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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예예 Apr 03. 2022

농구일기#2 너가 농구를 한다고?

160cm 여성이 농구를 하게 된 이유

<농구일기>
회사에서 아침 농구를 하며 깨닫는 점을 기록하고 있다. 아직은 극초보. 160cm 여성으로 ‘농구는 내게 불가능의 영역’으로 두었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농구를 시작하게 됐다.


목표 없이 농구를 시작했다. 동호회 농구에서 1인분을 하겠다든지, 평생 농구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건 전혀 아니다. 그저 기회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회사에 농구 코트가 있고, 같이 농구를 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고, 무엇보다 내게 농구를 추천하고 용기를 준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조건이 어디 있을까? 기회다!’하는 마음이었다. 농구를 권해 준 트레이너 선생님과 동료들에게 고맙다. 그리고 용기 내 기회를 잡은 과거의 나를 칭찬한다.


"농구할 몸이 아니잖아?"

처음 농구를 한다고 했을 때 엄마와 언니는 갸우뚱했다. 농구는 남자들의 운동 아니냐, 키 큰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160센티에 작고 통통한 너가 어떻게 농구를 할 수 있겠냐.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농구를 하는 사람들은 내 몸을 다르게 봤다. 오히려 농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계속 권하시는 바람에 농구를 시작하게 됐다.(훗)


“회원님은 농구하기 좋은 몸이신데요?”

회사 피트니스 센터 GX 수업을 들으면서 여성 트레이너 선생님과 꽤 친해졌다. 그분은 농구를 잘하시는 분이었다. 회사 농구 코트에서 농구하시는 분들에게 종종 티칭도 해주실 정도로 전문가였다. 선생님은 키가 그리 크지 않았다. 165센티 정도에 보통 체격의 여성 분이었다. 그분이 내게 농구를 추천했다. “회원님은 하체 힘도 좋고 근력도 좋으시니까 농구해보시는 거 어때요?” 키 때문에 고민인 내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회원님은 농구하기 좋은 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본인과 농구하는 친구들은 운동하는 사람들이라 170, 180이 넘는다고. 본인도 거기 가면 쪼꼬미라고. 게다가 회사에 농구코트도 있고, 같이 웨이트 하는 동료분들도 농구를 하시니 합류하면 되지 않냐고. 그리고 선생님은 이미 농구를 하던 남편에게도 아내 분이랑 농구 같이 해보시는 게 어떻냐며 나를 새로운 동료로 추천(?)했다. 나와는 다르게 내 몸을 말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내 몸의 기능성

선생님 말을 듣고(두 달쯤 고민하고) 용기를 내서 동료들의 농구 연습에 합류했다. 그들은 쭈뼛거리는 나를 드디어 농구를 시작하시는 거냐며 반겨줬다. 농구 게임을 할 때 듣는 말들이 참 좋았다. ‘예인님은 코어가 단단하신 것 같아요! 안 밀려요~’라든지 ‘하체 힘이 좋으시군요!’ 같은 말들. 이제껏 내 몸에 대해서 들어왔던 말들과는 다른 이야기들이었다. 그동안 내가 듣고 싶어 했던 말들과도 다른 말들이었다. 하지만 더 좋았다. 몸의 외형적인 모습이 아닌 기능에 대한 그 말들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실제로 내 몸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기능적으로 어떤 강점이 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내 몸의 가능성은 또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막연히 적당히 마르고 단단한 근육이 붙은 몸을 갖고 싶었다. 내 몸이 가진 능력, 기능성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었다. 유연한 몸을 바라긴 했지만 그 또한 머릿속으로 아름다운 몸의 형상을 그리면서 바랐던 것이었다. 몸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왜 그렇게 외면만 치우쳐서 생각했던 걸까.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가녀리다, 여리여리하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었다. 오히려 걱정의 표현이었다. 예를 들면 ‘로우킥 맞으면 부러질 것 같다.’는 말은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한숨 쉬며 하는 말이더라.

집 근처 농구장 풍경. 동네에 농구인들이 많은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능력치+++

늘 보조로 쓰던 왼팔과 손을 훈련시키는 것도 좋았다. 농구는 양손을 자유자재로 써야 하는 운동이다. 처음 훈련을 시작했을 때 왼쪽의 신체 능력이 오른쪽에 비해서 얼마나 떨어지는지 적나라하게 체감했다. 한편으로는 짜릿했다. 지갑에 만원이 있는 줄 알고 만원만 열심히 굴렸는데 만원 한 장을 더 발견한 것 같았다. 왼손도 잘할 수 있는데! 내 몸의 왼쪽도 이렇게 힘이 좋은데! 그동안 없는 것 마냥 신경을 안 써서 그렇지. 지금도 왼쪽 신체 훈련을 할 때면 대견하다. 이미 갖고 있었는데 몰랐던 능력을 찾고 키워가는 짜릿한 쾌감이 있다. 말하자면 시드머니가 늘어난 셈. 농구 훈련은 내 신체능력이라는 자산의 규모를 키우는 활동인 것이다. 그럼 앞으로 다른 운동도 더 빠르게 잘 배우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운동들이 더 많아지겠지? 운동 영역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면 더 자신감이 붙겠지? 그 자신감으로 나는 좀 더 당차고 활기차게 삶을 대할 수 있지 않을까? 꼬리를 무는 생각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  


* 오늘 농구 연습을 하면서도 몸을 쓰는데 좀 더 능숙해졌다고 느꼈다. 몸을 더 잘 쓰게 됐다. 한 동작을 가르쳐 주면 그 동작을 어떻게 할지 이해가 빨라졌다. 몸을 잘 쓰는 나,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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