶은 나팔꽃처럼 입이 벌어진 항아리가 물에 닿을 때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두레박으로 쓰인 회청색 경질토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쓰였다는 적갈색 연질토기보다 얇고 단단해져 오래 쓸 수 있어 좋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이 있다. 떨어트려도 깨지지 않고 물이 전혀 새지 않으며 색상이 다양했으면 더 좋을 터인데.      

얼마 전 구경한 거대한 규모의 가마에서 땀을 비 오듯 쏟아내고 있던 낯선 이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그릇과 함께 건축부재인 기와도 산처럼 쌓여 있어 장관이었다. 원찰을 짓기 위해 외지에서 새로운 기술자 집단이 이주했고 근방의 남자들이 모두 동원되었다고 한다. 여전히 노지에서 구워내기도 하는데, 산등성이에 뱀처럼 기다랗게 자리한 현재의 가마(등요)가 생겨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다니 기술의 발달이 놀랍기만 하다. 대규모 조성사업이 끝나면 장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기술 지도를 할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한여름에 가마의 열기가 전해져 더 뜨겁게 느껴지지만 고을에 불어온 활기가 반갑기만 하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닌데, 한밤중에 거행할 제사 준비에 마음이 바빠진다.  

    

근래에는 주로 유개대부완(뚜껑 있는 굽다리접시)에 밥과 국을 담는다. 사비 천도 이후 중국 청자나 금속제의 완을 본뜬 반상기가 본격적으로 유행했는데 한동안 인기가 지속될 모양이다. 물솥 위에 올려놓고 불을 때면 바닥의 구멍으로 증기가 올라와 음식을 익히는 시루에 떡을 안친다. 장란형 토기(계란 모양 토기) 대신 이제는 부뚜막에 올릴 때 고정시키기 편하게 날개처럼 전을 두른 토기를 물솥으로 쓴다. 한꺼번에 많은 음식을 장만하니 일손도 부엌 아궁이도 모자란다. 마당에 이동식 부뚜막을 세우고 국을 끓일 요량으로 심발형 토기(깊은 바리)를 올린다.

저장용 구덩이에 놓인 항아리에서 여러 식재료를 꺼낸다. 곡식 종자를 담기 위해 항아리와 같은 모양이나 훨씬 큰 옹을 몇 개 장만하였더니 창고가 그득하다. 귀한 화폐나 고철도 항아리에 담아 둘 수 있으니 그릇은 요모조모 참 쓸모가 많다.      

어둠이 내려앉기 전에 불을 밝힌다. 향내가 은은한 들기름 대신에 사슴 기름을 토기 등잔에 붓고 심지에 불을 댕긴다. 제사의 축문을 쓰기 위해 아이에게 토제 벼루에 먹을 갈라고 이른다. 다리 모양에 따라 대족식, 다족식으로 나뉘고 다리 끝부분이 원통형, 말굽형으로 다양해진 벼루에 근래 들어서는 도철무늬뿐만 아니라 연꽃무늬가 많이 새겨진다. 연화문과 함께 아궁이에서 불을 땔 때 연기를 빼주는 연통 끝에 얹어진 보주 모양의 연가나 벼루의 보주형 뚜껑까지, 어느새 생활 구석구석 깊숙이 스며든 불교의 영향을 실감하게 된다. 

불교가 전래될 때 따라 들어온 새로운 장법인 화장묘의 경우에는 주로 유개 직구호(뚜껑 있는 곧은 목단지)나 합 등 뚜껑 있는 소형용기들을 골호(뼈단지)로 쓴다고 한다. 원삼국시대 영산강 유역에는 대형 옹관묘가 쓰였다던데, 토기에 안장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삶의 마지막 풍경은 시대와 종교 불문이구나 싶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과 더불어 변해 온 것은 무엇이 있으려나, 불현듯 나라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부족 연맹체인 마한의 한 소국이 한반도의 중심인 한성에서 대형 봉토를 가진 고분과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 등의 성곽을 쌓을 만큼 번성한 국가로 성장하였는데 이후 많은 것을 잃고 떠나야만 했다. 웅진을 거쳐 사비를 수도로 삼고 새롭게 정치적, 문화적 부흥을 이루어가고 있는 나의 조국, 백제. 절치부심, 기사회생의 사자성어가 연이어 떠오르고 백제의 지난 역사와 우리네 굴곡진 인생역정이 유비된다.


한밤중 달빛이 고고해지자 제를 시작한다. 위세품인 흑색마연토기(검은간토기)를 제의용으로 쓴다. 토기 표면에 광물질을 바르고 문질러서 칠기의 독특한 재질감을 살려낸 마연 토기의 윤기 나는 검정이 어두운 밤에도 품격 있어 보인다. 중국 청동제 삼족반三足盤에 기원한 삼족기(세발토기)에도 공양물을 정성스레 올린다. 백제의 삼족기는 북쪽의 고구려나 동쪽의 신라와 가야에는 없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접시나 대접류에 굽을 붙인 고배류나 기대류도 삼국이 모두 다르다는 말이 기억난다.      

반상 문화가 가장 발달한 고구려는 평저 토기로 고배나 기대가 없고, 반상 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은 신라·가야에서는 토기의 바닥이 둥글고 기하학적인 모양의 투창이 있는 굽다리는 긴 편이라 한다. 장식이 없는 짧은 굽다리의 고배가 보여주듯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의 중간 형태를 취한다고 볼 수 있으니 삼국의 지정학적 관계가 기형에도 그대로 투영되나 보다. 그나저나 고구려의 남침이나 신라의 나제 동맹 파기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닌데 신라와 당이 연합하여 다시 우리의 국경을 노린다는 소식이 들린다.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며 왕조의 무궁한 안녕을 간절히 기원해본다. 어느새 다시 사비가 찾아온다.   

   


삼국 중 문헌상 기록이 가장 적은 백제는 유물을 통해 독자적인 미학을 드러낸다. 지역별, 시대별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백제토기는 국제성, 개방성을 지니며 소박하면서도 세련되게 기능과 미를 조화시켰다고 평가받는다. 1400여 년 전 현대의 우리와 다름없이 웃고 울며 삶을 꾸려간 백제의 여인은 후손들의 감상이 만족스러울까. 그녀의 우아한 미소는 위대한 백제의 영광을 추억하고 있기 때문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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