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노야도 기온 후쿠즈미 료칸
청수사를 구경하고 료칸으로 향했다. 내가 예약한 료칸의 이름은 '교노야도 기온 후쿠즈미 료칸'으로 청수사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로 살짝 거리는 있지만 가는 길에 니넨자카와 산넨자카 거리까지 구경한다면 괜찮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밤엔 기온시조 쪽으로 걸어가면 예쁜 야경도 구경할 수 있어서 좋다. 공용 목욕탕은 있으나 개인 온천은 없는 료칸이었다. 교토 쪽은 개인 온천이 있는 료칸은 별로 없다고 한다. 료칸의 가격은 604750원으로 4명에서 묵을 때 호텔에서 묵는 것보다 가격이 더 저렴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온 가족이 다 같이 한 방에서 자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4인실에서 잘 수 있는 료칸을 선택했다.
료칸의 저녁 식사인 가이세키는 체크인할 때 원하는 시간을 예약할 수 있었다. 청수사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서 예약을 했었다. 료칸에 도착하자 저녁 식사를 준비해주기 시작했다.
가이세키는 깔끔하고 좋았다.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니까 료칸을 예약한 보람이 있었다. 내가 예약한 사이트에서의 이 료칸의 가이세키에 대한 후기에는 고기 종류가 없어서 아쉬웠다는 내용도 있었다. 후기대로 고기반찬이 거의 없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채식을 좋아하셔서 만족하셨다. 혹시 고기 종류를 드시고 싶으신 분들은 다른 료칸을 선택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
가이세키 음식을 서빙해주시는 분들은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성 분들이었다. 료칸이 오래돼서 그런지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오래 일하시는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이 일본어가 안돼서 대화는 잘 안되었지만 말이 안 통함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친절하셨다.
밥을 다 먹고 나니 이불을 펴줬다. 일본 료칸에서는 이렇게 가이세키 식사도 나오고 이부자리도 펴주는데 뭔가 대접을 받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가이세키를 식사 주는 분들과 다르게 이불을 펴주는 분들은 젊은 남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불을 펴주는 남성분들은 가이세키를 서빙해준 여성분들보다 더 무뚝뚝한 느낌이었다. 일본을 계속 여행하다가 가끔 느꼈는데 여성분들이 남성분들보다 더 친절한 느낌이었다. 일본은 여자들에게 친절함을 강요하는 문화가 있는 걸까?
유독 친절을 강요받는 직종은 서비스 직종이 아닐까. 오늘 병원과 약국, 맥도날드를 다녀왔는데 반말을 툭툭 내뱉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였다. 아니 반말 정도는 양반이겠지 더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서비스 직종에서 일하는 분들은 너무 힘들 것 같다. 손님들이 다들 예의 바르게 잘하면 좋을 텐데.
저녁을 다 먹고 동생이 누워서 자기 시작하더니 교토 밤거리를 구경하러 가자니까 머리가 아프다고 안 간단다. 그래서 동생은 빼고 엄마 아빠와 교토 거리를 구경하러 료칸을 나왔다. 그런데 엄마가 한마디 했다. 동생은 머리 아픈 게 아니라 가기 싫어서 저런다고 했다. 머리 아픈 건 뻥이라면서. (이 사실을 알면 동생은 분노하겠지) 엄마는 왜 동생 말을 안 믿어줄까? 그래서 내가 엄마한테 "동생 말을 믿어야지, 그걸 왜 안 믿고 엄마 마음대로 생각해?"라고 강하게 얘기했지만 엄마는 마치 동생 속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끝까지 저거 머리 안 아픈 거다 라면서 고집을 부리셨다. 내가 아무리 얘기해도 말이 안 통해서 힘들었다. 엄마는 예전에도 이런 전례가 있었다. 동생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배가 아프다고 학교를 못 가겠다고 얘기를 했는데, 엄마는 그 말을 믿지 않고 거짓말이라 생각하여 학교를 억지로 보냈다. 그러자 동생은 학교 가는 길에 바지에 큰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고 한다. 사실 동생이 어릴 때부터 유별나서 유치원 가기 싫다고 땡강 부리면서 안 가고, 백화점에 가면 온갖 떼를 써서 사고 싶은 장난감을 쟁취하곤 했었다.(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다.) 엄마가 그런 모습을 많이 봐와서 그렇게 고집을 부리시는 걸까. 이래서 가족 여행은 쉽지 않다. 사실 가족 여행이라서가 아니라 여러 명과 함께 움직이는 여행이라서 힘들다. 사람 수가 늘어날수록 여행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그렇게 교토의 밤거리를 걸어 다녔다. 골든위크라 늦은 시간이었지만 사람이 꽤 많았다. 운이 좋으면 얼굴을 하얗게 화장을 한 분을 만날 수도 있다던데 우리는 만나진 못했다. 교토의 오래된 집들과 은은한 조명이 되게 운치 있었다.
