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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Feb 14. 2022

2. 우리 옛것과의 만남

손갖춤(수인)에 대하여

그때와 지금

     

아주 오래전 일이다. 인기 있는 만화 속 주인공 손오공에 흠뻑 빠져 있던 동생이 언제부터인가 금색 천을 펼쳐 들기 시작했다. 한동안 황금박쥐의 요술 망토라며 애지중지하던 천이 광배의 대용품이 되었다. 손오공을 쥐락펴락하는 부처님의 신묘한 능력을 탐내더니 힘의 요체는 불상의 광배라고 나름 짐작했던 모양이다.

 당시 동생이 곡식을 까부는 키 형태의 광배를 알았다면 어떠했을까. 오줌싸개라 놀리며 굵은소금을 건네는 이웃에게 키를 둘러 쓴 장난꾸러기는 신나게 장풍을 날렸으리라(1970년대 동생은 실제 이불에 지도를 그린 날 옆집으로 소금을 얻으러 갔다). 

     

부처는 32상相 80종호種好를 지닌다. 머리와 몸 주위의 광배를 비롯하여 머리 위로 불쑥 솟은 육계, 미간의 백호 등이다. 인간의 모습을 바탕으로 표현된 신성하고 초월적인 형상은 어린아이 눈에도 범상치 않아서, 불상 앞에서는 말을 삼가며 자세를 살필 줄 알았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맞추며 말을 건네고파 가까이 다가서곤 했다. 부처의 잔잔한 미소와 손갖춤(手印) 때문이었지 싶다. 

여래상의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는 엄부자모嚴父慈母란 옛말과 이어져 인상에 남아 있다. 이리 보면 잘못을 꾸짖는 것 같고, 저리 보면 달래 주는 듯 느껴진다. 미소에 이어 시선을 잡아끄는 곳이 부처의 두 손이다. 정적인 분위기의 불상에서 동세가 느껴지는 유일한 부분으로 소리 없이 부처의 말씀을 전해준다. 

석굴암  본존불

설화에 의하면 석가는 탄생하자마자 일곱 발짝을 뗀 후 한 손을 들어 하늘을, 다른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면서 ‘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했다. 이를 구현한 탄생불誕生佛은 몸에 비해 두 팔이 긴 모습으로 상체는 벗은 채 짧은 하의만을 걸친 입상이다. 

꼬맹이 시절에는 후덕한 중년 남성과 부처를 동일시한 상태라 처음 탄생불을 보았을 때 불상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자그마한 데다 어려 보이는 모습이니 동자승 같은 어린이를 위한 인형인가 했다. 다른 오해도 있었다. 한자를 하나둘 배워가던 무렵 탄생 사자후를 글자 그대로 풀이한 후 태자 시절의 석가는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겼다고 생각했다. 언제였던가, ‘유아독존’에서 ‘나(我)’는 석가 개인만이 아닌 모든 존재를 가리키고 탄생불의 수인, 천지인天地印은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민망함과 안도감이 교차했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나라 불상에서 가장 많은 수인은 석가모니불이 취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잡념을 버리고 마음을 모을 때 취하는 선정인禪定印에서 오른손만을 풀어 무릎 아래쪽을 가리킨다. 권속을 이끌고 온 마왕의 방해에도 석가모니가 득도하였음을 지신地神이 증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석굴암의 본존불처럼 결가부좌한 부처의 당당한 체격에는 어울리지 않게 여리고 고운 손이라 여겼는데 항마촉지인의 의미를 되새기면 이전과는 사뭇 다르게 보인다. 폭풍우가 지난 후 고요의 표상이라 할까, 유혹을 이겨내고 고난을 견뎌낸 강한 힘이 느껴진다.


부처나 보살의 수인은 각각 바람을 이루고자 하는 다짐(本誓), 스스로 깨닫는 일(內證), 중생을 구하고자 기원하는 일(誓願), 공로와 덕행(功德) 등을 상징한다. 교리적으로 중요하여 함부로 변형하거나, 특정 수인을 다른 불·보살에 표현하는 것을 금한다. 그런데 경전의 내용과 다르게 표현된 경우도 있어서 수인만으로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등을 구별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불보살상과 수인의 불일치는 어떠한 연유였을까. 텍스트를 이미지로 ‘번역’하다 생겨난 오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염원이 낳은 조형언어는 아니었나 싶다. 예측 가능한 경우보다 예외적인 상황에 주목하는 것이 인지상정. 부처의 가르침이 영속되기를 바랐던 옛사람들은 시대가 변하면 부처의 말씀을 새로운 맥락으로 해석하라고 슬쩍슬쩍 수인의 ‘파격’을 시도했을지 모른다. 

법주사 마애 여래상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경우라 하는 설법인說法印 또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열반의 경지를 스스로 얻은 부처가 최초로 행한 설법인 초전법륜初轉法輪(진리의 수레바퀴를 처음으로 돌렸다는 의미) 때의 수인이다. 

설법인과 가장 유사하다는 법주사 마애 여래상의 수인은 꽃과 노니는 나비의 선묘 같다. 다채로운 손동작이 인상적인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전통 춤사위, 마술사의 현란한 손놀림도 겹쳐진다. ‘손’이 가면 ‘눈’이 따르고 ‘정신’이 머무른다. 석가모니가 설한 고苦·집集·멸滅·도道의 사제四諦 법문이 수행하던 비구들의 마음 자락에 고운 자수되어 새겨졌을 것이다. 손 모양이 위아래 대칭을 이루는 수인도 있다. 삼국시대 불상이 두 수인을 동시에 취한 경우가 많아서 함께 묶어 통인通印이라 부르는 여원인與願印과 시무외인施無畏印이다. 각각 중생이 원하는 바를 달성케 하는 대자大慈의 덕과 중생을 공포와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자비慈悲의 덕을 나타낸다. 

서산 마애삼존불상의 본존불은 통인을 취하고 있다. 푸근한 ‘백제의 미소’에서 시선을 내리면 여원인의 왼손에서 접힌 약지와 소지가 눈에 띈다. 부처의 어린아이처럼 천진스러운 눈웃음 때문일까, 구부린 손가락 사이에 무엇인가 숨겨져 있을 듯싶다.



서산 삼존 마애불 가운데 본존불

부처상은 약 오백 년에 이르는 무불상시대 이후 출현한다. 열반에 든 석가모니를 지상 세계에 재현해 놓은 것은 가시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진리를 찾아가는 ‘이성의 눈’이 아니다. 당대 신앙심과 미감이 투영된 ‘감성의 눈’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른 형상으로 불상을 빚어내고 조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가는 실제 2600여 년 전 이 땅에 태어난 선각자임은 틀림없기에 부처의 일대기나 불상에는 신화 속 인물과는 다른 실체감이 깃든다. 여러 수인을 되짚어가다 보면 부처 삶의 여정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마음 한편, 금색 천의 이미지가 다시 생생해진다. 지금껏 어릴 적 마음 그대로였더라면 우아한 수인에 감화되어 위대한 종교 세계에 눈을 떴을 터인데. 어쩌면 이젠 중년을 훌쩍 넘긴 꼬마가 꿈꿨던 찬란한 광배를 목도할지도 모르는데. 

가만히 두 손을 모아 본다, 그리워 아련한 마음이 접어지려나.

금동 탄생불.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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