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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예예 Dec 04. 2022

월동준비를 하며 생각한 것

엄마와 함께 했던 겨울나기 준비

월동준비라고 하면 생각나는 할 일은 겨울옷을 꺼낸다든지 가습기를 설치하는 그런 실용적인 일들이 아니었다. 엄마와 함께 했던 월동 준비는 ‘겨울 집 꾸미기’였다. 소파는 따뜻한 감의 와인색 줄무늬 커버로 바꾸고, 쿠션은 녹색 벨벳 크리스마스 쿠션 커버를 씌우고, 거실에 부드럽고 포근한 카펫을 깔고, 창고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서 설치하고, 각종 크리스마스 오브제와 페브릭 포스터를 집안 곳곳에 예쁘게 설치했다. 참 할 일이 많았는데 어린 나는 그 점이 좋았다. 왜냐하면 일이 많다는 건 일손이 필요하단 뜻이었기 때문이다. 4인 가족의 막내에게는 딱히 역할 책임이 잘 주어지지 않았는데 '겨울 집 꾸미기'는 손이 많은 가는 연례행사였으므로 초등학교에서 4교시만 하고 돌아오는 내가 엄마의 유일무이한 조수로 낙점됐다. 드디어 나에게도 어떤 역할 책임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와서 그림 그려달라고 하는 손재주 좋은 어린이 아니던가.


하지만 막상 기억을 더듬어 보니 8살이었던 내가 엄마를 도와서 한 일은 예술성이라든지 정교함을 필요로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꽃집에서 엄마가 트리 가져오는 동안 차 안에서 얌전히 있다가 트렁크 열어주기,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면 먼저 내려서 엘리베이터 잡기, 커튼을 갈기 위해 식탁의자 나르기 등등. 몇 개 덧붙이자면 엄마와 이천일 아웃렛에서 예쁜 크리스마스 오브제 고르기, 집에 돌아와서 트리에 장식 걸기 정도 있으려나. 아무튼 나는 손으로 만들고 꾸미는 작업들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더할 나위 없이 애정 했으므로 겨울 집 꾸미기는 그 자체로 너무나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엄마와 한 팀이 되어 집 전체를 완전히 바꾸는 일은 받아쓰기 100점을 맞는 일보다 훨씬 재미있고 보람찼다. 같이 큰 변화를,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반나절쯤 고생하고 나면 꽤 길고 긴 보상이예상됐다. 당장 저녁에 퇴근하고 들어오는 아빠가 깜짝 놀라며 온 집안이 크리스마스라고 감탄할 테고, 놀러 오는 친구들과 친척들마다 너네 집은 너무 예쁘다며 두고두고 부러워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감탄과 부러움을 사는 일을 내가 해낼 수 있다니. 정말 굉장한 일이었다.


그 뿌듯함과 보람찬 마음이 20년이 넘은 지금도 내 안에 남아있나 보다. 사실 에너지 효율을 따지자면 집 꾸미기,특히 손이 많이 가는 크리스마스 집 꾸미기는 꼭 해야 할 일은 아니다. 주말은 이틀 뿐이고 주말의 반을 집 꾸미기로 보내는 건 너무 아쉽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번 주말의 반을 '겨울 집 꾸미기'로 보냈다. 사실하면서도, 하고 나서도 즐겁고 뿌듯했다. 초등학교 때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와 다른 점은 엄마 없이 혼자서 해냈다는 것. 같은 점은 우리 집 곳곳에 올려두고, 걸어두고 한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모두 엄마가 꼼꼼하게 싸서 보내준 그때 그 친구들이라는 점이었다.

기운이 없어서 소파에 앉아서 찍은 사진뿐(흑)

모든 일을 마치고 거실 소파에 앉아서 집을 둘러보니 크리스마스 소품들 중 하나를 빼고는 다 엄마가 준 것들이었다. 입이 없다고 엄마가 입을 그린 천사들, 엄마랑 ‘종 모양 오너먼트를 위쪽에 달까, 아래쪽에 달까’ 고민했던 미니 트리, 12월 1일부터 24일까지 날짜마다 옮기기 좋아했던 산타. 내가 산 건 이케아에서 산 크리스마스 조명뿐이었다. 나 혼자 사부작 거리면서 집 꾸미기를 완성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엄마가 보내준 것들로 다 꾸몄으니 여전히 우리는 함께 '겨울 집 꾸미기'프로젝트를 완수한 건가. 사실 집을 꾸미고 정리하는 내내 어릴 때 엄마와 함께 꾸민 매년 겨울의 우리 집을 떠올렸으니 엄마와 같이 있었다고 해도 되는 건가. 심심한 질문들을 이어가다가 결론을 맺었다. '추억의 온기는 아주아주 오래간다. 어린 날의 기여감은 세월이 흘러도 그 사람 안에 깊숙이 남아있다. 여전히 나는 엄마의 사랑에 기대어 살아간다.' 월동 준비는 결국 마음에 온기를 채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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