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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브 Sep 14. 2022

프랑스에서 400일 - 1)갑자기 프랑스





이유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언제부턴가 유럽에 가야겠다는 생각 하게 되었다. 아마도 등학다니고 있을 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길거리에 세워진 로마라고 씌여있는 간판을 던 것이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아마도 음식점이나 주점의 간판이었던 것 같은데 무심코 나는 로마에 가야겠다는 각이 들었던 것 같다.


겨웠던 고3 수험생잠깐 동안의 대학생활 그리고 3년간의 직장생활을 겪은  드디어 나는 유럽으로 떠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유럽 배낭여행이 굉장히 유행이었는데 나는 왠지 여행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냥 한국이 아닌 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고 낯거리 걸으며 또 다른 세상을 겪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리고 한국에서 20넘게 살았으니 한국이 아닌 곳에서 20년 정도 살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프랑스에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프랑스에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 어렵다는 프랑스어는커녕 프랑스에 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그나마 친숙한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영국의 살인적인 물가 아무리 계산을 봐도 도저히 내가 갈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지하철 한번 타는데 2파운드고 하는데 당시 환율로 4천원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유럽행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여 어쩌다 보니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한국과 비교해서 크게 물가 차이가 나지 않았고 대학 평준화되어 대부분의 대학 국립대학 등록금을 거의 안 받는 정책으로 운영고 있었다.


또한 파리가 아닌 지방도시의 경우 대학 부설 기숙사를 아주 저렴한 금액으로 얻을 수 있었다. 일종의 복지정책인데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에게도 동등하게 적용한다는 점에서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해 더욱 리게 되었던 것 같다.


문제는 프랑스어인데 그 시절의 나는 별로 거리낄 것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나중에는 랑스어 때문에 나 고생을 하긴 했다.


나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대학 부설 어학원기숙사비 1년 치를 납하고 파리행 편도 항공권을 구입했다. 그리고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들과 대형 캐리어를 구입하고 나니 남은 돈은 100만 원 남짓이었고 유로로 환전하니 800유로가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맑은 하늘이 아름다운 9월의 첫날 유럽을 향해 떠나게 되었다.





제목에도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20년은커녕 고작 1년하고 1개월 정도가 지난 뒤 한국에 돌아오게 되는데 그 400일간 참 여러 가지 놀라운 일들을 많이 겪게 되었다.


무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너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이 더 놀랍긴 하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다 보니 저번주는커녕 어제 일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떻게 15년 전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쓸 수 있는지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아무튼 무의식 중에 언젠가는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던 것 같다.


프랑스에서 무얼 했냐고 묻는다면 딱히 꼭 집어서 대답할 만한 건 없다. 프랑스어를 배우긴 했지만 꼭 프랑스어를 배우러 간 것도 아니었고 에펠탑이나 루브르 박물관을 보러 간 것도 역시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캐리어에 담아 간 구형 아이비엠 노트북으로 정말 많은 영화를 봤고, 한국에서는 거의 어쩌다 펼치다 말던 책들을 아주 많이 읽을 수 있었다.


기숙사 창밖으로 펼쳐진 초록빛 들판을 하루 종일 바라보기도 했고 파리의 골목이란 골목은 모조리 걸어 다니기도 했다. 파리의 식료품 가게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뜻밖의 기회를 잡아서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만약에 다시 프랑스에 가게 된다면 딱히 다를 것은 없을 것 같다. 실제로도 몇 년 후에 다시 다녀오긴 했지만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다만 경제적인 사정이 좀 나아져서 매일 아침마다 갓 구운 크로와상을 먹을 수 있었다던지 길바닥이 아닌 카페 의자에 앉을 수 있다는 점이 다르긴 했다.


무엇보다도 항상 바쁘게 무언가를 해야 하는 한국사회라는 쾌속정에서 잠시 내려서 노를 저어 가는 조용한 나룻배를 타고 천천히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음 글에 쓸 내용이지만 내가 처음 도착한 곳은 프랑스 북부지방의 빌노브다스크란 작은 마을이었다. 조금만 외곽으로 걸어 나가면 끝없는 평원이 펼쳐진 곳이다. 해양성 기후라서 부슬비가 자주 내리지만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에 춥지 않은 곳이다.


내 머릿속에는 파리와 함께 이곳도 항상 나를 따라다닌다. 아마도 내가 어느 정도 성공을 해서 여유가 된다면 나의 남은 여생 중 꽤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지내지 않을까 상상하곤 한다.


그 시절 나는 너무나 돈이 없어서 겨우 2유로 남짓 하던 학생식당의 점심메뉴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고 문자메시지 가격이 아까워서 종이에 메모를 적어서 친구의 기숙사문아래 넣어두고 오곤 했지만 어떤 부분이 힘들었는지 생각해 보면 크게 생각나는 것은 없다.



오히려 좋았던 점을 생각해 보면 아마 계속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수염이 덥수룩한 히피족 친구의 오래된 푸조 승용차를 얻어 타는 것도 좋았고 기숙사 탁구장에서 일본인 친구와 탁구 한일전을 치르는 일도 재미있었다.


한국에서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새벽 3시까지 기다려서 보 챔피언스 리그를 저녁시간에 여유 있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기숙사 식당 천장에 붙어있는 손바닥 만한 텔레비전으로 봐야 했지만 65인치 벽걸이형 티브이로 보는 것보다 훨씬 생동감이 넘쳤다. 정말이지 모든 것이 좋았다.


그 즐거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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