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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예예 Feb 18. 2022

신혼부부 주방의 묘한 긴장감

오늘 주방의 주인은 누구인가

  "너희는 둘 다 요리를 좋아하니까 맨날 요리해서 맛있는 것만 먹겠다!" 우리 둘을 잘 아는 친구가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나와 남편 모두 요리를 좋아하고, 즐기는 덕분에 맨날 맛있는 걸 해 먹기 때문이다. 우린 요리를 좋아한다는 점도 비슷했지만 요리에 흥미를 붙이게 된 계기도 비슷했다. 


우리가 요리를 배운 과정

시작은 엄마의 주방 조수를 자처한 일이었다. 주방에 전혀 흥미가 없는 첫째 대신 둘째들이 나선 것이다. 처음에는 재료를 씻고 다듬는 게 주된 일이었지만 엄마의 인정을 받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느 집이나 그렇듯 엄마는 일손이 필요했고 우리는 배움에 열의가 있었다! 주방에 들어오고 몇 년이 지나자 엄마의 가정식 레시피를 거의 다 해낼 수 있게 됐다. 집밥이란 사실상 엄마표 야매요리에 가까운 음식이기 때문에 엄마의 스타일을 익히면 제법 따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재료보다 융통성과 창의력이 중요하달까.


실험적인 요리가 더 즐거워질 무렵부터는 TV나 유튜브를 통해서 다른 요리 스승을 찾아 다양한 레시피를 배웠다. 양식을 할 수 있게 되자 주방의 주인 자리도 종종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가 못하는 양식, 이를 테면 파스타를 가정식으로 제공해 가족들의 주말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근데 여기까지가 우리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요리경험이었다.


에멀젼에 진심인 그는 외친다. “면과 오일이 따로 놀면 안 돼!”


결혼 후 한두 달 남짓은 둘 다 요리를 좋아하고, 요리를 배운 계기도 비슷하고, 수준도 엇비슷해서 우리의 주방생활은 평화롭고 사랑이 넘칠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우리는 비슷한 과정을 밟았을 뿐.  너무나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랐다는 점을 생각지 못한 이른 기대였다.


푸짐한 5인 가정의 밥상과 

소꿉놀이 같은 4인 가정의 식탁

남편은 어머니 곁에서 건장한 남자 셋이 있는 5인 가정의 밥상을 차리는 방법을 배웠다. 그래서 그는 2인분 요리를 어려워한다. 그에게 적은 양의 음식, 2인분 요리는 어려운 일이다. 그가 파스타를 하면 3인분이 되고 만다. 반면 나는 딸 둘에 소식하는 남편의 식탁을 차리는 엄마 곁에서 요리를 배웠다. 내가 국이나 반찬을 담으면 그는 늘 한 그릇 더 먹어야 한다.


엄마들에게 배운 것도 달랐다. 우리 엄마는 맛보다 음식을 예쁘게 차리는 걸 잘하는 주부였다. 나는 엄마에게 반찬을 덜 때 접시의 3분의 1만 채워야 반찬이 예쁘고 먹음직스러워 보인다고 배웠다. 그래서 결혼 후 배운 대로 간장 종지만 한 접시에 반찬을 두 젓가락 정도 담아 식탁을 예쁘게 차렸을 때 (반찬 수가 대여섯 가지 되던 날이었다. 그래도 적은가?!) 그는 놀라 말했다. “크게 두 젓가락이면 끝나겠는데?” 반대로 그는 엄마에게 푸짐하고 든든하게 상을 차리는 법을 배웠다. 그가 차린 밥상을 보면 난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다시 꺼내야 했다. "좀 덜어야겠는데?"


각자 다른 영향을 받으며 요리생활을 해와서 그런지 요리에 있어 추구하는 바도 달랐다. 구독하는 요리 유튜버만 봐도 우린 다른 길을 간다는 걸 알 수 있다. 푸드스타일리스트 마지 님의 감각적인 요리영상을 보며 샌드위치 색감 예찬론을 펼치는 나와 승우아빠님의 영상을 보며 마이야르를 외치는 그 사이에는 분명 거리감이 있다.  


오늘 주방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의 주방에는 늘 긴장이 감돈다. 서로의 요리 스타일과 맛 취향이 분명하고 다른 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눈치를 겸비한 존중이 필요하다. 우리가 찾은 타협점은 메인 셰프를 먼저 정하고 남은 사람은 조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셰프와 보조로서 서로가 알고 있는 요리 지식을 전수하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니 괜찮은 방식 같다. 재밌는 건 식탁을 차리고 나면 조수를 맡은 사람은 이런 맛도 있구나 하고 만족하며 먹는데 셰프를 맡은 사람은 늘 나 홀로 열렬히 요리 전 과정에 피드백을 한다. 간이 부족했다든지 면을 더 삶았어야 했다든지 말이 많아진다. 그리고 꼭 덧붙이는 말이 있다. 


“여보 입맛을 생각해서, 고기를 더 넣었어!(나)”

”여보 입맛을 생각해서, 야채를 더 넣었어!(그)” 

매번 우리는 상대방의 취향을 배려하기 위해 애썼다는 말을 덧붙인다. 먹으면서 이미 눈치는 챘지만 그의 입으로 직접 그 배려 사항을 들으면 더 고맙다.


야채파와 육류파가 서로를 생각할 때


‘우리집맛’을 찾아서

식구가 되어가고 있나 보다. 먹을 식, 입 구.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 식구라는 말이 있는데 그 과정에 있는 것 같다. 우리가 꾸린 가정에서 만드는 ‘우리 집 맛’은 어떤 맛이 될까? 그가 좋아하는 후추와 마늘에 내가 좋아하는 버터와 올리브 오일이 잘 어우러진 맛이 되겠지. 때론 과한 후추와 마늘 양에 재채기하고 버터와 올리브 오일에 느끼해하며 맛의 합의점을 찾아가는 그 여정이 기대된다. ‘우리집맛’은 어떤 맛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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