이건 뭔가 강남에서 먹었던 고에몬에서 본거랑 비슷해서 찍어봤다.
정말 놀랬던 건 교토의 번화가는 오사카나 후쿠오카에서 봤던 번화가만큼 사람이나 식당, 술집, 카페, 가게 등이 정말 많았다. 교토는 절이 많아서 고즈넉한 동네인 줄 알았는데 놀거리도 이렇게 많았다니. 골든 위크라 사람이 유난히 많았던 것일 수도 있었는데, 오래된 전통이 있는 도시 치고는 너무 번화해서 꽤 놀랬다. 나는 사실 조금 더 구경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걷기 힘들어하신 것 같아서 조금만 보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뭐 나도 조금 힘들긴 했다.
여기 기온시조 역 옆에 있는 다리 쪽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참 예쁘다. 다음에는 저 강이 보이는 카페에 가보고 싶다.
료칸에 돌아와서 나는 온천 목욕탕에 갔다. 전세탕이 아니라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여행의 피로를 풀어주는 게 너무 좋았다. 목요일을 다녀와서 온 가족이 한 방에서 다 같이 잤다. 생각해보면 온 가족이 한 방에서 다 같이 자는 게 얼마만인가? 내 기억에는 나와 동생이 유치원생일 때 까지는 다 같이 큰 방에서 잤던 것 같다. 그때는 침대도 없었고 다 같이 큰 이불을 깔아놓고 잤다. 동생은 귀청이 되게 큰 게 잘 생겼는데 부모님이 가끔 자기 전에 동생 귀의 귀청을 떼주고 그랬다. 초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부모님과 떨어져서 잤던 것 같다. 유치원생 때 이후 정말 오랜만에 다 같이 자게 된 것이다.
나는 어머니를 닮아서 잠이 예민한 편이다. 여행을 가거나 동원 예비군 훈련에 가서 낯선 환경에서 자게 되면 쉽게 잠이 들지 못하곤 한다. 첫날은 특히 잘 때 예민해져 있어서 잠이 잘 못 든다. 그래도 이튿날부터는 적응해서 잘 잔다.
사실 여행 첫날에 치통이 굉장히 심했다. 이게 치통인지 두통인지는 헷갈렸는데 어금니 쪽이 아팠다. 여행 중이라 아플 때 할 수 있는 건 타이레놀을 먹는 것 밖에 없었다. 여행의 피로 때문인지 자려고 누웠을 때 아픔이 극에 달했다. 너무 아파서 새벽에 4번이나 깼다. 료칸이 길가 쪽에 있어서 그런지 창문 밖의 차 소리가 너무 잘 들렸다. 새벽에 어떤 차가 경적을 크게 빵빵 여러 번 내기도 했다. 평소에 코를 잘 안 고시는 어머니도 유난히 코를 크게 골고 계셨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냥 모든 가족이 코를 골고 있었던 것 같다. 아프고(아픈 게 제일 힘들었다), 시끄럽고, 피곤하고 너무 고통스러운 첫날밤이었다.
※ 일본 여행은 5월에 다녀왔습니다. 한일 양국의 정세가 호전되길 기원합니다.