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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예예 Feb 18. 2022

결혼식을 하고 알게 된 것

내가 엄마아빠의 딸이란 사실, 감동적이다.

두 달 먼저 결혼한 언니가 결혼식 날 팁들을 알려주었다. '신부가 절대 울지 않아야 할 이유와 비법' 그 내용은 이렇다. 1. 신부는 절대 울어선 안된다. 2. 울면 화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사진과 영상 모두 망한다. 3. 오해(?)를 살 수도 있다. 4. 울음을 찾는 비법은, 헤메에 투자한 비용을 생각해라. 5. 일그러진 얼굴만 찍힌 사진과 영상을 생각해라. 언니가 알려준 비법들은 꽤나 그럴싸했다. 하지만 아빠의 덕담 순서에서는 도통 소용없는 것이기도 했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엉엉 울어버릴 것 같아서 그냥 악착같이 눈물을 삼켰다.  


결혼식을 준비할 때 남편은 양가 아버님의 덕담이 꼭 있었으면 했고 나도 좋은 생각이라고 여겼다. 식을 2주쯤 앞두고 아빠에게 덕담을 해주셔야 한다고, 내용은 우리의 결혼에 대한 축복과 하객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이면 충분하다고 전했다. 우리 아빠는 글도 잘 쓰고 말씀도 잘하시니까 멋진 덕담일 거라 기대했다. 식전에 확인을 하는 게 민망해서 나 또한 다른 하객들과 마찬가지로 그 날 처음 들었다. 역시 아빠는 역시 아빠는 역시 아빠였다.


신부에게 결혼식은 몇 개의 씬만 남는 것 같다. 신부대기실- 행진 - 결혼식. 신부대기실에 앉아 정신없이 하객들을 맞다 보면 어느새 곧 식이 시작될 거란 말을 듣는다. 금방이다. 하객들이 모두 식장 안으로 들어가고 아빠가 대기실로 오면 나와 아빠 정도만 남는다. 잔뜩 긴장한 아빠를 놀리며 드레스 이모의 도움을 받아서 예식홀 문 앞에 섰던 기억이 난다. 신나고 행복한 모습으로 입장을 하자고 다짐한 터라 그렇게 걸어 나가면서도 아빠를 힐끔힐끔 봤다. 애석하게도 눈 한 번 마주치지 못했지만 아빠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긴장을 애써 감추고 미소를 지으며 하객들에게 인사하며 걸어가는 아빠. 이미 대기실에 아빠가 들어올 때부터 마음에는 눈물이 번져가고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알았지만 식장 측의 실수로 아빠는 준비한 페이퍼가 단상에 있지 않아서 당황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기억나는 대로 말하느라 더듬었던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정말 아무도 몰랐다. 역시 아빠는 외워서 한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그 날 했던 말들이 다 생각나진 않는다. 눈물을 참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빠의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났다.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데 여전히 울컥하고 눈물이 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내가 아빠를 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아빠는 정말 열심히 바르게 살아오셨고, 그 날 아빠의 말 중에 진심과 진실이 아닌 것이 없었다. 그리고 사랑이 베지 않은 말이 없었다.


결혼, 내가 꾸릴 가정을 준비하면서 오히려 엄마 아빠의 딸로서 나를 많이 돌아보게 됐던 것 같다. 엄마 아빠가 나를 낳으시고 기르셨다는 그 사실이 이렇게 감동적인 일이었던가. 처음부터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그 소중함을 알기 어렵다는 말, 그 말이 맞다. 숱하게 어버이날을 보내고 감사하다고 말해왔으면서. 내가 말해온 감사 하다, 사랑한다는 말이 얼마나 나풀거리는 말이었는지. 평생 부모의 사랑을 다 알 자신은 없다. 가능하지도 않겠지. 다만 다짐했다. 깨달은 건 잊지 말자고. 부모 자식 간의 터닝포인트를 뽑으라면 난 작년 결혼식을 꼽겠다.  

내게 있어서 내가 엄마 아빠의 딸이란 사실은 감동적이다.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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