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엄마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시은아, 문 닫아야지.”
TV를 보던 엄마가 조용히 말했다.
그 말에 창밖을 내다보면 시은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어차피 반지하라 누가 보지도 않는데.”
“반지하니까 더 조심해야지.”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창을 닫았다.
항상 사람들이 궁금한 시은이 문을 열어두면, 엄마는 언제나 문을 닫았다.
철컥, 철걱.
그것도, 걸쇠까지 확실하게.
“엄마가 뭐라고 했지? 우리는 늘 둘뿐이니까…….”
“알아, 알아.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잘 숨어야 한다고. 맨날 그 소리야.”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는 엄마의 말에, 시은은 익숙하게 받아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하여간, 걱정은. 하고 중얼거리면서.
그런 시은을 기특함 반, 미안함 반이 뒤섞인 눈으로 바라보던 엄마는 시은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오늘 저녁은 치킨 어때?”
“치킨? 좋지!”
엄마의 말에 시은이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굳게 닫힌 창문 뒤, 제게 허락된 세상은 극히 좁았지만.
그때는, 그 답답함조차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철컥, 철컥.
시은은 여전히 꼭꼭 잠겨 있는 엄마의 방 창문을 작게 흔들어보았다.
엄마의 방뿐만 아니라 온 집안 창문이 그랬다.
기본 걸쇠에 더해 이중으로 달린 자물쇠가 손 끝에 서늘함을 주었다.
시은은 창문에서 한 발짝 물러나며 입술을 깨물었다.
기억하는 가장 어린 날부터, 창문은 언제나 굳게 잠겨 있었다.
이사할 때마다 엄마는 가장 먼저 창문에 새 자물쇠를 달았다.
‘집에 여자만 산다는 건 최대한 숨기는 게 좋아.’
우리 두 식구 안전하게 살기 위함이라며, 퇴근하고 돌아오면 꼭 창문을 잠갔다.
그때는 그게, 단순히 엄마의 불안에서 기인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시은의 시선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지럽게 흩어진 봉투의 내용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흩어진 것들 사이, 비져나온 작은 사진 묶음이 보였다.
시은은 몸을 굽혀 조심스레 그것을 집어 들었다.
대여섯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과, 그보다 조금 더 큰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어른들.
개중에는 아이가 홀로 찍은 독사진도 있었고, 보육원 관계자인 듯 명찰을 단 어른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이제는 누구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는 아이, 혜정 역시 그 안에 있었다.
짧은 단발머리에 반바지를 입고, 낡은 보육원 간판 앞에 서서.
그리고, 그 사진을 뒤로 넘겼을 때.
“……말도 안 돼.”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는 얼굴.
평생 제 곁을 지켜주던 얼굴.
엄마가,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그것도 익숙한 미소, 보다 더 친근한 태도로.
혜정이라는 아이의 어깨를 감싸안고서.
그런 엄마의 가슴팍에는, 사진 속 어른들이 하고 있던 것과 같은 자그마한 명찰이 보였다.
보육원 관계자들이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던, 그 명찰이.
시은은 눈을 크게 뜬 채 한참동안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제가 기억하기로, 엄마의 직장은 언제나 병원이었다.
병원 외의 직장은 가져본 적도, 고려해 본 적도 없는 엄마인데.
머릿속 가득한 의문과 함께, 시은은 다시 사진을 넘겼다.
보육원 아이들의 사진 중간중간 엄마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제 기억보다 많이 젊고, 표정도 더 밝았지만.
그건 확실히 엄마였다.
숨이 가빠졌다.
시은은 사진들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려놓고, 시선을 돌려 다른 서류들을 살폈다.
그 중 ‘입양신고서’라고 쓰인 서류가 눈에 띄었다.
그 안에 쓰인 이름은, 모두.
사진 속에서 보았던 낯선 이름, 윤혜정.
서류 속 혜정의 생일은 시은의 것과 일치했다.
신청인은 엄마.
입양되는 사람은 윤혜정.
엄마에게 자신 외에 다른 아이는 없으니, 그렇다면 이 ‘윤혜정’이라는 아이가 자신이라는 말이 된다.
방금까지 머리가 멍해질 정도의 충격에 둘러싸였던 시은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엄마가 입양하려다 실패한 아이일 수도 있지.’
시은은 아이들을 보며 언제나 함박웃음을 짓던 엄마를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물이 왜 이렇게 울고 있을까?’
우는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무릎을 꿇고 눈을 맞춰주던 엄마다.
그러니 제 착각일 수도 있다.
혹은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옛날의 일일 수도 있다.
성인이 돼서 기억하기 시작하는 것들은 고작해야 4살, 5살 정도부터니까.
그 전의 일이라면, 제가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시은이 다음으로 집어 든 건, 작고 얇은 수첩이었다.
수첩을 펼치자 낯선 이름들이 가득했다.
그 옆에 017이며, 011로 된 옛날 전화번호들이 쓰여 있는 걸 보면 이것 역시 족히 20년은 넘은 것 같았다.
간혹 지역번호가 적힌 전화번호도 보였다.
“천사보육원, 원장선생님, 혜정 엄마, 복지사님…….”
엄마는 간호조무사였다.
그런데 왜, 보육원 관계자의 이름이 적혀 있는 거지?
평생 인간관계라고는 시은과 직장 사람들뿐이었던 엄마다.
그런 외부 활동조차 전무하던 사람이, 대체 왜.
그렇게 한참을 의미 없이 전화번호부를 바라보던 시은이 시선을 돌렸을 때.
‘윤혜정. 실종 당시 4세.’
이제는 익숙해진, 어쩌면 제것일 수도 있는 이름이.
두 눈에 또렷이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