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솔직하게 관찰은 적당히.
20대 초반, 고등학교 때 입시미술학원 선생님이 지금 유럽여행을 한다면, 독일의 카셀 도큐멘타(독일 카셀 지역에서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현대미술전시)와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베니스에서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국제 미술전시)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하셨다. 입시에 벗어났다는 호기로움이 가시기엔 아직 일렀는지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2주간 여행 준비를 하고 친구들과 유럽여행을 떠났다. 여자 둘, 남자 셋. 그때의 기억은 다음 10년을 붙들게 해 줄 만큼 좋은 기억만 가득하다. 끝도 없이 걸으며, 강에 드리우는 빛들을 감상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탈리아의 좁은 골목을 누볐다.
유럽 여행에 나는 파울로 코웰로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이라는 책을 한 권 가져갔는데, 뭔가 통했는지 같이 동행했던 친구 중 남사친도 우연히 똑같은 책을 가져왔다. 책과 영화를 통해, 독자의 인생관이 어느 정도 바뀐다던 글을 보았었다. 우리 둘은 감성으로 가득한 미대생이라는 본분을 망각하지 않고, 여행분위기에 취해, 읽었던 책에 취해, 여행에 돌아와 썸남 썸녀에데 따로 고백한 다음 대차게 차였다. 순수하고 무모했다.
닭볶음탕만 주야장천 해주는 게스트 하우스들을 오고 가면서 여행자들에게 햇반과 고추장을 팔아, 끼니를 거르고 젤라토 아이스크림 사 먹는 데 돈을 죄다 썼다.
20대엔 생각을 바로 행동에 옮겼다. 해외로 여행을 간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한다. 끼니를 포기하고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무의식도 순수해서 다행이지, 30대의 나도 감당 못하는 거였으면, 큰일 났을 것 같다. 무조건 내 감정에 솔직한 것이 좋은 것이라생각했다. 달콤한일들만 가득했기에.
20대의 마무리에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 우정은 와해되었다. 치기 어린 솔직함을 서로 감당하기엔 너무 어렸고 불안했다. 각자가 해 온 노력을 인정하지 않은 채 상대를 위한 조언보다는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필터 없는 의견이 진정 친구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있는 게 점점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혼자 있는 시간이 편했다.
솔직함은 어느새 칼이 돼 서로를 찔렀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 마음을 몰라주니 더 마음이 아팠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나역시 불안한 친구들 마음을 몰라줬다. 서로를 돌볼 여유가 없었던 거다.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지금, 상대가 당장 솔직함을 원할 때조차도 정말 가족처럼 가까운 관계가 아닌 이상, 얘기하지 않는다. 난처한 상황 속에서, 나를 방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솔직함은 활용한다. 특히, 돈 관련 문제에서는 솔직하게 얘기해버린다. 괜한 의구심이 없도록. 운영하고 있는 학원을 아침마다 정성스럽게 쓸고 닦고 수업 프로그램을 얼마큼 준비하고 노력하는지 SNS에 때때로 공개한다. 20대에는 오히려 안 보이는 곳에서 남을 위하는 행동을 굳이 생색내지 않았는데, 말을 안 하면 정말 상대는 몰라, 내 진심을 너무 뒤늦게 알아주었다. 진심은 부끄러워도 드러내고 상대의 지난날을 아프게 돌아보게 하는 솔직함은 웬만하면 못 본 척한다. 즐거움도, 추억도, 이따금 생채기도 주는 이 '솔직함'을 여태 잘 이용하고 있는지 확신은 없지만, 느려도, 문제가 보이면 해결은 하는 나이기에, 지금보다 내일은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실패라는 말이 좋아. 실패는 인간의 숙명이지. 인생은 상영되지 않은 연극의 리허설이니까.
장 피에르 주네의 <아멜리에, 2001 > 중
토요일에도 학원 수업을 한다. 더위를 뚫고 헥헥거리며 걸어온 아이들이 한두 명씩 들어온다. 학원에 록시땅에서 사 온 향초도 피워두고, 에어컨도 틀고 온갖 창문과 문은 다 열어놓는다. 코로나 속 환기를 위해. 텀블러에 차가운 콜 드부르를 얼음과 함께 넣고 몇 주 전에 학부모님께 선물 받은 두유를 한 번 넣어보았다. 앗... 맛이.. 생각했던 맛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시럽을 두 방울만 넣었더라도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스친다. 솔직함은 관찰력이 발달해서 그런 것 일 수도 있다. 이런 섬세함을 내 취미생활에 적용해보는 중이다. 무모하게 안 마시던 두유도 커피에 타보며. 전과 달리 스케일이 작아졌을 뿐, 소소한 도전과 즐거움이 일상에서 다시 이루어지고 있다. 실패한 두유 커피를 빗대어 수업 설명을 하는 나를 보고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는다. 등원하는 아이들마다 잊지 않고,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일상의 습관이 멋지다고 칭찬해주며, 수업이 진행된다.
항상 노래를 흥얼거리며 수업을 하니, 7세 남학생이 왜 자꾸 노래를 지어서 부르냐고 웃으며 말하다가 전염이 되어 같이 아무런 노래를 지어내어 흥얼거린다. 다음엔, 두유를 넣고 시럽을 넣어봐야겠다.
삶은 연습이다. 법률스님.
머리도 채 말리지 못하고 하는 토요일 아침 수업 두타임이 지나니 머리카락이 말려있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커피 그라인더를 살까. 잼을 만들어 먹을까 고민한다. 향초의 편안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