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면 자유를 잃는다는 말에 대해
어느 날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가 예인이 갑자기 말했다. 연애한 지 2~3년이 지난 시점, 나는 20대 초반이었고 예인은 20대 중반이었다. 나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감동적인 고백 멘트에 나는 "아 그래? 그렇구나?"라고 대답했고 예인은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사람은 내 삶에 없었다. 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 가정에서의 좋은 경험들과 별개로 나도 결혼과 출산은 내 선택이라고 생각했고, 아직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예인은 어렸을 때부터 결혼을 꿈꿔왔기에 결혼을 필수였고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고민해 왔다고 했다. 기대감 없는 내 대답이 그렇게 심각한 일이었는지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때부터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씩 시작했다. 처음엔 ‘그래, 그럼 돈을 벌게 되고 생활이 안정되면 결혼해도 괜찮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나는 학부 졸업 후 대학원에 갔고, 대학원 졸업을 준비하는 시점에 다시금 정말로 결혼을 고민하게 되었다. 돈을 벌 시기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주변 친구들과 인생 선배들에게도 도움을 구했다. 첫 반응은 “사고 쳤어? 너무 이르지 않아? 였다.
그런가 싶기도 하면서, 일찍 하는 건 맞는데 너무 이른 건 뭘까 고민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 중의 하나인 결혼을 생각할 때 '지금이 일찍인지 늦은 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결혼을 결정해야 할까? 후회하진 않을지, 결혼하면 얻는 건 뭐고, 잃는 건 뭘지 머리가 아팠다.
그러면서 생각한 기준은 '우리가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개선하는지'였다. 우린 서로의 언어가 많이 달라서 연애 동안 종종 다퉜다. 나는 컴퓨터 공학, 예인은 심리학과 미술사를 전공했다. 원가정의 문화도 많이 달랐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다른 뜻을 썼다.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의도와 감정이었다. 싸우고 답답할 때면 앞으로 평생 이런 순간이 반복되어도 견딜 수 있을지를 상상했다.
각자의 의도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길고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 무엇인가 합의했다. 이 단어는 우리 사이에 이런 뜻으로 사용하자고, 나의-너의 이러한 행동은 서로가 이렇게 받아들이자고. 그리고 한번 합의한 것들에 대해 서로가 노력해서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 완벽하진 않아도 나아지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가 만나는 과정에서 각자는 많이 성장했고 우리 관계 또한 그랬다. 우리 둘이 앞으로 5년, 10년 더 만나면 어떤 모습이 될까, 그게 기대가 되는지 생각해 보면,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잘 상상되진 않지만 기대가 됐다.
결혼을 결심한 후로 예인이 다르게 보였다. 변한 건 내 마음가짐뿐이었는데, 예인은 더 사랑스러웠고 나는 예인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친구들이 내게 가장 먼저 물었어야 할 질문은 너무 일찍 결혼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가 되었어야 했다.
결혼을 하기 전에 더 많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길 권하는 조언도 있었다. 결혼으로 인해 취미를 포기하게 된다거나, 시간의 압박이 생긴다는 의미다. 사실 난 결혼을 하고 더 자유로워졌다. 새로운 취미를 만들었고 더 많은 도전을 하게 되었고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내가 정말 사랑하고 살아있게 느껴지는 활동을 아내가 못하게 한다? 나로선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사랑하는 활동을 억울하게 포기하는 게 아니라, 만족스럽고 자연스러운 변화일 것이다. 결혼은 각자와 우리를 자유롭게 완성하는 과정이니까.
물론 나는 술자리나 모임이 1년에 손가락으로 꼽고, 집과 회사를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내향적 인간이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그냥 나는 이렇게 산다는 것, 결혼을 통해 더 큰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만큼 다양한 결혼 생활이 있다. 결혼 생활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해 본 사람 혹은 결혼 생활을 지켜본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그래서 연애와 결혼에 대한 조언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결혼 생활이 뭔지 아직 모르겠다. 결혼은 둘이 만드는 새로운 세계다.
결혼하고 3년이 되어가는 지금, 일찍 결혼해서 아주 잘했다고 생각한다. 라이프스타일을 비롯해 아직 삶의 여러 방면이 결정되지 않은 시점에서 만났기 때문에 '우리'의 관점에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게 되었다. 더 늦게 결혼했다면 지금처럼 서로의 삶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아내는 사랑하는 배우자면서 가장 친한 친구이고, 때론 하고 싶은 일을 함께하는 동료이자 존경하는 멘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사람의 인생을 곁에서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늘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의 성장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